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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25] 식민지 관문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옛 서울역사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25] 식민지 관문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옛 서울역사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5.01.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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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구완회 작가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스위스의 루체른 역을 모델로 삼았다는 웅장한 벽돌건물은 한때 식민지의 관문이었다. 일본은 이곳을 만주에서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 연결시키려고 했다. 패전으로 일제의 야망은 사라졌으나 서울역은 여전히 한반도 교통의 중심이었다. 10여 년 전 새로운 역사가 건축되면서 옛 서울역사는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1924년 공사 중인 서울역사의 모습. 이듬해 완공되었다.
1924년 공사 중인 서울역사의 모습. 이듬해 완공되었다.

서울역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이 있을까? 성인이라면 붉은 벽돌 건물의 옛 서울역사에서 기차를 탔던 기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열차와 관련된 기능을 새로운 역사에 양보하고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1925년 문을 연 옛 서울역사는 90년 가까이 서울의 관문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차역이었다. 

웅장한 돔에 서양식 아치가 이국적인 서울역의 설계자는 도쿄역사를 설계한 다쓰노 긴고의 제자인 스카모토 야스시로 알려져 있다. 건축 당시 서울역사는 연면적 6,631㎡의 초대형 건물로 ‘동양 제1역’인 도쿄역의 뒤를 잇는 ‘동양의 제2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2003년 새로운 서울역사가 건설될 때까지 옛 서울역사는 수많은 열차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었다. 지금은 ‘문화역서울 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옛 서울역사는 많은 이들에게 여행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본 도쿄역사의 야경. 도쿄역울 설계한 다쓰노 긴고의 제자인 쓰카모토 야스시가 서울역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구완회 작가
옛 서울역사의 중앙홀은 이국적인 대리석 기둥과 아치 현관이 유럽의 기차역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사진 / 구완회 작가

일본과 만주, 유럽을 잇는 관문
하지만 서울역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서울역은 단순히 식민지 경성을 대표하는 기차역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일제는 서울역을 일본과 조선, 만주를 잇는 ‘국제역’으로 기획했다. 도쿄에서 출발한 일본 국철이 시모노세키에 이른 후, 부관연락선으로 갈아 타 부산에 닿고, 다시 기차에 올라 서울역을 거쳐 만주와 시베리아, 더 나아가서는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 연결하려는 구상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역을 건설한 주체는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였다. ‘만철’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던 이 회사는 마치 영국의 동인도회사처럼 식민지 경영을 위한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다. 식민지 수탈을 위해 인도 전역에 철도를 깐 영국처럼, 일본도 만주의 식민 경영을 위해 철도를 중심 사업으로 채택한 것이다. 

일제가 서울역을 크고 화려하게 지은 것은 이렇듯 제국의 전초기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일본의 도쿄역과 비슷한 규모로 세우려고 했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규모도 줄이고 공사 기한도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도 서울역은 식민지의 관문으로 손색이 없는 위용을 자랑했다.

건축 당시 1층에는 매표소를 겸하는 중앙홀, 주로 조선인들이 사용했던 3등 대합실, 일본인들이 이용한 1,2등 대합실과 부인대합실, 귀빈실, 역장실 등이 있었다. 3등 대합실은 남녀가 함께 이용했지만, 1,2등 승객은 부부라도 남녀를 구별해 여성은 부인대합실에 따로 머물러야 했다. 2층에는 당시 최고의 서양식 레스토랑인 ‘서울역 그릴’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상의 소설에도 등장하는 이곳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집합소였다. 

옛 서울역사 앞에는 1919년 당시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서울역에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있다. 사진 / 구완회 작가
가장 넓은 3등 대합실은 다양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 / 구완회 작가

벽난로에 샹들리에까지 갖춘 귀빈 대합실
옛 서울역사가 원형복원 공사를 마친 후 ‘문화역서울 284’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2011년의 일이다. ‘문화역서울’이란 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임을 뜻하고, 284는 서울역의 사적 번호에서 따왔다. 전시회는 대부분 무료여서 시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육중한 정문을 열고 들어가니 12개의 돌기둥과 돔으로 구성된 중앙홀이 보인다. 천정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강강술래를 형상화한 작품이란다. 오른쪽의 넓은 3등 대합실에는 거대한 태엽시계를 중심으로 한 설치 미술이 전시 중이고, 조선총독이 사용했다는 귀빈실은 서양식 벽난로와 샹들리에가 여전히 화려하다. 서울역 그릴의 대식당이 있는 2층은 여러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다양한 전시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90년 된 근대문화유적에서 보는 첨단의 전시는, 시공간을 뒤섞은 듯 묘한 울림을 주었다. 그 속에서 옛 서울역사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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