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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버스타고 떠나는 여행] 버스타고 산·숲·바다·우주 한바퀴 전남 고흥 대중교통 여행
[버스타고 떠나는 여행] 버스타고 산·숲·바다·우주 한바퀴 전남 고흥 대중교통 여행
  • 전설 기자
  • 승인 2015.02.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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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고흥] “차 없이 온다고요? 하따, 고생 무자게 할텐디….” 고흥군청 문화관광과의 이경식 씨가 외지인의 무모함에 말끝을 흐린다. 버스 타고 고흥의 산, 숲, 바다 그리고 우주를 모두 돌아보겠노라 장담을 해도 못내 걱정스러운 눈치. 그쯤 되니 이상한 오기가 생기는 거다. 두고 보라. 내 꼭 버스타고 고흥 한바퀴 아니, 고흥의 구석구석을 모두 돌아보고 말테다.

출발하기에 앞서 “다 좋은데 차 없으면 꽝”이라는 전남, 그것도 남쪽 끝 고흥으로 떠난 사연을 털어놔 볼까. 고흥은 한반도와 꼭 닮은 또 하나의 반도다. 지도를 보면 남도 끝자락에 돌출된 육지가 탐스러운 포도송이처럼 바다위에 열려 있는 것이 보일 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산천이 그러하듯, 고흥 역시 수많은 볼거리를 품고 있다.

제1경 팔영산을 비롯한 바위산에 오르면 다도해의 풍요로운 경치가 눈에 담기고 산과 바다 사이에는 수백 년 묵은 편백나무, 비자나무, 삼나무 숲이 푸르게 우거진다. 배를 타지 않고도 우주센터가 있는 나로도, 한센병 환자의 아픔이 어린 소록도, 멸종위기 동식물의 보고인 거금도로 섬 여행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고흥 여행길의 즐거움. 무엇보다 부지런한 군내버스가 구석구석의 여행지를 연결하고 있으니 고생길을 자처한 여행자의 욕심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거인의 발가락을 타고 팔영산 정복

“어디 가서 고흥 가 봤다고 자랑할라믄 딴 덴 둘째치더라도 팔영산은 올라갔다 와야제. 봉우리가 여덟이라 팔영산인디 이기 고흥서 젤로 높은 1등산 아니요. 여덟 봉우리가 꼭 사람 발가락 맨치로 붙어있는디 이 봉우리 다 밟아보기 전에는 고흥에 와도 온 게 아이라.”

옳소! 고흥 토박이 김성룡 씨의 말에 맞장구치며 과역행 버스에 오른다.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하지만, 서울하늘 아래 그 복잡한 지하철도 연신 갈아타고 다니는데 시골 버스라고 어려울 게 무엇이랴. 마침 가는 날이 과역장날이니 흥겨운 장터 구경은 덤이다.

볕 좋은 날. 과역오일장의 풍경.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볕 좋은 날. 과역오일장의 풍경.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어제는 벌교장(4, 9일), 오늘은 과역장(5, 10일), 내일은 동강장(6, 1일)이 서야. 시골서는 하루걸러 하루가 장날이여.” 한적한 시골길을 가로지르는 군내버스는 ‘달리는 사랑방’이다. 서로 안부 묻느라 바쁜 어르신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덕담을 듣다보니 어느새 능가사 정류장에 도착한다. 팔영산 탐방 지원센터에서 천년고찰 능가사~야영장~흔들바위를 거쳐 제1봉 유영봉까지는 두 시간 남짓. 멀리 떨어진 칠성봉(7봉)과 적취봉(8봉)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풍치가 가장 좋다는 두류봉(6봉)까지 찍고 돌아오면 약 7.5km, 넉넉잡아 왕복 5시간 코스다. 지도상으로는 만만한 거리인데, 올려다 본 봉우리는 막막하리만큼 멀다. 여섯 봉우리를 돌아보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등산화 끈을 꽉 쪼이고 하늘로 뻗은 산길을 오른다.

