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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봄 마중 여행 ③] 톡톡, 봄을 알리는 붉은 꽃망울, 전남 순천 홍매화
[봄 마중 여행 ③] 톡톡, 봄을 알리는 붉은 꽃망울, 전남 순천 홍매화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0.02.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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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2월에 피어 '납월매'라 불리는 금둔사 홍매
홍매와 겹벚꽃으로 화사한 봄 여는 선암사
매화 벽화와 조형물로 꾸며진 매곡동 탐매마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금둔사의 납매. 음력 12월에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실제 1월에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순천] 광양, 구례, 곡성, 화순, 보성, 여수와 맞닿은 순천은 전남 동부의 중심 도시로 순천만국가정원, 순천만 습지, 낙안읍성, 선암사, 송광사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가득한 도시다. 하여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질 않지만 그중에서도 바로 지금, 톡톡 터지는 봄꽃 소식과 함께 여행의 절정이 시작된다.

순천은 북부 일부를 제하곤 대부분의 지역이 남해안형 기후에 속한다. 지리적 위치상 호남 영향권에 들지만 남해와 맞물려 바다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탓이다. 몰아치는 북풍 한파도 순천에선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셈이다. 봄과 가을 날씨 또한 맑고 온난해 농작물 생육에 알맞은 곳인데, 그 때문인지 봄꽃 매화가 유독 빨리 피는 도시이기도 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뭍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납매는 그윽한 향기로 발길을 멈춘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꽃소식, 금둔사 납월매로부터
아직 북쪽 땅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금전산(667.9m) 서쪽의 금둔사 매화는 붉은 봉오리를 열고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린다. 사찰 곳곳에 뿌리를 내린 청매와 설매 등 한국토종매화 100여 그루는 말할 것도 없고, 1월 말부터 꽃을 피운 홍매도 여섯 그루나 있다.

진분홍 꽃망울은 찬바람의 숨결을 고스란히 품은 채 산조차 잠든 깊은 겨울, 여린 잎을 견고하고 어여쁘게 키워내고 있었다. 납월(음력 12월)에 피고 진다 하여 ‘납월매’로 불리는 금둔사의 홍매는 뭍에서 제일 빨리 피는 매화다. 피고 지는 순서에 따라 하나씩 순서표를 달았는데 대웅전 뒤쪽에 첫 번째 나무가 있다.

‘금전산에 금둔사가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낙안조’의 기록과 삼층석탑(보물 제945호) 등을 근거로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금둔사는 순천대학교 박물관이 건물 지층과 초석, 기단, 연화문 수막새 등의 유물을 발굴하면서 9세기경 지어진 사찰로 확인됐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9세기경 지어진 금둔사는 이른 봄이면 많은 상춘객이 모이는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1979년 여름엔 도굴되어 흩어졌던 삼층석탑을 복원하고 1984년부턴 지허선사를 중심으로 대웅전과 일주문 선원, 약사전, 요사채, 홍교 등을 복원 중창해 지금에 이른다. 평상시엔 덧없이 조용하고 한적한 절집도 이른 봄이면 꽃향기에 취해 몰려든 인파로 분주하다.

일주문을 지나 부드러운 곡선의 무지개 돌다리를 건넌다. 대웅전 옆 하얀 매화나무 꽃그늘 아래 여행객들이 셔터를 누르며 봄을 담는다. 돌담장 기와 너머로 매화 가지가 늘어졌다.

삼층석탑과 석불입상(보물 제946호)이 자리하지만 적어도 이 계절, 금둔사의 보물은 겨울 추위 속에서도 고고한 꽃잎을 틔운 매화나무다.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주변의 홍매는 금둔사의 여러 매화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윽한 향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두 점의 보물을 둘러보고, 매화차 한 잔에 황홀감이 밀려온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찰의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주변의 홍매는 유독 눈길을 끈다. 사진은 금둔사 대웅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금둔사
주소
전남 순천시 낙안면 조정래길 1000

금둔사에 왔다면 금전산과 선암사까지
금둔사 곁에는 금전산가 자리한다. 옥녀가 머리를 풀어 헤친 ‘옥녀산발형’으로 그 모양이 금(金)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글자 그대로 ‘금과 돈의 산’으로 통한다. 산 정상부엔 ‘부처의 지혜가 단단한 금강 같아서 모든 번뇌 망상을 깨뜨리고, 부처의 지혜를 이룬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금강암이 있다.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창건했고, 후에 의상대사와 보조국사에 의해 중건된 암자로 위쪽의 의상대와 함께 금전산의 백미로 꼽힌다. 

