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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김준의 섬 여행 55] 그 섬에는 공룡이 있다 전남 여수 사도, 낭도, 추도
[김준의 섬 여행 55] 그 섬에는 공룡이 있다 전남 여수 사도, 낭도, 추도
  • 김준 작가
  • 승인 2015.04.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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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스케치=여수] “배 안 부리면 살기 힘들어. 아파트가 두 채나 있는데 뭐하러 들어와.” 해삼을 손질하던 할머니가 아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작은아들은 밭을 일구기 위해 서울에서 새벽같이 내려왔고, 여수에 사는 큰아들도 들어왔다. 조용한 섬이 두 아들 내외와 ‘물 갈라짐’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여행객의 발길을 가장 먼저 붙드는 것은 공룡이다. 1억 년 전 사도는 공룡이 노닐던 호수였다.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객의 발길을 가장 먼저 붙드는 것은 공룡이다. 1억 년 전 사도는 공룡이 노닐던 호수였다.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공룡이 살았어요

여객선이 여행객을 쏟아 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낚싯배를 타고 들어왔다. ‘물 갈라짐’을 보기 위해서다. 물이 빠지면 사도, 추도, 증도, 장사도, 나끝, 연목, 중도 7개의 섬이 ‘ㄷ’자 모양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안에 호수 같은 바다를 사호(沙湖)라 부른다. 사도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마침 주말과 겹쳐 다른 해보다 찾는 사람이 많다. 게다가 낭도, 사도, 추도가 전라남도에서 브랜드 사업으로 추진하는 ‘가고 싶은 섬 가꾸기’의 대상으로 선정되어 주민들이 한껏 고무되어 있다. 영등사리에 맞춰 목련은 이른 꽃망울을 터트렸고, 개나리와 철쭉도 활짝 피었다.

여수의 ‘보돌바다’는 1억 년 전엔 작은 언덕과 호수였다. 사도, 낭도, 추도, 목도, 적금도 근해에 백악기 퇴적층이 넓게 분포되어 있고 많은 공룡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화석은 ‘수천 수백만 년 전에 살았던 과거 생명체의 유해나 흔적’을 말한다. 생명체가 땅에 묻히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생물이 암석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에 많은 퇴적층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렇게 형성된 퇴적층이 융기한 후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도, 낭도, 추도에는 3400여개의 공룡발자국이 있다.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시도, 낭도, 추도에는 3400여개의 공룡발자국이 있다.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커다란 공룡이다. 사도로 들어가는 길목 양쪽에 장승처럼 공룡이 서 있다. 주민들은 막걸리와 해물파전으로 객을 유혹하고 면사무소에서도 떡국을 마련했다. 객을 위한 배려다. 어느 여행지에서 이런 맛을 보겠는가. 여행객 중에는 호미와 그릇을 챙겨 놓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바닷길을 외지인에게 내준 주민들은 일찌감치 낙지, 고둥, 미역 등 갯것을 줍기 위해 나섰다.

사도에는 텃밭을 제외하면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없다. 그래서 일찍부터 고기잡이를 해서 번 돈으로 낭도에 수천 평의 산비탈을 개간했다. 그곳에 고구마도 심고 보리도 심어 식량을 마련하고 땔감과 식수도 구했다. 고기 잡는 기술만큼은 남에게 지지 않아 멀리 영광 칠산바다와 옹진 연평바다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낭도의 경사진 밭을 일굴 수 있었던 것도 생존의 본능으로 익혀온 고기잡이 능력 덕분이었다. 사도에 뭐 해 먹을 것이 있어 ‘돈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겠는가. 궁하면 통한다고, 조상들의 피와 땀, 때로는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이 가져다준 벼슬이다. 태풍이 섬을 덮치고,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 자식들에게 뱃일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섬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게가 밭틀길에 위태롭게 선 채 뭍사람의 발길을 붙든다.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지게가 밭틀길에 위태롭게 선 채 뭍사람의 발길을 붙든다.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낭도에는 술도가가 있다
물길이 열리자 사람들이 하나둘 길목으로 모여들었다. 급히 낭도로 이동했다. 몇 차례 낭도를 오가면서 보아둔 ‘따순기미’가 생각났다. 가장 높은 봉우리 ‘상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위치해 진달래, 제비꽃, 노루귀 등 봄꽃이 일찍 피는 곳이다. 산길을 반 시간 쯤 오르자 멋진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가 자리한 따순기미에 도착했다. 원래 두 그루였지만 한 그루는 몇 해 전 벼락을 맞고 부러졌다. 상산은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많이 올랐던 산이다. 정상에는 축조양식이 독특해 보전 가치가 높은 봉화대가 남아 있다. 적이 침입하면 고흥 팔영산 봉화대에서 신호를 받아 화양면 장수리 봉화대로 연결했던 곳이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물이 빠진 모습이 잘 드러났다.

