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4월호
[여행 레시피]기차 타고 떠나는 경주 가족여행 공부 말고 여행, 겨울에 즐기는 ‘천년고도’
[여행 레시피]기차 타고 떠나는 경주 가족여행 공부 말고 여행, 겨울에 즐기는 ‘천년고도’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19.12.11 1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찍기 좋은 황리단길을 시작으로
역사를 몸소 배울 수 있는 분황사와 황룡사터
두 기의 탑이 아름다운 감은사터, 문무대왕릉까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경주의 추운 바닷바람에도 아이들은 갈갈갈 웃으며 즐거워 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경주] 중장년에게 경주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 단골명소였다. 이젠 딱 그만큼의 나이가 된 아이들과 경주로 떠나볼 차례다. 천년의 더께를 간직한 채 경주는 같은 모습으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992년간 신라의 수도였던 덕에 ‘천년고도’로 불리는 경주. 신라는 경주평야에 있던 여섯 부족의 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건국된 나라다. 22대 지증왕 때 ‘신라’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후 삼국을 통일하며 눈부신 문화 발전을 이룬 나라이기도 하다. 경주를 둘러보는 일은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거슬러 신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어린 자녀와 함께하는 가족여행이라면 고속버스 보다는 기차를 이용하는 편이 더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고속버스도 있지만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여행이라면 비교적 활동이 자유로운 기차가 낫다. 경주엔 KTX가 지나는 신경주역, 호남과 영남을 잇는 경전선의 경주역, 또 서경주역과 불국사역이있어 거주지에 따라 자유로운 목적지 선택이 가능하다.

경주역과 서경주역은 시내와 가깝지만 서울을 기준으로 했을 때 배차간격이 뜸하고 거리가 멀다. 신경주역은 서울과 가깝지만 그만큼 요금이 비싼데다 시내와도 멀리 떨어진 게 흠이다. 하지만 하루를 알차게 보내려면 아무래도 신경주역이 낫다.

신경주역에선 시내버스나 택시, 렌터카나 시티투어를 이용할 수 있는데, 시티투어의 경우 동해안투어, 세계문화유산투어, 테마파크코스, 양동마을·남산투어, 야간시티투어, 신라역사투어 등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요금은 각각 어른 2만원, 어린이(청소년) 1만8000원씩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경주 황남동에 있어 '황리단길'이라 이름붙은 길은 활기가 넘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골목을 누비는 행복, 황리단길
경상권은 말할 것도 없고 KTX 기준 서울에서 2시간, 대전에선 1시간 거리의 경주는 더 이상 그 옛날 수학여행을 떠났던 먼 도시가 아니다. 넓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앙상한 겨울 풍경 속에서도 경주로 향하는 가슴은 딱 그맘때의 여행처럼 설레고 들떠 있었다. 역에서 내려 예약해둔 차를 타고 황리단길로 향한다. 신라의 왕과 귀족이 묻힌 대릉원 돌담길 너머에 황리단길이 있다. 황남동 일대는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활기찬 거리다. 낮고 오래된 기와집은 어여쁜 간판을 내걸고 오가는 이를 반긴다. 낡은 것은 낡은 대로 풍경이 되었고, 새것은 그 틈에서 모나지 않게 반짝반짝 적당히 어울린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황리단길에선 스테이크, 피자, 파스타, 커피, 수제맥주, 황남빵(경주빵) 등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옛것과 새것이 적절히 어울린 황리단길. 예쁜 곳들이 많아 사진 찍기에도 좋은 골목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답사여행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황리단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뭘 먼저 먹을까? 여기저기 맛볼 곳이 많아 한 곳에서 너무 몰아 먹지 않기로 한다. 주입식 답사여행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옛 교복이나 구한말 경성 스타일의 옷도 입어본다. 어깨를 나란히 맞출 만큼 키 작은 담장은 정겹고 소담하다. “어, 아까 왔던 곳인데?”

골목은 미로처럼 얽혔지만 아이들은 고고학자인양 탐험을 한다. 다시 왔을 땐 갔던 집을 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가야 할 맛집이 산재한 곳이다. 만두, 김밥, 파스타, 피자, 발효빵, 황남빵, 팬케이크, 스테이크, 초밥, 수제맥주, 커피까지, 짧은 시간보다 더 아쉬운 건 이 모든 음식을 채울 수 없는 위장뿐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이좋은 이웃 분황사와 황룡사터
분황사는 634년(선덕여왕 3)에 건립된 고찰로 원효와 자장이 머문 곳이다.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닿기까지 한참을 걸어야 하는 큰 절과는 달리 절문을 들어서는 순간 책에서만 보던 삼층석탑이 눈앞에 바짝 다가온다. 국보 제30호로 지정된 모전석탑, 그러니까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이다.

