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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임요희의 소설 속 여행지]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복고의 다른 이름 '인천'
[임요희의 소설 속 여행지]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복고의 다른 이름 '인천'
  • 임요희 여행작가
  • 승인 2020.01.16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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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속 옛 풍경을 만나다
과거 클래식 영화 상영하는 추억극장 미림
수도권 유일의 파시가 열리는 북성포구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과거 달동네는 '복고'라는 이름으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인천]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이다.’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괭이부리말은 행정구역상 인천시 동구 만석동 일대를 일컫는다. 대대적인 개발 바람 가운데서도 197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몇 되지 않는 곳이다. 

‘그 바닷가에 고양이 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었다. 호랑이까지 살 만큼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던 고양이 섬은 바다가 메워지면서 흔적도 없어졌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곳은 소나무숲 대신 공장 굴뚝과 판잣집들만 빼곡히 들어찬 공장지대가 되었다.’ -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中

달동네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작품 속 무허가 주택이 난립한 마을에는 멀리 돈 벌러 떠난 아버지와 집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산다. 하루 한 끼로 연명하면서도 어쩌다 먹을 게 생기면 친구와 나눠 먹을 줄 아는 아이들. 너무 어린 나이에 가난의 고통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엇나가기도 한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표지. 사진제공 / 창비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조카처럼 돌보는 영호와, 아이들의 이모 역할을 자처한 명희가 있어 괭이부리마을 아이들은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줄거리이다.

짠 내 나는 항구, 높다란 고층 아파트, 거대한 공장 담벼락에 둘러싸인 마을을 찾아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인천역에서 도보로 10분, 동인천역에서는 버스로 7분 거리에 자리한 만석동 괭이부리말은 만석부두, 북성포구와도 이웃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6.25전쟁 때는 피난민의 거주지였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만한 좁다란 골목 양옆으로 쪽방촌이 이어지는가 하면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도심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연탄재, 깨진 장독과 화분이 발이 챈다. 작품 속 옛 시절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면 만석동보다는 몇 발자국 건너 송현동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이 보다 적합할지도 모른다. 타인의 궁핍한 세간을 기웃거리는 일에 회의적인 여행자라면 더욱 추천할만한 여행지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서 작품 속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옛 시절을 그러모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소나무가 많아 송림산이라 불리던 이곳이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08년. 인천 최초의 상수도 시설인 송현배수지가 준공되면서부터다.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 일자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판자촌 대열을 형성했다. 

규모로 따지면 국내 최대 수준이다. 1800여 채나 되는 판잣집이 거대한 짐승의 등껍질처럼 산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아파트촌과 근린공원이 들어섰고 달동네는 ‘복고’라는 이름으로 송현근린공원 내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tvN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이기도 한 송현근린공원은 동인천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비탈길을 올라 정상에 닿으면 어영대장 신정희의 동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신정희는 1878년 고종 황제의 명으로 화도진 포대를 축성한 인물이다. 인천 동구는 매년 5월 화도진 축제를 열고 신정희 대장의 축성 행렬 행사를 벌이는 중이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화도진 포대를 축성한 신정희 어영대장의 동상.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박물관 제2전시실에서는 옛 교복을 입고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 있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제1전시실로 향하는 계단 벽에는 판자촌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은율솜틀집 3대손 박길주 씨가 기증한 솜틀기.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신정희 동상을 뒤로하고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내부로 발을 디뎌본다. 관람 동선은 매표소 왼쪽 계단 아래로 이어지지만, 그 전에 매표소 오른쪽에 마련된 제2전시실 ‘우리사진관’ 포토존부터 들르는 게 좋다. 빛바랜 교복과 선도부 완장을 두르고 기념사진을 남겨보자. 

인천 토박이라면 단번에 알아볼 만한 ‘미담다방’, ‘송림양장점’, ‘창영문구’도 제2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전기밥솥, 석유곤로, 빙수기, 아이스크림 통, 비닐우산 등 한 시대를 풍미하던 물품의 모습이 온전하다. 제1전시실로 향하는 계단 벽에는 수도국산 판자촌의 모습이 현실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가 달동네 계단을 오르내리는 기분이다.   

