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4월호
[여행 레시피] 겨울에도 초록, 전남 보성…태백산맥과 서편제, 소설 속 길을 거닐다
[여행 레시피] 겨울에도 초록, 전남 보성…태백산맥과 서편제, 소설 속 길을 거닐다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0.01.16 0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절에 상관없이 빛 발하는 '보성녹차밭'
소설 속 장면 떠오르게 하는 보성여관과 벌교읍내
작가 조정래의 작품세계 망라한 태백산맥문학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보성엔 반짝이는 여행지가 많지만, 여전히 1순위는 녹차밭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보성] 각종 드라마와 TV 광고에 등장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여행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 강과 바다와 산, 그리고 초록의 차밭과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된 보성의 겨울 이야기…. 

“보성군은 머리 위 북쪽으로 화순군과 순천시를, 아래로는 장흥군과 고흥군, 군의 남쪽 회천면과 득량면은 바다와 맞붙은 전남의 대표적 여행지이다. 홈페이지엔 북쪽을 정점으로 두 팔을 벌린 삼각형 모양이라고 적혔지만 가만히 지도를 보면 꼭 코를 들어 올린 아기 코끼리 같다. 기다란 코에 해당하는 부분은 순천과 고흥을 가른 벌교읍 땅이다.” 

보성, 하면 으레 녹차 밭을 떠올리지만 사실 보성엔 반짝이는 관광지가 한두 곳이 아니다. 임금 제(帝) 자가 들어간 제암산ㆍ존제산ㆍ제석산 외에도 봄이면 철쭉으로 붉게 물이 들 일림산과 초암산, 용추계곡에서 발원해 섬진강이 되는 보성강, 회천 바다와 접한 율포해수풀장, 서편제보성소리전수관과 서재필선생기념공원, 공룡알 화석지와 비봉공룡공원, 조선 후기에 만든 다리로 지금도 통행 가능한 홍교(보물 제304호)….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전망대를 돌아 차밭과 차밭 사이를 걸어볼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보성군 벌교읍을 소재로 한 가장 대표적인 소설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지만, 영화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얻은 이청준의 단편 <서편제>에 등장하는 곳도 여기다. ‘전라도 보성읍 밖의 한 한적한 길목 주막’은 소설 속 주인공이 수소문해 찾아간 소릿재 주막 이야기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널리 알려진 이순신의 장계도 보성의 열선루에서 작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리저리 여기저기 가볼 곳이 많지만 여전히 보성 여행 1순위는 녹차 밭이다. 언제 가도, 계절에 상관없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겨울에도 예쁜 보성녹차밭
회색 하늘이 낮게 드리운 삼나무 숲을 지나 광장으로 향하지만, 중앙계단 좌우의 차밭 위에도 흐린 빛깔만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눈이라도 쌓였다면 좋았을 텐데 근래 남도의 겨울은 눈 인심이 야박하다.

계단을 올라서면 드라마 촬영장소로 쓰였다는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여느 계절에 비해 색감은 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차밭은 여전히 초록으로 싱그럽다. 전망대를 돌아 차밭과 차밭 사이 길을 걸어본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조용한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 찍기 바쁘다. 봄이면 사각사각 속삭이는 목소리로 찻잎 따기에 열중이었을 다원엔 깊은 겨울 그림자만 내려앉았다. 간혹 바람이 조그만 찻잎을 흔들며 지나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 등 드라마 촬영장소로 쓰였다는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는 보성녹차밭.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보성녹차밭으로 더 유명한 대한다원(대한다업보성다원)은 1939년에 개원한 곳으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폐허가 된 것을 1957년 장영섭 회장이 인수해 일군 국내 유일의 녹차관광농원이다. 녹차 외에도 삼나무, 편백나무, 향나무, 주목 등 약 300만 그루의 관상수와 580여만 그루의 차나무가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걸음이 가뿐하다.

겨울이 미처 떠나기도 전, 전망대 주변의 목련은 보슬보슬한 꽃봉오리를 맺고 봄맞이 채비에 한창이다. 삼각대를 세운 남자는 저 멀리 홀로 선 연인을 향해 힘차게 뛰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찰칵, 겨울 풍경은 쓸쓸하지만 사진 속에 담겼을 추억은 사계절 봄이다. 푸드덕, 차밭을 등지고 내려서려는데 하늘에서 분주한 날갯짓 소리가 난다. 처음 왔을 때보다 더 어두워진 하늘엔 작은 새 떼가 무리를 지어 날아가고 있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보성여관은 숙박과 카페를 겸하는 공간으로 등록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됐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보성여관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카페를 겸한 내부에 소설 '태백산맥' 속 글귀가 쓰여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보성여관과 벌교읍내
소설 <태백산맥>에서 남도여관으로 등장한 보성여관은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까지, 질곡의 세월을 간직한 역사적 장소다. 당시 교통의 중심지였던 벌교는 일본인의 왕래가 잦았고, 유동인구도 많았던 번화가였다. 고급 호텔을 방불케 했던 보성여관은 많은 이들이 서로의 사상과 가치를 공유했던 곳이자 한옥과 일식이 버무려진 일본식 가옥이다. 하여 지난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2호가 되었고, 2008년엔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보성여관의 관리단체로 지정돼 2년간 복원사업을 거쳐 2012년 새롭게 개관했다.