낭도에는 여산리와 규포리 두 개의 행정리가 있고, 답동, 탑고지, 도장개 등 몇 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여수시 화정면에서는 개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다. 한때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도 있었지만 모두 문을 닫았다. 작지만 아늑한 해수욕장도 있어 여름철에는 꽤 많은 사람이 찾는다.

몇 년 전 낭도에 왔다가 반주로 곁들인 막걸리에 취해 섬에서 나오지 못하고 하룻밤을 잤던 적이 있다. 이 섬엔 다른 작은 섬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주조장’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한옥으로 지어진 주조장에 들어서면 달짝지근한 술 익는 냄새에 코가 벌렁벌렁한다. 옹기로 만든 큰 술독이 몇 개 마당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내가 취했던 것은 막걸리 탓이 아니라 인심 때문이었다. 술도가를 운영하는 강창훈 사장은 대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술을 빚기 시작했다. 번성할 때는 직원을 8명까지 두었지만 지금은 아내와 둘이서 도가를 운영하며 식당과 문화해설사 일을 겸하고 있다. 오늘도 강 씨는 술병 대신 마이크를 잡고 섬을 찾아온 여행객들을 안내하느라 분주하다.

한 그루의 늙은 느릅나무와 세 마리의 개가 할머니의 벗이다.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한 그루의 늙은 느릅나무와 세 마리의 개가 할머니의 벗이다.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공룡 발자국은 세계 최고라는데
밭에서 멀칭 작업(농작물을 재배할 때 경지토양의 표면을 덮어주는 일)을 하던 아들이 골목에 지게를 내려놓고 나를 불렀다. 바다가 보이는 마당에 몇 분 전까지 갯바위 틈에 웅크리고 있던 해삼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소주 한 잔을 받아들고 손으로 해삼을 집어 입에 넣었다. 짭짤한 맛, 그 뒤끝은 달콤함과 오도독 씹는 맛이 교차했다. 더덕이 스스로 바다로 들어가 해삼이 되었다나. 그래서인지 효능이 인삼 못지않아 일찍부터 전복, 홍합과 함께 삼화(三貨)라 부른다.

추도는 객선이 다니지 않는다. 사도까지 배를 타고 와서 주민의 배를 이용해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배를 부리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고 하는 것이다. 덕분에 여행객의 손을 타지 않은 깨끗한 돌담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섬의 크기는 사도, 낭도에 비해 작다. 하지만 공룡 발자국 화석은 1759점에 이른다. 인근 사도(755점), 낭도(962점), 목도(50점), 적금도(20점)보다 훨씬 많다. 발자국의 규모만으로 세계에서 으뜸이다. 또 ‘물결흔적’을 포함한 수 만 년 전 지질시대의 흔적도 돌담과 골목에서 쉽게 발견된다. 섬이 그대로 지질박물관이다.

할머니가 자식들 주려고 바닷길에서 막 건져온 해삼.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할머니가 자식들 주려고 바닷길에서 막 건져온 해삼. 2015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한때 이곳에는 12가구가 살았다. 아니, 두 해 전까지만 해도 앞집에 할머니와 아들, 옆집에 어장을 하는 노인 등 서너 가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 혼자 섬을 지킨다. 할머니네 집 돌담 사이로 용케 뿌리를 내린 느릅나무가 인상적이다. 그 옆으로 세 마리의 개가 경비를 서고 있다. 이 중 한 마리가 사도에 나타난 적이 있다. 개들이 곧잘 헤엄을 치는 것을 봤지만 그래도 바다를 건너 이웃 섬으로 갔을 리는 없다. 바닷물이 빠져 사도와 추도 사이 갯길이 열리자 사람들을 따라서 건넜을 것이다. 그리고 물이 들자 돌아올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사도 이장이 하룻밤을 재워서 다음날 배로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뭍에서 택시를 부르듯 낚싯배를 불러야 오갈 수 있는 곳이 추도다. 그래도 두 아들이 섬을 기웃기웃 거리니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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