호기롭게 출발한 지 두 시간이 넘어가자 앙 다문 잇새로 방언이 터진다. 숨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다 못해 뒤로 넘어가기 일보직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만 같던 오르막길 너머 하늘이 열린다. 드디어 제1봉 유영봉 정상이다. 숨 헐떡이며 아래를 굽어보니 키 작은 구릉무리가 경례를 하듯 팔영산의 첫째 봉우리를 우러러보고 있다. 구릉 너머엔 알록달록한 어촌 살림집의 지붕이 아른거리고 좌로는 여자만의 고른 뻘밭, 우로는 바다위에 꽃처럼 핀 섬 적금도가 눈에 들어온다. 더 멀리엔 한 몸처럼 맞닿은 하늘과 바다의 시푸른 풍경이 부풀어 오른다. 경치 구경에 정신 팔려 여유를 부리는 것도 잠시, 거대한 다섯 봉오리를 마저 넘어갈 생각을 하니 앞이 다 깜깜하다. 어차피 거기가 거기 같은데 다 돌아볼 필요 있을까.

“봉우리가 같은자리에 주르륵 붙어 있는 것 같아도 1봉이랑 2봉에서 보는 풍경이 달라요. 여짝선 안보이던 풍경이 저짝선 보이고, 저짝 것이 이짝에선 안보이고 항께 오르는 재미가 있지요. 그나마 예전엔 쇠줄 잡고 올라갔는디 2014년 정비사업으로 길을 닦아서 오르기도 쉬워 졌어요. 여까지 왔는디 칠성복 까지는 못가도 육봉(두류봉)까지는 가야지 않겄어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사무소 고흥분소의 고상곤 소장의 격려에 후들리는 무릎에 다시 힘을 넣는다. 볼 것 많은 고흥에서도 1등이라는 팔영산, 그 풍경을 질리도록 눈에 담아가리라.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소록도를 마주 본 녹동향 전경.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한 '봉래산 삼나무 숲'.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한 '봉래산 삼나무 숲'.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고흥의 숲·바다·우주 그리고…소록도
고흥에서의 이튿날, 이른 아침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으로 향한다. 관람시간을 두어 시간 남겨놓고도 발길을 재촉하는 것은 우주여행에 앞서 비밀의 숲 산책에 나서기 위해서다.
“봉래산 삼나무 숲이라고 아주 유명허요. 삼나무랑 편백나무가 한 1만 그루 될 낀데요. 일제강점기 때 왜놈들이 심고, 숲 살린다고 마을에서 심고해서 숲이 참말 커요. 근디 가끔 멧돼지 튀나온단 소리 있응께 조심허시오. 눈 마주치면 나무 위로 후딱 올라가야 살어요.”

조용한 숲 산책을 상상하며 왔는데 멧돼지가 웬 말. “나무 탈 줄은 알지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박병훈 기사의 당부를 뒤로하고 우주과학관 뒤편으로 2km 남짓 시름재 고개를 넘는다. 먼발치에서도 검게 우거진 숲을 향해 걷다보니 오른편으로 난 숲 입구가 보인다. 천천히 들어서는데 예고도 없이 딴 세상이 펼쳐진다. 수백년 묵은 삼나무와 편백나무 발 디딜 아니, 새로 뿌리내릴 틈도 없이 빽빽하다. 진초록의 잎사귀 사이사이 햇볕이 들이치고, 그 아래 의자 몇 개가 놓여있을 뿐인데 이미 한폭의 그림이다. 별안간 나무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풀숲에 벌러덩 눕고 싶어지는 것은 왜 인지. 이런 풍경이라면 느닷없이 멧돼지 몇 마리가 뛰어나온다 한들 흉볼 것이 못되겠다. 애초에 숲의 주인은 그들이었으니.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앞 해변의 운치.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 앞 해변의 운치.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한센병은 낫는다"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구라탑.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한센병은 낫는다" 소록도 중앙공원에 있는 구라탑.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그대로 숲에 주저앉고 싶지만, 나로도 여행의 정점을 즐기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예내저수지를 건너 자그마한 해변과 맞닿은 우주과학관으로 향한다.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은 우주를 테마로 한 전시와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과학관이다.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느긋한 마음으로 야외 전시장부터 건물 내 상설전시장 순으로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숨을 돌릴 겸 야외전시장에 딸린 고즈넉한 바닷가를 거닐다가 국내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실물크기 모형이 우뚝 서 있는 로켓광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시계를 보니 우주 탐사로봇을 비롯한 32종의 작동 전시물과 국제우주정거장 등 90여종의 전시까지 알뜰하게 둘러본 뒤 ‘4D 디지털 영상관’으로 향하면 충분할 듯싶다. 180도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는 우주 영상을 감상하는 내내 의자가 진동하고 바람이 분다니 어찌 기대하지 않을쏘냐. 숲을 걷고 바다를 보라보며 쉬는 나로도 여행은 그렇게 머나먼 우주에서 끝을 맺는다.

