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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임요희의 소설 속 여행지] 김훈의 '흑산', 일상의 유배지, 흑산도
[임요희의 소설 속 여행지] 김훈의 '흑산', 일상의 유배지, 흑산도
  • 임요희 여행작가
  • 승인 2020.02.13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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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 학자 정약전의 생애를 다룬 소설, 김훈의 '흑산'
‘일상’의 유배지로 거듭난 흑산도의 낭만적 풍경
흑산도의 보물, 흑산성당과 일주도로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신안 흑산도에서 바라본 일몰.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신안] 목포에서 신안 흑산도를 향해 2시간 남짓 가는 동안 높은 파도가 뱃전을 흔든다. 200년 전 초겨울 어느 날, 정약전(1758~1816)이 흑산으로 유배를 떠나던 날도 사정이 비슷했다. 김훈 소설 <흑산>은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으로 흑산도 유배 길에 오르던 정약전의 뱃길 이야기로 시작한다. 

‘흑산은 나주목 관할이지만 물길로 구백리가 넘었다. 새벽에 출항한 돛배는 비금도, 도초 사이의 좁은 수로를 지나서 돛배는 일출 무렵 난바다로 나아갔다. (중략) 배는 물결위에서 치솟고 가라앉았다. 어물 장수들이 내지른 토사물과 똥오줌에 정약전은 뒹굴었다. 배가 치솟고 가라앉을 때마다 의금부 형틀에서 매를 맞을 때 하얗게 뒤집히던 고통이 살아났다.’

소설 <흑산>은 남인 학자로 천주교에 입교했다가 흑산에서 삶을 마친 정약전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그가 처음 만난 흑산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상상한다.  

‘거기, 그렇게 있을 수 없는 물과 하늘 사이에 흑산은 있었다. 사철나무 숲이 섬을 뒤덮어서 흑산은 검은 산이었다. 멀리서부터 검푸른 숲이 뿜어내는 윤기가 햇빛에 번쩍거렸다. 바람에 숲의 냄새가 끼쳐왔다. 배가 진리 포구 쪽으로 다가갔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여객터미널이 있는 예리항은 1970~80년대 파시가 성행하던 곳이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섬의 관문인 흑산여객터미널.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시사철 푸른 나무로 뒤덮인 섬, 흑산
흑산도는 가을에도 단풍이 없고 낙엽이 없다. 사시사철 푸른 나무가 점령하다보니 여름 풍경이나 겨울 풍경이나 비슷하다. 흑산을 뒤덮고 있는 수종은 소나무, 동백나무, 잣밤나무, 후박나무 이 네 가지가 압도적이다.  

흑산의 관문은 예리 흑산여객터미널이다. 섬이 가까워 오면서 여객터미널 앞으로 크고 작은 횟집과 민박, 식당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흑산도는 홍도 가는 길목에 위치한 어촌 섬에 불과했지만, 최근 섬 여행 열풍을 타고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배가 포구에 닿자 부둣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바둑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좋아한다. 배에서 내린 할머니 한 분이 바둑이를 어르며 섬 안으로 들어섰다.

정약전 시대만 해도 배를 들고나는 곳은 진리였다. 지금 진리는 항구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진리당’으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진리당은 진리에서 읍동 가는 길 ‘신들의 정원’에 자리한다. 진리당에서 용왕당 전망대에 이르는 150m 남짓한 숲길은 잣밤나무와 소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워 흑산에서 최고의 산책로로 손꼽힌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목포여객터미널에서 흑산도를 오가는 쾌속선.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TIP 흑산도 가는 배편
목포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동양고속, 남해고속)을 이용해 흑산도에 갈 수 있다. 차를 가져갈 경우 압해도 송공항 선착장에서 오전 6시 50분에 떠나는 아침 배(뉴드림호)를 타면 된다. 쾌속선은 2시간, 뉴드림호는 4시간가량 소요된다.     
입도시간 오전 7시 50분, 8시 10분, 오후 1시, 4시(하절기에는 3시 30분 출항)
이용요금 대인 3만4300원, 학생 3만1100원, 경로 2만7800원, 소아 1만7100원
주소 전남 목포시 해안로 182 목포항연안여객터미널

두 가지 전설이 어린 신령스러운 진리당
진리당은 흑산도 15개 당집 가운데 본당의 지위를 갖고 있다. 진리당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신랑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세상을 뜨는 바람에 남편을 기다리던 각시가 먼 바다가 보이는 노송에 목을 맸다는 이야기와 점쟁이의 예언에 의해 섬에 남겨진 총각화장(취사 및 심부름을 하는 선원)이 처녀(당각시의 원혼신)와 사랑에 빠져 배고픔에 지쳐 죽은 사연이다. 마을 사람들은 당각시 옆에 화상을 모셔 놓고 진리당에서 매년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먼 바다를 드나드는 어부들이 당집을 향해 절을 올릴 정도로 진리당은 마을 사람들에게 신령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진다. 2010년부터 진리당의 당제가 복원되어 음력 정월대보름날 자시면 마을 주민들이 제사를 모신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신들의 정원에 자리한 진리당.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흑산도는 가수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진리 배낭기미 해변은 해수욕장이 귀한 흑산도에서 여름철 피서객의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다. 자갈이 반쯤 섞인 백사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다. 개펄에서 조개 캐는 재미는 덤이다. 배낭기미라는 이름은 ‘배가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으로 진리가 과거 이곳 대표적인 항구였음을 말해준다. ‘진리에는 장삿배가 가끔씩 들어와서 육지의 쌀이 풀렸고 돈이 돌았다’는 소설 속 문장이 쉬이 납득된다.

