250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4월호
서울내기들의 옛 모습을 엿보다…노원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내기들의 옛 모습을 엿보다…노원 서울생활사박물관
  • 유인용 기자
  • 승인 2019.11.14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지난 9월 26일 정식 개관
실제 사용했던 기증품들 전시해 생동감 넘쳐
역사성 살린 구치감동, 아이들 위한 옴팡놀이터까지
사진 / 유인용 기자
실제 사용했던 물건들을 기증 받아 전시관을 채운 서울생활사박물관. 사진 / 유인용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멀리 떨어져 있는 지인과 영상 통화를 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고음질로 들을 수 있는 요즘, 투박하고 무거운 손전화와 잡음 섞인 LP판은 색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당시 실제 사용했던 물건들로 옛 서울내기들의 삶을 녹여낸 곳이다. 기존 서울지방법원과 검찰청이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난 9월 26일 정식 개관한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는 6.25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박물관 1층 한쪽 벽은 1950~60년대 촬영한 흑백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박물관 1층에 전시된 올드카들. 사진 / 유인용 기자

서울의 과거와 현재
6.25전쟁이 발발하고 불과 5년 뒤인 1955년에 찍힌 한 장의 흑백사진. 서울 중구 만리동의 어린 아이들이 저마다 얼굴보다 큰 냄비를 하나씩 들고 일렬로 섰다. 우유 배급을 받으려고 줄을 선 모습이다. 그 옆엔 굵직한 통나무를 소 달구지에 싣고 남대문시장을 걸어가는 한 남자의 사진이다.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선 지금의 세련된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들이다. 6.25전쟁 직후 서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꾸며진 박물관 1층에서는 빛바랜 흑백사진들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강성신 서울생활사박물관 학예사는 “서울생활사박물관은 추억 속으로 잊힌 서울의 옛 모습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이라며 “일반인들이 기증한 손때 묻은 전시품들을 통해 옛 서울 시민들의 실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고 소개한다.

흑백사진들을 한참 뜯어보고 난 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멋들어진 빨간색 올드카 브리사다. 1974년 기아자동차에서 출시한 최초의 승용차인데 어딘가 눈에 익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배우 송강호가 몰았던 택시와 같은 차종이다. 브리사 앞에는 개인택시로 사용됐던 다른 차도 함께 전시돼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라면 등 옛 먹거리들도 전시돼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향수를 자극하는 레코드판.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서울생활사박물관은 지난 9월 26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전시관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이번엔 추억의 생활용품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1963년, 투명한 비닐봉투에 포장된 라면 한 봉지의 가격은 10원이었다. 1978년, 금성사에서는 창립 20주년 기념 사은 잔치를 열었다. 당시 금성사의 모델은 배우 최불암이었다. 금성에서 출시한 진공관 라디오와 삼성의 라디오 텔레비전도 전시돼 있다.

강성신 학예사는 “박물관 1층에서 서울의 개괄적인 부분을 다뤘다면 2층에서는 결혼을 통한 가족의 탄생, 3층에서는 주택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교육 시키는 흐름으로 구성했다”며 “서울 시민들의 일상을 가족이라는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빠와 엄마는 어떻게 만났을까
우리나라 성인 남녀가 부모의 허락 없이 당사자들만의 의사로 결혼이 가능해진 것은 1977년 혼인법이 개정된 이후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혼하는 부부가 많았다. 중매쟁이를 통해 증명사진을 주고받은 뒤 첫 만남이 이뤄지고, 몇 번의 만남 후 바로 식을 올리는 이른바 속전속결 결혼이었다.

