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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내 취향대로 떠나는 늦겨울 삼색여행③] 전북 고창 동림지 가창오리 군무와 풍천장어 미식 여행
[내 취향대로 떠나는 늦겨울 삼색여행③] 전북 고창 동림지 가창오리 군무와 풍천장어 미식 여행
  • 박효진 기자
  • 승인 2015.01.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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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박효진 기자
눈이 내린 동림지는 설경과 겨울 철새가 지배하는 환상적인 겨울 왕국이다. 사진 / 박효진 기자

[여행스케치=고창] 서울에서 4시간가량 차를 달려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로 접어드니 밤새 내린 눈이 온 천지를 덮고 있다. 고속도로는 말끔하게 제설작업이 끝났지만, 동림지를 품고 있는 성내면 소재지로 들어서니 지난밤 내린 눈이 아직까지도 군데군데 많이 남아 있어 최대한 조심스레 차를 몰아간다.


고창의 동림지는 한적한 시골마을 저수지이지만, 근래에 새롭게 떠오르는 탐조여행의 명소이다. 겨울 월동을 위해 이 저수지에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 마리의 철새가 찾아와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저수지 주변의 신성리 장수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10여 년 전 일부 무리의 겨울철새가 이곳에서 월동을 하던 것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최대 수십만 마리까지 불어나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겨울철새들의 월동 명소가 된 것이란다.

동림지 수문 근처 공터에 차량을 대고 장딴지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고 조심조심 둑 위로 올라섰다. 처음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밤새 순백으로 치장된 동림지 물가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는 십여 마리의 청둥오리와 물닭 등의 겨울철새들. 이 추운 날씨에도 철새들이 물에서 지내고 있다는 측은함도 잠시, 무심코 시선을 동림지 안쪽으로 보냈다가 탄성을 내지르고 만다. 수면을 까맣게 물들이며 수천, 아니 수만 마리는 됨직한 가창오리 떼가 동림지 안쪽에서 유유히 놀고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목 오리과 오리속에 속하는 가창오리는 전 세계적으로 최대 50여 만 마리로 추산되는데, 그중 90%가 넘는 개체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중남부지방에서는 겨울철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철새지만, 사실 가창오리는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기재되어 멸종위기종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귀한 겨울손님이다.
 

금빛 물결이 동림지 수면에 내리면 곧 가창오리의 군무가 시작된다. 사진 / 박효진 기자

가창오리는 독특한 습성을 가진 새로도 유명하다. 낮 시간 대에는 천적을 피해 호수 중심부에서 먹이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질 때쯤이면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하늘로 비상해 창공을 여러 번 선회하다가 잠자리를 찾아 날아가는 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을 담은 영국 BBC의 명품 자연 다큐멘터리인 <살아 있는 지구(Planet Earth)>에 우리나라를 소개한 영상으로는 유일하게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담겼던 것이다. 그토록 멋진 장관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벌써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달콤한 열매는 쉽게 얻지 못하는 법. 아직까지는 태양이 하늘에 한 뼘 가량 남아 있어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분홍색 노을을 배경으로 하늘을 캔버스 삼아 날고 있는 가창오리 때. 여러무리로 갈렸다가 다시 합쳐지곤 한다. 사진 / 박효진 기자

