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군산] 새만금 간척사업이 재개된 뒤 육지와 성큼 가까워진 섬. 전북 군산의 선유도에 들어가면 다리로 연결된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드넓은 갯벌, 지천에서 자라는 봄나물,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하이킹코스, 풍족한 인심까지. 바다가 펼쳐놓은 환상의 놀이터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자.
한 곳에서 섬 네 곳을 구경할 수 있으니 이런 걸 두고 ‘1타 4피’라고 해야 하나? 1박을 할 생각이라면 기본적인 계획을 세워 알차게 둘러보도록 한다.
배 안에서 고군산군도와 새만금 방조제를 구경하고 선유도에 도착한다. 63개로 이루어진 ‘섬의 무리’인 고군산군도에서 세 번째로 크고 중심이 되는 섬이 선유도이다. 그래서인지 숙박시설과 횟집이 밀집해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 경찰서, 심지어는 우체국도 있다. 섬에 왔으니 무언가 아쉬운(?)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선유도는 덜 아쉬운지라 선유대교를 건너 무녀도로 향한다.
선유도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자전거 하이킹(1시간 3,000원, 하루 1만원)을 하면서 가거나 미리 민박집을 정해 연락을 하면,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콜택시(한번 이용료 5,000원)’가 마중나온다. 다리로 줄줄이 이어진 섬들은 알파벳 더블유(W)자와 엠(M)자가 교차되어 산이 ‘스윽’ 나타나는가 하면,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썰물 때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덩그러니 섬만 있는 곳에 비해 지루할 틈이 없다.
무녀도나 장자도, 망주봉 너머의 진월리는 선유도에 비해 한산해서 섬의 정취를 느끼기에 그만이다. 물때를 잘 맞춰 나가면 아침 일찍 또는 오후에 갯벌체험을 할 수 있는데 마침 때가 맞아 마을 주민을 따라 바지락을 잡으러 나선다.
관광객들은 바지락 채취가 불법이지만, 하루 묵는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하면 아침 국거리 정도는 캘 수 있다.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긴 장화를 신고 호미만 있으면 된다. 무녀도 마을 주민 갯벌에 다 나왔다.
“일단 넓게 홈을 만들어서 바지락을 캔 다음 홈에 물을 부으면 펄하고 바지락이 분리가 잘 되아요. 저 양반처럼 농땡이만 안 피면 된당께요.” 무녀도에서 바지락 캐기의 달인인 주민에게 비법을 물었더니 애꿎은 청년회장을 타박한다. 한여름만 제외하고 섬의 여자들은 바지락을 캐서 살림에 보태고 남자들은 겨울에 김 양식을 해서 한해를 먹고 산다.
바지락은 마을의 공동수입원이기 때문에 다 같이 작업해서 똑같이 분배한다. 바쁜 겨울이 아니면 남자들도 갯벌에 나와서 종종 일손을 거든다. 호미 하나 들고 옆에 쭈구려 앉아 바지락을 캐는데, 호미를 넣는 족족 바지락이 걸린다. 이십여 분도 채 못 캤는데 바구니를 대충 채울 수 있을 정도다. 조그만 게도 한 마리 잡았다.
이만하면 됐다싶어 바구니를 옆에 끼고 구경 다니는데, 망주봉이 훤히 보이는 곳에 주민 두 분이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다. 옆에 한 광주리 가득 담긴 것은 다름 아닌 소라. 소라를 캐고 있는 것이다. 갯벌에서 바다 쪽으로 물이 야트막히 차 있는 곳을 잘 살펴보면, 손바닥 절반 크기의 홈에 숨구멍이 손톱만큼 나 있는 곳이 있는데 들추면 어김없이 소라가 걸려나온다. 소라 두 개를 주셔서 바구니에 냉큼 담았다. 이번엔 멀리서 ‘바지락 달인’이 불러 가보니 꼼지락거리는 주꾸미를 건네준다. ‘심봤다!’
갯벌에는 공생하는 갯것들이 이렇게나 많다. 그뿐인가. 갯벌의 돌 사이사이에도 싱싱한 굴이 천지다. 새만금 갯벌에도 이처럼 꼬물거리는 생명들이 있겠지. 여의도 면적의 140배인 1억2천여 평의 첨단농업단지와 관광지가 새로 나타나고, 한 곳에서 막으면 다른 한 곳에서 생겨나는 게 갯벌의 자연적인 현상이라지만, 사라져 가는 갯벌이 그래도 아쉽다.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의 18개 섬은 특산물인 바지락과 굴이 많아 생활터전이 좋다. 자원이 풍부해 인심도 풍요롭고, 민박집에서 주인이 차려준 식사를 함께 하며 정을 나누는 모습은 흔한 일이다. 조그만 게는 살려주고 방금 잡은 바지락으로 국을 끓인다. 데친 주꾸미와 소라 등 싱싱한 민박집표 백반이 나온다. 바지락국이 달디 달다. 낚시로 잡은 회를 자연산 취나물에 싸먹는 것은 이곳에서만 맛보는 독특함이다.
무녀도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산에는 봄이면 취나물, 머우대, 쑥, 시커멓고 굵직한 ‘먹고사리’가 지천이다. 무당이 제당에 상을 차려놓고 춤추는 모습과 같다하여 무녀도라 불릴 뿐, 실제 섬에 무당과 관련된 토속적인 모습은 거의 없단다.
선유도의 망주봉 앞에는 가족들의 피서지로 제격인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고, 무녀도로 건너가기 전에, 우회전하면 남앙리에 몽글몽글한 돌이 매력적인 아담한 몽돌해수욕장이 있다. 몽돌해수욕장은 모래가 묻어나지 않아 아이들을 데려와도 좋고 삼겹살을 구워먹어도 흙 들어갈 걱정 없다. 수백, 수천 년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진 돌을 밟으면 지압효과도 있어 부모님을 모시고 오기에 알맞다. 수심이 깊어 얕은 곳에서만 하는 물놀이에 적합하다.
선유도에서 장자대교를 건너 장자도를 지나면 대장도가 나온다. <외인구단>, <바람불어 좋은 날>의 이장호 감독이 <그 섬에 살고 싶다> TV프로그램을 촬영하며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어촌풍경이 짙은 섬이다.
섬에서만 자생하는 수석과 분재를 전시해놓은 ‘도원경’과, 서울로 과거를 보러 떠난 선비가 첩을 데리고 돌아오자, 아들을 업고 매일 산에 올라 남편이 금의환향하기만을 기다렸던 부인이 크게 상심하여 돌아서는 순간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는 ‘장자할머니 바위’가 이곳에 있다.
도상에는 장자도와 대장도가 구분되어 있지만, 섬에 사는 사람들은 두 섬을 합쳐 장자도라 부른다. 두 신선이 마주앉아 바둑을 두는 형국이라 이름 지어진 선유도. 신선들이 내려와 놀고 갔다는 천혜의 놀이터에 사진기와 신발을 놔둔 채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자유가 그리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