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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숨은 여행지 찾기] 자연과 시대를 아우르는 그곳, 공주 순례길
[숨은 여행지 찾기] 자연과 시대를 아우르는 그곳, 공주 순례길
  • 조아영 기자
  • 승인 2019.12.09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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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수채화 같은 산세에 안긴 명찰, 갑사
우리나라 최초 성모성심회가 발족된 수리치골 성지
근대사와 함께한 공주제일교회와 영명학교까지
사진 / 조아영 기자
우리나라 최초 성모성심회가 발족된 수리치골 성지. 사진제공 /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여행스케치=공주] 백제의 정취가 서려 있는 공주에는 귀한 문화유산이 즐비하다. 이제껏 이름난 여행지를 모두 방문했다면, 숨은 명소로 걸음을 옮길 차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산세에 폭 안긴 명찰과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때 신자들이 은거했던 골짜기, 근대사의 한 축이 되었던 교회를 보듬는 공주 순례길을 소개한다.

공주의 순례길은 크게 불교ㆍ천주교ㆍ기독교 성지를 둘러보는 길로 나누어져 있다. 기독교 성지와 중동성당은 공주 원도심에 모여 있어 걸어서도 수월하게 돌아볼 수 있으며, 갑사와 수리치골 성지 등 도심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는 고요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모든 성지는 종교색이 짙기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수많은 이야기를 지녀 여행자의 발걸음을 이끈다. 

국보와 보물을 품은 명찰, 갑사(甲寺)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길 여행은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은 갑사에서 시작하는 편이 좋다.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갑사는 15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사찰이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처럼 마곡사의 빼어난 봄 풍광에 비견되는 가을 경치를 지닌 곳으로, 겨울에도 단아한 멋과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계룡산 자락에 폭 안긴 갑사 전경. 사진제공 / 공주시청
사진 / 조아영 기자
갑사로 가는 길에 만나는 '계룡산 갑사' 편액. 사진 / 조아영 기자

갑사주차장에 하차하면 공주시 마스코트인 공주와 고마곰 조형물이 가장 먼저 여행객을 반긴다. 조형물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오리숲’에 쉽게 닿을 수 있는데, 느티나무와 참나무, 팽나무가 늘어선 숲길이 2km(5리)가량 이어져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고,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숲길은 계룡 8경 중 제6경에 선정될 만큼 고운 자태를 지녔다.  

숲이 내어주는 청량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걷다 보면 대웅전에 다다르게 된다. 계룡산 자락을 병풍처럼 두른 자리에 둥지를 튼 대웅전의 첫인상은 장엄하게 다가온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선시대 맞배지붕 등을 살펴볼 수 있으며, 국보 제298호로 지정된 삼신불괘불탱을 보관하고 있어 더욱 뜻깊은 장소다. 

현재 삼신불괘불탱을 직접 감상할 수는 없으나 경내를 벗어나면 또 다른 보물이 자리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갑사 초입에 자리한 동종(보물 제478호)과 승탑(보물 제257호)이 바로 그것. 범종각에 걸려 있는 동종은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온전한 형태를 감상할 수 있으며, 승탑 또한 고려시대 대표적인 양식을 띠고 있어 중요한 사료로 꼽힌다. 승탑 뒤편으로 이어지는 자연관찰로를 따라 5분가량 이동하면 높이가 15m에 달하는 철당간(보물 제256호)까지 마주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갑사 승탑은 보물 제2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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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중심이 되는 대웅전 내부.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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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국보 제298호인 갑사 삼신불괘불탱을 보관 중인 장소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갑사 · 수리치골 성지 · 중동성당 · 기독교박물관 · 영명역사관이 포함된 공주 순례길 약도. 일러스트 / 박혜주 디자이너
갑사 · 수리치골 성지 · 중동성당 · 기독교박물관 · 영명역사관이 포함된 공주 순례길 약도. 일러스트 / 박혜주 디자이너

갑사에서는 바쁜 일상에 쉼을 더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1박 2일에서 3박 4일까지 여유롭게 머물 수 있고, 휴식을 취하는 자율형과 염주 만들기, 예불, 용문폭포 포행 등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모든 프로그램은 유선 또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접수 후 참여할 수 있다. 

INFO 갑사
입장료
성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주소 충남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67-3

사진 / 조아영 기자
수리치골 성지 입구에 세워져 있는 성모마리아 조각상.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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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의 집에서 기도하며 은거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수리치골 성지. 사진 / 조아영 기자

거룩한 마음이 모인 공주 땅 수리치골
갑사를 둘러봤다면 이제 북쪽으로 여정을 이어간다. 청양군과 접한 수리치골 성지는 공주 도심에서 출발해 30분 남짓 국사봉 골짜기를 파고들어야 닿을 수 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수녀원 인근은 바람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하고, 이따금 천천히 길을 거니는 신자들이 보인다. 