가슴을 울리는 가창오리 떼의 황홀한 군무
동림지 안쪽에서 부산스럽게 노니는 가창오리 떼를 홀로 바라보길 몇 십 분여, 시간차를 두고 차량 여러 대가 차례차례 동림지 주변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뭔가 싶어 바라봤더니 가창오리 군무를 보기 위해 아이 손을 잡고 나선 젊은 부부와 가창오리 떼의 군무를 찍기 위해 동림지를 찾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다. 가창오리가 혹여 놀랄까봐 서로 말 없이 대충 눈짓으로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석양빛으로 물들어가는 동림지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말없이 수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길 얼마쯤, 시간이 오후 5시를 넘어가니 동림지를 금빛 물결로 가득 채우며 태양이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주워들은 정보로는 때론 가창오리가 군무를 펼치지 않고 그냥 날아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적잖이 긴장이 되며 입술이 바짝 마른다. 행여 아이가 떠들어 군무를 방해할까봐 아이의 입단속을 시키며 손을 맞잡은 젊은 부부와 카메라 셔터에 손가락만 얹은 채 동림지로 시선을 고정한 아마추어 사진작가들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 사위가 어둑어둑해져 오늘은 녀석들의 군무를 못 보는가 하는 아쉬움이 찾아들 무렵, 가창오리 무리에서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대장으로 보이는 몇 녀석이 꽥꽥거리면서 파닥파닥 날갯짓을 시작하니, 덩달아 무리 전체도 꿱꿱거리며 파닥파닥 날갯짓으로 화답한다. 한두 놈이 하늘로 날아오르니, 무리 전체도 하늘로 솟구친다. 녀석들이 동림지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날개야 돋아라.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 


“두두두두!” 대지를 힘차게 달리는 말발굽 소리던가, 아니면 굵은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던가. 가슴을 쿵쾅쿵쾅 뛰게 하는 선 굵은 소리가 천지사방을 진동시킨다. 날아오른다. 수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거대한 무리를 지어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덩달아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환호성도 하늘로 솟구친다.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이 필요한가. 웅장하다. 아니 경이롭다. 살면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기에 가창오리의 날갯짓 소리에 내 가슴도 마구 뛴다. 

하늘로 날아오른 가창오리 떼는 마치 자신들을 오랫동안 기다려준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라도 하듯, 금빛 하늘을 캔버스 삼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온갖 그림을 그린다. 때론 구름이 되었다가 때론 동물이 되었다가, 드넓은 동림지 하늘을 배경으로 걸작을 그려내다,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적막감과 고요함만을 남겨둔 채 산 너머로 사라져 간다.  

고창의 풍천장어는 토실토실한 육질과 고소한 식감을 가진 대표 보양식이다. 사진 / 박효진 기자
사진 / 박효진 기자

겨울 보양식의 왕좌 선운산 풍천장어
가창오리와의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아산면 삼인리의 선운산 풍천장어 거리로 향한다. 한겨울을 나며 체력을 많이 소모한 내 몸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원기회복을 돕기 위해서다. 선운산 풍천장어 거리는 풍천장어 전문점만 약 40여 곳이 밀집한 장어 전문 거리로, 고창의 명물인 풍천장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여러 곳의 음식점 중에 한 곳을 낙점해 자리를 잡고 앉아 장어구이를 주문했다. 

고창의 명물인 풍천장어의 ‘풍천’을 지명(地名)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풍천은 ‘바람 풍(風)’과 ‘내 천(川)’이 합쳐진 단어로, ‘바닷바람이 들어오는 강의 하구’를 뜻한다. 선운산 앞을 지나 서해로 흘러나가는 주진천(인천강)은 경사도가 낮아 밀물 때면 바닷물이 선운산 부근까지 들어왔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운산 부근의 장수천은 풍천으로 불렸고, 이런 연유로 이 부근에서 잡힌 장어에도 풍천장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주문한지 얼마쯤 지났을까. 먹음직한 빛깔의 소스로 초벌구이가 된 풍천장어가 상에 오른다. 가창오리의 군무를 기다리느라 허기가 져서인지 미처 체면을 차릴 새도 없이 정신없이 먹어 치운다. 고소한 향과 토실토실한 육질,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풍천장어가 입안에서 춤을 춘다. 장어와 궁합이 잘 어울린다는 고창의 또 다른 명물인 복분자주를 함께 곁들이니 미각과 후각이 함께 호강을 누린다. 

맛있는 장어요리를 먹고 기분 좋은 포만감 속에서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니, 내가 꿈꾸어왔던 늦겨울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느꼈다는 만족감이 든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늦겨울 여행의 묘미를 즐겨보자. 이 겨울 전북 고창에는 황홀한 가창오리 떼의 군무와 맛있는 선운산 풍천장어가 기다리고 있다.

INFO. 동림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산10-9 

INFO. 선운산 풍천장어 거리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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