진리로 입성한 정약전은 1807년 남쪽 사리(沙里, 모래미)로 이사해 거처를 복성재라 이름 붙였다. 복성재한 천주교를 버리고 성리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정약정은 사리에서 ‘사촌서당’을 열어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편, <자산어보> 집필을 이어갔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등록문화재 제282호로 지정된 사리마을 옛 돌담.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일상’의 유배지로 거듭난 낭만적 풍경
정약전이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던 사촌서당은 일대는 사리유배문화공원으로 다듬어 꾸며졌으며, 관내 천주교 사리성당은 1958년 흑산본당이 설립되면서 지금은 공소가 되었다. 조선시대 흑산도는 중죄인의 주요 유배지로 한 번 발을 디디면 뼈를 묻는 것으로 인식됐다. 유배문화공원 곳곳에는 유배생활을 하던 당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안내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282호로 지정된 사리마을 옛 돌담길은 소설 속에서 정약전 시대에도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마을은 산과 언덕을 기대고 동쪽 물가를 따라 들어섰고 백성들은 돌담을 높이 쌓아서 집을 감추었다. 담 구멍 틈새마다 수평선이 지나갔다. 포구 쪽에서 바라보면 돌담 위로 초가지붕들이 잇달아서 마을은 물고기 비늘 같았다.’

돌담을 따라 뿌리를 내린 덩굴식물은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돌담과 돌담 사이 골목길은 바다로 느리게 흘러든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섬에서 자전거 대여는 어렵기 때문에 개인 자전거를 갖고 와야 한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마리에서 비리(잔듸미) 가다 보면 바다 위로 고개를 내민 구문여와 지도바위를 만날 수 있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진리에서 읍동 가는 길, 주황색 다리로 연결되는 바위섬이 나온다. 죄인을 가두던 섬이라 해서 옥섬이다. 소설에 의하면 옥섬에 동굴이 있어서 죄수들이 비바람을 피했다고 하는데 섬을 다 돌아봐도 동굴과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바위섬이었던 옥섬은 지금 푸른 소나무에 에워싸인 작은 정자를 하나 이고 있다. 정자에 오르면 햇빛에 부서지는 흑산포구가 지상인 듯 천상인 듯 아름답게 다가온다. ‘죄인’의 유배지였던 흑산이 ‘일상’의 유배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러한 낭만적인 풍경 덕분이다.   

옥섬에서 저만치 건너다보이는 곳에 새조각공원이 있다. 흑산권역은 철새들의 정류장이다. 해마다 400여종 30만여 마리가 긴 바다여행길 다리를 쉬어가기 위해 들른다. 그중 200마리가 조각품이 되어 안착했다. 새조각공원은 멀리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동백나무 꽃밭을 거닐면서 200여 점의 석조 새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꽤 쏠쏠하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여덟굽이 도로 끄트머리에 서 있는 천사상.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흑산도의 보물, 흑산성당과 일주도로
흑산성당은 흑산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1957년 성 골롬반외방선교회의 지원으로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예리항 언덕에 머릿돌을 놓았다. 섬에서 나는 몽돌을 건축 재료로 사용한 덕에 정겨움이 남다르다.

성당 오르는 길은 그 자체로 전시관이다. ‘십자가의 길’이라 이름 붙은 이곳에는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형을 받은 후 십자가에 오르기까지 14처를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검은 조각품 끝에는 하얀 예수상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크기는 작지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도 산 정상에 위치한 예수상 그대로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섬에서 나는 몽돌을 건축 재료로 사용한 흑산성당.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검은 조각품 끝에는 하얀 예수상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섬 전체를 아우르는 일주도로는 흑산을 구석구석 둘러보기 좋다. 24km 흑산도 일주도로가 완공된 것은 2010년. 도보로는 7시간 거리지만 자전거, 일주버스로도 이용할 수 있다. 단 자전거는 대여가 불가능해 직접 배에 싣고 타야한다.

일주도로의 출발지는 예리항이다. 항구를 에두르며 읍동 십이굽이 길로 접어든다. 동백나무림을 통과하는 굽이굽이 열두굽이 길은 어느덧 흑산의 상징이 됐다. 

열두굽이 급커브 길을 다 돌고 나면 상라대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노을을 배경삼아 사진을 담으면 좋다. 근처에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어 벨을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오른쪽 가파르게 난 계단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상라산 봉수대다. 이곳에 서면 십이구비 길과 흑산도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흑산 최고의 전망대라 할 만하다.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상라산 봉수대에서 내려다본 일주도로와 흑산도 포구. 사진 / 임요희 여행작가

상라산 전망대를 거쳐 비리(잔듸미)를 지나면 하늘도로가 이어진다. 이 일대가 절벽이라 길을 내기 어려운 것을 강철빔을 이용해 공중에 도로를 띄웠다. 하늘도로 지나 사리 가는 길에는 여덟구비 도로와 만난다. 십이구비 도로의 유명세에 눌려 잘 알려지지는 않은 곳이지만 한다령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바다 경치가 일품이다. 

TIP 흑산도 관광택시
일행이 3~4명이면 관광택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현지 지리에 해박한 기사에게 가이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시간 30분 남짓 소요되며 인원수에 관계없이 6만원의 비용이 든다. 현재 흑산도에는 8대의 택시가 운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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