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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 밀양 없는 의열단은 있을 수 없다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 밀양 없는 의열단은 있을 수 없다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9.12.12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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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유일한 독립운동가 밀집지역 밀양
지난 11월 10일 의열단 창단 100주년 맞아
의열기념관에서 독립운동가에 대한 전시 관람도 할 수 있어
사진 / 조용식 기자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 일원인 내일동과 내이동은 이곳에서만 밀양지역 독립운동 서훈자 81명 중 26명이 배출될 정도로 전
국에서 유일한 독립운동가 밀집지역이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여행스케치=밀양]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 및 국내의 3·1독립선언과 더불어 3대 독립선언서의 하나로 꼽힌 대한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문장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의열단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의열단 이름으로 적의 밀정을 척살한다.”
영화 <밀정>에서 의열단인 김우진(공유 분)이 경성으로 가는 열차에서 일본군에 정보를 제공했던 밀정 조회령(신성록 분)에게 총을 겨누며 하는 말이다. 김우진의 대사는 1919년 11월 10일 창단한 의열단 공약 10조 10항(단의에 반배한 자를 척살함)의 내용과 일치한다. 지난해 11월 10일로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은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을 만나러 밀양을 찾았다. 

3.13 만세운동 내용을 담은 웹툰이 벽화로 그려져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의열단 창립단원 10명 중 4명이 밀양 출신
밀양역에서 내려 역사로 빠져 나오는 사이 벽에 걸린 현판에 눈에 들어온다. 2019년 11월 10일 의열단 창단 100주년입니다’라는 문구 아래에는 ‘밀양 없는 의열단이 있을 수 없고, 의열단 없는 의열투쟁이 존재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밀양 없는 의열단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밀양 해천항일운동 테마거리에서 만난 이준설 의열기념관 학예연구사는 “의열단 창립단원 10인 중에는 단장인 약산 김원봉을 비롯해 김상윤, 윤세주, 한봉근 등 4명이 밀양 출신”이라며 “의열기념관이 세워진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 일원인 내일동과 내이동은 이곳에서만 밀양지역 독립운동 서훈자 81명 중 26명이 배출될 정도로 전국에서 유일한 독립운동가 밀집지역”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의열단의 고문의 황상규, 김대지와 의열단 창립 당시의 조력자 그룹에도 윤치형, 이병철 등이 밀양 출신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일제가 가장 무서워했던 조직인 의열단의 창립단원은 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김상윤, 서상락, 신철휴, 윤세주, 이성우, 이종암, 한봉근 등 10명이다. 이전에 알려진 13인에서 10인으로 바뀐 것은 불과 3년 전인 2017년이다. 

김영범 대구대 교수는 2017년 ‘의열단 창립단원 문제와 제1차 국내거사기획의 실패 전말’이라는 연구논문에서 13인설 재검토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의열단 창립단원 숫자는 10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의열단 공약 제9조의 내용(1이 9를 위하여 9가 1을 위하여 헌심함)의 합계 숫자가 10이라는 점을 통해 그리고 1은 단장이며, 9는 일반 단원으로 보아야 한다며, 근거와 함께 당시의 기록과 자료를 연구논문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에 세워진 의열기념탑. 사진 / 조용식 기자
밀양역에 걸려 있는 의열단 창단 100주년 현판. 사진 / 조용식 기자
사진 / 조용식 기자
의열단들은 조선의용대로 들어가 활동을 한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일제가 가장 두려워한 암살·폭파 전문 의열단
의열단은 1920년 3월 밀양으로 폭탄 반입과 함께 거사를 꾸몄으나  1차 거사는 ‘밀정’에 의해 암살·파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명 ‘밀양 폭탄사건’ 혹은 ‘진영사건’으로 불린다. 이후 의열단은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파 의거, 상하이 황포탄 부두에서 일본 육군 대장 저격 의거,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파 의거,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을 습격한 의거 등등의 활동들을 이어간다.

영화 <밀정>은 1923년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파 의거를 모티프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의열단은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일제의 거점 시설을 파괴할 제2차 거사를 계획하고, 상해에서 폭탄을 대량 제조해 경성으로 들어오려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의열단 김시현의 역할을 김우진(공유), 일제 고등경찰인 경부 황옥 역할은 이정출(송강호) 캐릭터에 녹여내 당시의 모습을 영화로 보여준 것이다.

밀양의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에 들어서면 멀리서도 보이는 건물이 있다. 바로 ‘의열기념관’이다. 지난 2018년 약산 김원봉의 생가터에 문을 연 의열기념관 외벽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 의열단’이라는 글과 함께 40명의 이름과 사진이 걸려 있다. 

이준열 학예연구사는 “작은 기념관이지만, 밀양이란 지역에서 많은 독립운동가와 치열한 독입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던 지역적 특성에 대해 인물·종교·교육적 측면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1층에는 의열투쟁사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동영상 관람과 의열단이 추구했던 사상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조선혁명선언의 일부를 발췌하여 새긴 글이 있다. 2층에는 1919년 11월 10일 의열단이 처음 만들어진 중국 길림 반씨농가 모습이 재현되어 있으며, 의열단 창립단원 10명을 소개하는 코너도 만날 수 있다. 또한 의열단이 창단된 이후의 단원들 사진과 함께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 폭탄투척 의거도 소개되어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1920년 의열단 최수봉이 폭탄 투척 의거를 벌였던 밀양경찰 자리에는 주택과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사진 / 조용식 기자
밀양 영남루의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Info 의열기념관
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휴관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입장료 무료
주소 경남 밀양시 내이동 901

사진 / 조용식 기자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의 입구. 사진 / 조용식 기자

애국의 마음이 펄럭이는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
우리나라 3대 명루인 밀양의 영남루를 지나 구도심으로 조금 걸어가면 나뭇가지에 빼곡이 걸려 있는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해천 항일운동 테마거리이다. 생태하천으로 복원 된 해천을 중심으로 상가건물 벽면에는 밀양의 3·13만세운동 당시의 생생한 모습들이 웹툰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주둔했던 중국 산서성 좌권현 마전진 운두저촌의 당집 누각 벽면에는 ‘왜놈의 상관 놈들을 쏴죽이고 총을 메고 조선의용군을 찾아오시요’라는 한글 문구가 인상적이다.

‘독립 운동의 성지 밀양, 밀양은 항일 의열 투쟁의 메카’ 등 밀양의 의열단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적힌 타일 벽화가 눈길을 끈다. 또한, 태극기의 변천사,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박차정의 모습도 잊지말고 찾아보자. 이장수, 윤세주, 김원봉 등을 포함한 8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을 마주하니, 영화 <밀정>의 마지막 장면이 떠 오른다. ‘단원들 이곳을 다녀가다’. 

의열단기념관을 방문한 학생들이 의열단에게 남긴 감사의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의열기념관 전경. 사진 / 조용식 기자
의열기념관 벽면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 '의열단' 대형 플랜카드가 걸려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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