계단을 내려서자 어둑한 골목길이 등장한다. 붉은빛을 반사하는 공중화장실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머리를 맞댄 판잣집들이 길손을 반긴다. 창문 너머로,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족의 한때가 들여다보인다. 프로 레슬러 김일의 박치기에 열광하는가 하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드는 중이다. 공동수도, 연탄 가게, 솜틀집까지 모두 정겹다. 특히 솜틀기는 2004년 작고한 은율솜틀집 3대손 박길주 씨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쥐약 놓는 날’포스터는 아련한 그 시절로 우리를 안내한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송현근린공원에 자리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INFO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관람료
성인 1000원, 청소년ㆍ군경 700원 어린이 500원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주소 인천 동구 솔빛로 51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폐관한 미림극장을 리모델링해 새롭게 개관한 추억극장 미림.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고전영화를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어 어르신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어르신들의 핫플레이스, 추억극장 미림
달동네 탐방을 마치고 송현근린공원에서 중앙시장 쪽으로 내려오면 ‘추억극장 미림’과 조우하게 된다. 추억의 클래식 영화를 상영하는 추억극장 미림은 2004년 폐관한 미림극장을 리모델링해 실버전용 극장으로 개관한 곳이다. 

미림극장의 역사는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성영화를 상영하던 천막극장에서 시작한 미림극장은 시세를 확장해가며 번창일로를 걸었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으로 자리매김했으나 2004년 대형 멀티플렉스 시대를 맞아 영업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영영 이별할 수도 있는 미림극장을 부활시킨 것은 시민들이다. 인천시와 동구청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시절 오드리햅번과 비비안 리를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 최근 어르신의 인기 나들이 장소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영화 <전쟁과 평화>, <킬리만자로의 눈>, <기적>을 상영해 적지 않은 인기몰이를 했으며 2019년을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인도 영화 무료상영회를 열었다. 그 외 ‘아듀2019 국악앙상블’공연과 연말맞이 공연 ‘돌아온 라디오쑈’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INFO 추억극장 미림
관람료
성인 5000원, 학생 4000원, 경로(55세 이상) 2000원
주소 인천 동구 화도진로 31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바다를 조망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북성포구 먹거리촌.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북성포구에서는 수도권 유일의 파시가 열린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수도권 유일의 파시를 경험하다
만석동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북성포구의 파시와 일몰을 만나보자. 소설 속에서는 ‘똥바다’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밀물 때면 인근 주민의 대변이 물결을 따라 밀려와 이런 이름을 얻었다. 중구 북성동에 위치한 북성포구는 1970년대만 해도 인근 화수부두, 만석부두와 함께 수도권 대표 어항으로 꼽혔다. 현재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는 데다 연안부두의 기세에 밀려 그때만 한 영화는 누리지 못하지만, 만조를 맞아 여전히 파시가 열리고 있다. 

물때가 되면 싱싱한 횟감을 사기 위한 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 상인들의 고함과 방문객의 웃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는 북성포구는 수도권 유일의 파시(배 위에서 열리는 어시장)가 열린다. 인천 앞바다에서 금방 잡아 올린 생선을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사니 싱싱함은 기본이요, 유통비용이 생략돼 가격마저 저렴하다. 횟감 우럭을 한 쟁반 가득 떠가는 데 중량을 달 것도 없이 만원에 거래된다. 저렴함도 저렴함이지만 일반 수산시장에서는 만날 수 없는 색다른 재미가 있어 일부러 경험해 볼 만하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순댓국은 가격이 저렴하고 주문 즉시 상에 올라와 시간에 쫓기는 노동자들이 즐겨 찾았던 음식이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킨 송현동 순대골목.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북성포구 바로 옆에는 금방 잡은 수산물을 조리해서 파는 먹거리촌이 있다. 소설 속에서는 순자 아버지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감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해상에 가건물을 들인 탓에 바다를 관망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북성포구의 하늘빛과 물빛을 바라보는 호사는 덤이다. 

동인천역 북부광장에 인접한 곳에는 송현동 순대골목이 자리한다. 이곳 순대골목은 1960년대 항만 노동자들과 공장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그 시절 순댓국은 저렴한 가격에 고기 맛을 볼 수 있는 데다, 주문 즉시 상에 올라오는 음식이었다. 시간에 쫓기는 노동자들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음식이었던 것. 비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30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온 다양한 순댓국집과 만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지킨 가게들은 그 모습, 그 맛 그대로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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