이경희 베드로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비서 수녀는 “1846년 병오박해를 피하고자 이곳을 찾은 페레올 주교와 안토니오 신부가 성모성심회 조선 분회를 설립했다”며 “성지 순례라 하면 대부분 성인의 탄생지나 순교지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으나 수리치골 성지는 국내 최초로 성모성심회가 발족된 곳이기 때문에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과거 교우들이 왕래했던 길을 고증해 만든 순례길. 사진 / 조아영 기자
사진 / 조아영 기자
순례객에게 개방되어 있는 총원 성당. 수녀회 미사와 시간 전례에 참석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몸을 숨겨야 했던 이들은 국사봉을 중심으로 용수골, 둠벙이, 먹방이 등 여러 곳에 은거했다. 그중 ‘수리취’라는 나물이 많이 나 수리치골로 불리던 이곳이 가장 깊숙하고 지대가 넓어 많은 교우가 모여 살기 시작한 것. 수도회가 계속해서 지키고 가꿔 온 성지는 2015년 개방되어 더욱 많은 이들을 품고 있다. 

수리치골 성지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는 영상실 곁에는 성모당과 십자가로 이어지는 순례길이 나 있다. 교우들이 왕래했던 길을 고증해 만든 순례길은 총 3코스로 나뉘며, 각각 1km 남짓이어서 부담 없이 걷기 좋다. 성모당 위쪽 길을 따라가면 성모성심 발족 터를 함께 살펴볼 수 있고, 영상실 아래로는 피정의 집이 자리해 고요한 공간에서 기도하며 잠시나마 은거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중동성당의 야경은 또 다른 볼거리다. 사진 / 조아영 기자

1897년 공주지역 최초로 설립된 중동성당 역시 순례길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현재 본당의 전신인 공주 본당은 당진의 합덕성당과 공세리성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된 것으로 높은 종탑과 뾰족한 아치가 인상적이다. 맞은편에 자리한 충청남도역사박물관에 서면 전체적인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으며, 밤이 되면 조명을 밝혀 색다른 야경을 선사한다. 

INFO 수리치골 성지
주소
충남 공주시 신풍면 용수봉갑길 522

INFO 중동성당
주소
충남 공주시 성당길 6

사진 / 조아영 기자
디오라마 등을 활용해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주제일교회 문화재 예배당 전시실. 사진 / 조아영 기자

우리네 근대사와 함께한 교회를 찾다
중동성당을 벗어나 10분가량 도보로 이동하면 공주의 근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주제일교회에 닿게 된다. 공주 최초의 서양식 교회인 이곳은 우리에게 친숙한 유관순 열사가 영명학교에서 수학하며 몸담은 곳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거점으로도 쓰인 공간이다. 교회 문화재 예배당 2층 전시실은 기독교박물관으로 거듭나 시대별 건물 디오라마 등을 활용해 교회가 품은 역사를 보여준다. 

전시실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입구 맞은편 유리창을 채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다. 이현선 공주제일교회 행정목사는 “스테인드글라스는 고 이남규 선생의 작품이자 국내 개신교 건물에 최초로 설치된 것”이라며 “2011년 예배당 건물과 함께 등록문화재 472호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보존 가치가 높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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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남규 선생의 작품인 스테인드글라스. 화려한 자태로 시선을 잡아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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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제일교회 반지하 공간에는 근대사에 족적을 남긴 이들의 부조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조아영 기자

공주의 근대사와 더불어 독립운동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 싶다면 기도실 및 회의실로 쓰였던 반지하 공간으로 향해보자. 6개로 나뉜 작은 기도실에는 시대별 사진과 영상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차례로 볼 수 있다. 

기도실과 마주한 벽면에는 일제강점기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와 공주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펼친 현석칠 목사 등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들의 부조(돋을새김 작품)가 전시돼 걸음을 멈춰 세운다. 부조 곁에는 공주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 사건일지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원통하고 서글픈 역사를 다시금 복기하게 한다.

사진 / 조아영 기자
영명중 교정에서 볼 수 있는 유관순 열사와 사애리시 선교사 동상. 사진 /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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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명역사관 내 마련된 유 열사의 생애를 조명하는 섹션. 사진 / 조아영 기자

유관순 열사의 얼이 깃든 영명고등학교에는 110여 년의 역사를 망라한 영명역사관이 자리한다. 아담한 전시실 내부에는 유관순 열사를 조명하는 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출생부터 영명학교에서 보냈던 학창 시절, 3.1운동 이후 서대문 형무소로의 이감과 순국에 이르는 생애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1921년 세워진 건물에서 출토되어 세상의 빛을 본 귀한 사진 자료도 함께 전시돼 오랜 시간 눈길을 머물게 한다. 

INFO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토요일은 오후 3시까지, 월요일ㆍ공휴일 휴관)
관람료 성인ㆍ청소년 3000원, 아동 1000원
주소 충남 공주시 제민1길 18

INFO 영명역사관
영명역사관 내부를 관람하려면 사전에 영명고등학교 행정실로 문의 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주소 충남 공주시 영명학당2길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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