카페를 겸한 보성여관의 찻값 4000원엔 입장료 1000원이 포함돼 있다. 커피를 주문하고 창가 쪽에 자리를 잡는다. 그 옛날 만들어진 갈색 나무창살에선 백여 년 전의 체취가 느껴진다. 뜨거운 커피 향이 유리창 너머를 향해 피어올랐다. 눈이나 비가 와준다면 그야말로 소설의 한 장면이 되어주는 곳이다.

벌교 하면 꼬막 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읍내에 밀집된 다양한 식당 중 어느 곳을 택해도 후회는 없다. 시장 수산물가게 앞엔 그물망 가득가득 들어찬 꼬막이 탑처럼 쌓였다. 소설 <태백산맥>엔 ‘벌교 오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꾼들은 장터 거리 차일 밑에서 한 됫박 막걸리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것을 큰 낙’으로 즐겼다고 쓰였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벌교읍내 어디서든 맛볼 수 있는 꼬막.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꼬막 음식은 꼬막정식과 꼬막비빔밥 등이 대표적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천연 발효빵으로 인기를 끄는 모리씨 빵가게.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지금의 벌교는 빵으로도 유명하다. 부러 작고 좁은 ‘모리씨 빵가게’까지 찾아와 천연 발효빵을 사간다. “어, 맛있다!” 먹어본 사람들은 감탄을 한다. 그 밖에도 금융조합~조정래 태백산맥 기념조형물~홍교~김범우의 집~소화다리 등으로 이어진 태백산맥 문학길이 있다.

태백산맥문학관에 들르다
소화다리를 건넌 문학길은 태백산맥문학관 앞으로 이어진다. 1983년 집필을 시작해 6년 만에 완결한 조정래의 장편 대하소설은 한때 이적성 시비로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분단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태백산맥문학관은 소설을 위한 준비와 집필, 소설의 탈고와 출간 이후, 작가의 삶과 문학 소설 등으로 구성됐다.

또 1만6000여 매 분량의 육필원고와 185건 737점의 증여 작품, <아리랑>, <정글만리>, <한강> 등 작가의 다른 책들과 독자들이 필사한 원고, 벽화 백두대간의 염원, 번역판 <태백산맥> 등도 전시돼 있다. 조정래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전시품 하나하나 작가의 열정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태백산맥문학관은 제1전시실과 2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1층의 1전시실은 다시 3개의 마당으로 나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육필원고 등 다양한 전시품을 살펴볼 수 있는 태백산맥문학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문학관 내부를 관람하는 여행객들의 모습.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현부자네 집은 조정래 장편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첫 장에 등장하는 장소로 일본 양식을 가미한 한옥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태백산맥문학관 바로 옆엔 소화의 집이 있다. 조그만 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 신당과 헛간 방까지 소설 속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맞은편의 현부자네는 ‘중도 들녘이 질펀하게 내려다보이는 제석산자락에 우뚝 세워진’ 일본식 한옥이다. 두 집을 지나 중도방죽과 벌교역까지 이어진 태백산맥 문학기행 코스는 출발점인 보성여관에서 끝을 맺는다. 하루 여행의 노곤함을 따끈한 차 한 잔으로 마무리한다.

원데이 보성 여행 레시피
➊ 대한다원 입장료는 성인 4000원이며, 동절기(11월~2월)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문을 연다. 산책로는 20분, 30분, 40분, 1시간 코스로 나눌 수 있는데, 1시간 코스는 향나무숲~차밭전망대~바다전망대~팔각정을 거친다. 인근의 ‘한국차박물관’도 들러본다.
➋ 대한다원에서 35km 거리에 카페 보성여관과 모리씨빵가게가 있다. 근처에 꼬막을 취급하는 식당도 많으므로 벌교에서 식사와 티타임을 해결하는 게 좋다. 보성여관의 아메리카노는 입장료를 포함해 4000원이다. 숙박도 가능하다.
➌ 보성여관에서 1.5km 거리에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이며 월요일엔 휴관한다. 1층과 2층에 각각 전시실이 있다. 문학관 옆에 ‘소화의 집’과 ‘현부자네 집’이 있다. 보성여관과 태백산맥문학관 주변을 잇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은 2시간 남짓 걸린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