박물관 2층은 기증자들의 사진과 목소리로 패널을 꾸며 옛 서울 시민들의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해 전시했다. 신부 양 볼에 연지곤지를 찍고 신부의 집 앞마당에서 이뤄졌던 전통 결혼식부터 X세대의 연애결혼까지 변천사를 알아볼 수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박물관 2층은 기증자들의 목소리와 사진으로 전시 패널을 꾸몄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1960년대부터 현대까지의 웨딩드레스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박물관 2층 한편에 마련된 포토존. 사진 / 유인용 기자

“친구가 회사 다니는 남자를 소개해줬어요. 세 번 정도 만났을까. 아빠에게 ‘한 번 보실래요’ 했던 것이 상견례가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된 거죠.” (박미경 씨, 1987년 결혼)

커플 옷을 맞춰 입고 떠난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돌하르방 코를 만지며 찍은 사진은 1980년대 당시 트렌디한 결혼의 모습이었다. 전시관 중앙에 전시된 웨딩드레스들도 흥미롭다. 1960년대는 저고리와 치마로 나뉜 흰색 한복이었다면 1980년대의 드레스는 어깨가 잔뜩 부풀어 화려한 느낌의 서양식 드레스다. 이외에도 다양한 통계자료를 곁들여 서울 시민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 출산과 육아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정감 어린 집과 학교
결혼과 출산을 지나 박물관 3층에서는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진다. 안방과 주방의 모습을 개량한옥과 90년대 아파트로 나누어 재현해 놓았다. 한옥의 안방에는 날개가 돌아가면 달달달 소리가 날 것 같은 선풍기, 곤때 묻은 서랍장과 앉은뱅이 밥상이 정감 간다. 부엌은 쪼그려 앉아 아궁이를 떼야 했고 곤로와 놋그릇을 사용했다. 아파트의 안방에는 에어컨과 TV가 놓여 있고 주방은 입식 형태로 바뀌었다.

딸과 함께 박물관을 찾은 60대 이은옥 씨는 “한옥의 안방을 재현해 놓은 공간은 어린 시절 집의 풍경과 흡사해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며 “누군가가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들이라 더욱 실감 난다”고 소감을 전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박물관 3층에는 개량한옥의 거실과 주방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가운데에 금을 그어 놓은 2인용 책상과 노란 양은도시락이 추억을 회상케 한다. 사진 / 유인용 기자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이번엔 학교를 테마로 한 공간이다. 노란 양은도시락 통이 층층이 쌓인 난로가 자리하고, 그 옆으로는 길쭉한 2인용 책상에 자그마한 나무 의자가 두 개 놓여 있다. 가운데 선을 긋고 ‘이 선 넘어오지 마!’ 하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2인용 책걸상은 방문객들의 포토존 역할도 한다. 이외에도 혼분식 먹기, 쥐잡기 등 당시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곳이기도 했던 학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3층까지 다 둘러봤다면 이번엔 박물관 옆 구치감동으로 이동해 보자. 과거 실제 구치감이었던 장소로, 수감자들이 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잠시 머물던 공간이다. 좁은 독실부터 여러 명이 사용하는 수감실까지 고스란히 남겨 두어 건물의 역사성을 살렸다. 교도관과 수감자 옷을 직접 입어보고 독특한 기념사진도 촬영할 수 있다. 구치감동 한편으로는 옛 골목과 비디오방 등을 재현해 놓았다.

사진 / 유인용 기자
구치감동에서는 교도관과 수용자 복장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구치감동 한편에는 서울의 옛 골목을 재현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사진 / 유인용 기자
서울생활사박물관 옴팡놀이터의 풍경. 서울시공공예약시스템을 통해 사전 예약할 수 있다. 사진 / 유인용 기자

한편 박물관 2층의 옴팡놀이터는 어린이 체험 공간으로, 냄새 맡기와 소리 듣기, 직접 만져보기 등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체험으로 구성됐다. 놀이터 맞은편 법정체험실은 법정이 있던 공간을 리모델링해 만들었으며, 주말마다 법정을 배경으로 한 연극이 상영된다. 옴팡놀이터와 법정체험실은 서울시공공예약시스템을 통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강성신 주무관은 “아직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람객 피드백을 통해 전시실을 조금씩 보완할 예정”이라며 “사람 냄새 나는 박물관으로 꾸려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INFO 서울생활사박물관
관람요금 무료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7시(11~2월 중 토‧일‧공휴일은 오후 6시까지, 구치감전시실은 매일 오후 6시까지, 매주 월요일 휴무)
주소 서울 노원구 동일로 174길 27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