낙안의 대표 음식 중 하나인 팔진미 비빔밥은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들른 이순신 장군을 위해 주민들이 대접한 음식인데, 그 재료 중 하나가 금전산 석이버섯이다. 금전산 산행은 약 5km에 3시간 30분쯤 걸린다. 금둔사와 낙안읍성은 자동차로 5분 거리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에 등재된 선암사의 매화는 금둔사 납매, 조계산 너머 이웃한 송광사 송매와 함께 ‘순천 3매’로 통한다. 금둔사에서 15km쯤 떨어진 이 사찰에선 훨씬 다양한 봄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선암사의 겹벚꽃은 매화가 지고난 뒤 4월에 꽃잎을 연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화사하게 피어나는 겹벚꽃.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승선교, 대웅전 등 여러 보물을 지닌 선암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매를 중심으로 산중 절집이 온통 꽃 천지다. 종정원 앞의 홍매화와 돌담 백매화 터널을 지나 운수암으로 오르는 길엔 약 50주의 선암매가 있다. 그중 원통전 뒤의 백매와 각황전 담장 옆 홍매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정확한 수령은 알 수 없지만 약 600년 전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었다고 전해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 생육상태가 가장 좋은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선암사 매화는 금둔사 납매에 비해 피고 지는 시기가 한 박자 늦다. 매화가 모두 떠난 4월이면 고즈넉한 사찰은 팝콘처럼 팡팡 터지는 겹벚꽃으로 훨씬 더 화사해진다. 그 밖에도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승선교, 중심 법당인 대웅전(보물 제1311호), 나란히 선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과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부속 암자, 선암사표 청정 야생차, 조계산 산행과 보리밥집까지 들러볼 곳이 한둘이 아니다. 계절을 붙잡고 한동안 가슴에 품고 싶을 만큼 선암사 주변엔 볼 것이 참 많다.

INFO 선암사
관람료
일반 2000원, 군인ㆍ학생 1500원, 어린이 1000원, 65세 이상 무료
주소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순천의 원도심 매곡동 탐매마을은 금둔사와 함께 한겨울부터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탐매마을엔 홍매 향기 가득
순천의 원도심 매곡동 탐매마을은 금둔사와 더불어 홍매화 개화 시기를 다투는 곳이다. 매곡동은 조선 중기 학자인 배숙(1516~1589)이 이곳에 홍매를 심고 초당을 지어 그 이름을 ‘매곡당’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매월 5일, 10일 장이 서는 웃장 맞은편에 탐매마을로 가는 골목이 있다.

봄은 왁자지껄한 시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각종 꽃나무며 알록달록한 옷가지, 그 너머 식당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국밥의 뜨거운 김마저도 봄을 재촉하는 아지랑이처럼 보일 정도니까.

탐매희망센터 1층의 마을 카페 홍매뜨락에서 커피 한 잔으로 들뜬 마음을 달래고 센터 뒤쪽 탐매정원으로 오른다. 하얀색 계단에 진분홍 매화 그림이 한 송이 한 송이 정성껏 그려져 있다. 계단 끝엔 키 큰 목련 나무가 섰고, 넓고 반듯한 쉼터엔 매화 조형물과 벤치, 매화와 매실을 소재로 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탐매정원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담장과 문패도 매화로 장식된 탐매마을의 3월 초순 풍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탐매정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예쁜 그림 꽃이 피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집마다 걸린 문패에도, 우편함과 헌옷수거함에도 매화가 만발하다. 계절에 상관없이 열두 달 내내 같은 자리에서 피는 꽃, 시들지 않는 그림 꽃이다. 아직 찬바람이 무겁게 내려앉은 늦겨울과 초봄 사이, 도심의 홍매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든 사람들로 탐매 골목은 어느 때보다 화사하고 활기차다.

매화 꽃잎이 모자이크로 장식된 높다란 담장 위로 매실나무가 줄지어 섰다. 초록의 잎은 찾아볼 수 없이 그저 깡마른 갈색 나무지만 가지마다 촘촘히 봉오리가 맺혔다. 겨울바람 사이로 훈풍과 햇살이 쏟아지면 닫혔던 꽃은 수줍은 잎을 열고 기지개를 켠다. 겹겹이 겹쳐진 꽃잎 안에 노란색 꽃술이 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술은 붉은 꽃잎 안에서 춤을 춘다. 하늘하늘, 봄을 재촉하는 춤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벽에 수놓아진 탐매마을의 홍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마을 한편에 놓인 매화처럼 붉은 운동화.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카페를 겸하고 있어 쉬어가기 좋은 탐매희망센터.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볕이 무르익으면 제 임무를 다한 꽃잎은 거리로 떨어져 나부낀다. 발에 밟히는 꽃에게 미안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화향이 흩어진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늦으면 늦은 대로 꽃은 봄을 찾아 먼 길을 달려온 이들에게 풋풋한 향기로 보답한다.

탐매마을 여행은 순천대학교 후문까지 이어진 홍매화 거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근대사와 기독교 선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독교역사박물관, 1004명의 학생들이 세라믹 접시에 마을의 희망을 담아낸 작품 ‘천사 희망을 담다’ 등이 있고, 앞서 소개한 웃장 국밥 골목, 또 ‘옥리단길’로도 불리는 옥천동 일대와 문화의 거리까지 맛깔스러운 골목 탐방이 가능하다. 봄은 순천에서 시작한다. 순천 여행의 절정은 이제부터다.

INFO 탐매희망센터
센터 1층에 마을카페 홍매뜨락이 있다. 아메리카노 2000원, 매실차 3000원, 매실머핀 1000원. 탐매마을에선 매년 3월을 전후해 매화축제가 열린다.
주소 전남 순천시 매곡2길 48-1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매월 5일, 10일 장이 서는 웃장은 탐매마을 맞은편에 자리한다. 사진은 웃장의 국밥.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웃장 국밥골목
탐매마을 맞은편에 자리한 골목. 국물 맛이 담백하고 살코기가 푸짐하다. 2인 이상일 경우 순대와 수육이 서비스로 나온다. 국밥 1인분 7000원. 매달 5일과 10일에 5일장이 열린다.
주소 전남 순천시 북부시장3길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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