절 한쪽엔 번뇌가 사라지고 지혜가 생긴다는 종이 있다. 댕, 댕, 댕, 아이들은 번뇌와 지혜보단 제 손으로 밀어치는 범종에 더 관심이 많다. 석등의 초석과 허물어진 탑의 부재가 담장 아래 쌓였고, 그 위에 작은 돌탑들이 놓였다. 차가운 손을 호호 불어가며 아이들도 자갈탑을 쌓는다. 눈을 감고 소원을 빌지만 무엇을 빌었는진 묻지 않기로 한다.

원효와 지장이 머물렀던 분황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황룡사는 분황사의 이웃이지만 그 규모(약 66,115㎡)가 어마어마해 구층목탑의 심초석까지 가는길이 결코 만만치 않다. 아이들은 초원처럼 펼쳐진 황룡사터 앞에서 머뭇머뭇 앞서질 못한다. 발굴에 직접 참여한 조유전 단장의 증언에 의하면 작업에 동원된 인원만도 무려 10만여 명, 수습한 유물은 4만여 점으로 “우리나라 발굴사상 기록할만한 큰 규모”였다.

엄마가 먼저 높다란 둔덕에 선다. 꾸물대던 아이들도 넓고 곧게 뻗은 절터를 신나게 달려온다. 저 흙은 1300년 전의 사람들이 밟았던 길이고,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누군가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황룡사 터를 나란히 걷는 가족의 모습.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길 하나를 사이로 분황사와 황룡사터가 붙어 있으므로 온 김에 두 곳을 모두 둘러보는 게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안내판을 짚으며 읽어주지 않아도 된다. 여행이 공부가 되는 순간 아이들은 흥미를 잃는다. 제가 밟고 있는 땅과 작은 손으로 만진 바윗돌이 그 옛날 신라와 백제의 장인들이 다듬었던 곳이란 걸 언젠간 알게 될 테니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감은사터는 광복 후 최초로 발굴된 절터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감은사터는 광복 후 최초로 발굴된 절터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경주의 바다, 감은사터와 문무대왕릉
25년 전쯤에 출간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유홍준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편의 표지 사진이 감은사터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이다. 그 높이만도 13m가 넘어 경주에 남아있는 삼층석탑 중 가장 키가 크다. 감은사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뜻과 그의 아들인 신문왕이 부왕의 은혜에 감사해 지은 ‘충효의 유적’이다. 광복 후 최초의 무덤 발굴은 경주 호우총이고, 최초의 절터 발굴은 이곳 감은사다.

아이들은 허허벌판에 놓인 두 기의 탑 앞에서 “와!”하고 감탄한다. 이곳을 흐르는 대종천을 신라시대 땐 동해의 입구 ‘동해구’라 불렀다. 동쪽의 바다가 이 개울을 통해 수도인 경주까지 들어온다고 여겨서인데, 이 부근에 감은사터와 문무대왕의 수중릉으로 불리는 대왕암(사적 제158호), 또 대왕암이 잘 보이는 이견대(사적 제159호)가 자리해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경주 감은사터에 자리한 두 기의 탑이 탄성을 자아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전하는 말에 따르면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성덕대왕신종보다도 세 배나 큰 종이 감은사에 있었고, 그 종을 탐하던 몽골군이 바다를 통해 훔쳐가려다 그만 빠뜨려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날씨가 흐리거나 바람이 불면 바다 속에서 종소리가 들린다는 전설이다.

볼이 발개지도록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아이들은 파도와 술래잡기를 한다.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몰려오는 파도는 문무대왕릉에 부딪혀 얼음처럼 빛났다. 깊고 푸른 물속에 빠져 천년을 잠들었을 종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자갈을 타고 갈갈갈 웃는 파도와 그 파도에 발맞춰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문무왕의 호국 의지에 섞여 동쪽 바다 위에서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첨성대 앞에서 재미있는 포즈로 사진을 찍어보는 것도 좋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원데이 경주 기차여행 레시피
➊ 신경주역, 경주역, 서경주역 등에서 차량을 렌트해 황리단길로 이동한다. 골목 사이사이를 걸어보며 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과 커피도 맛본다. 황리단길 바로 옆에 천마총(대릉원)과 첨성대가 있으므로 함께 들러도 좋다. 식사를 할 경우 최소 2시간 이상은 잡아야 한다.
➋ 황리단길에서 약 3km 거리에 분황사와 황룡사터가 있다. 분황사 입장료는 어른 1300원, 어린이는 800원이다. 주차요금은 없다. 분황사 바로 옆에 황룡사터가 있다. 입장료는 없지만 워낙 넓은 곳이라 발품을 팔아야 한다. 두 곳을 다 돌아보려면 2시간 가까이 걸린다.
➌ 분황사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31km)에 감은사터가 있고, 감은사터에서 대략 1.5km 거리에 이견대와 문무대왕릉이 있다. 둘러보는 데 1시간 이상 걸린다. 기차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경주로 돌아오는 길에 석굴암, 불국사, 국립박물관 등에 들러도 좋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