빠듯한 일정 탓일까. 여행자의 시계는 이미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을 지났음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도 매표소 앞에 서니 새삼 가슴이 뛴다. 광주, 부산, 여수, 순천…. 창구에 가고 싶은 곳만 말하면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그 당연한 사실에 새삼 가슴이 설렌다. 집이냐, 다시 여행이냐. 행선지를 정하지 못해 머뭇거리다 문득 눈에 익은 세 글자에 마음이 동한다. ‘소록도 방면 14:30’. 이곳을 잊을 뻔 했다. 사람들의 편견과 무지에 살이 문드러지는 고통보다 더한 고난을 겪었던 한센인의 땅.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이지만 작은 섬을 둘러보고 나올 때까지는 버텨 주길 바라며 다시 매표소 창구 앞에 선다. “소록도 한 장이이요!”

INFO. 
예상경비
2인 성인 기준(1박 2일, 서울 출발)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고흥 녹동터미널 왕복 고속버스 13만2800원 + 녹동~과역~능가사~~고흥~나로도~우주센터~소록도 군내 버스요금 2만6000원 안팎 + 숙박비 3만원 + 식비 6만원(1끼 1만원 계산) = 24만8800원

추천 숙소 팔영산장
숙박료 4인실 6만원, 5인실 7만원, 15인실 23만원
홈페이지 www.팔영산장.com
주소 전남 고흥군 점암면 팔봉길 19-65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추천 별미 삼미수산 & 삼미식당
가격 제철 회는 시가로 저렴하게 구입가능하며, 회를 떠서 식당에 오면 차림비 1인당 3000원을 받고 매운탕 및 식사를 차려준다.
주소 전남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2782

Tip. 
버스타고 팔영산

녹동터미널에서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직행버스를 타고 과역터미널로 간 뒤 능가사로 가는 군내버스(9:00, 11:00, 12:50, 13:40, 15:40, 16:40, 17:40, 19:20)로 갈아탄다. 팔영산등반을 마친 후 과역으로 나올 때도 군내버스(6:00, 9:00, 10:00, 12:35, 13:45, 15:40, 17:40)를 이용한다. 차를 놓쳤다면 팔영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팔영산장’에 묵거나 택시를 타면 된다. 택시 요금은 능가사에서 과역터미널까지 1만원 선.

버스타고 나로도
고흥터미널에서 나로도 우주과학관까지 가는 직행버스(7:00, 10:20, 13:12, 17:10)는 하루 4차례 운행한다. 오전 일정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상대적으로 배차 간격이 짧은 나로도터미널 행 버스를 탄 뒤 우주센터로 택시로 이동하는 것이 현명하다. 나로도터미널~우주센터 택시 요금은 1만원 선. 우주과학관에서 고흥방면으로 나오는 차편은 변동될 가능성이 있으니 반드시 안내창구에서 고흥터미널 혹은 나로도터미널 상행 시간표를 확인하자.

버스타고 소록도
녹동터미널에서 소록도행 버스(7:30, 10:00, 13:00, 15:30)는 하루 4회 운행하며 택시 요금은 7000원 선이다. 소록도에서 녹동터미널행 버스(7;20, 8:20, 10:50, 13:50, 16:20)는 하루 5회 운영한다. 소록도는 섬전체가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중앙공원을 비롯해 외부인 통행구역이 정해져 있다. 외부인의 경우 숙박이 불가능하며 오후 6시 이전에 섬을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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