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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1박2일 주말여행] 철원에서 만난 풍류명소 황진이가 철원에 살았다면 예서 아니 놀았을까
[1박2일 주말여행] 철원에서 만난 풍류명소 황진이가 철원에 살았다면 예서 아니 놀았을까
  • 이수인 기자
  • 승인 2006.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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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한국의 나이아가라폭포로 일컬어지는 직탕폭포.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여행스케치=철원] 한 시대를 풍미한 기녀로만 알려진 명월 황진이가 최근 TV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1936년 소설가 이태준은 실존인물인 황진이를 최초로 소설화했다. 소설<황진이>에는 송도(개성) 기녀인 황진이가 철원에 갔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이태준이 <황진이>를 구상할 땐 작가의 고향인 철원의 풍류명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황진이가 만약 철원에 살았다면어땠을까?

철새들이 무리지어 노니는 철원 들판 끝자락까지 달리면 칼로 쪼개 놓은 듯한 낭떠러지를 만나게 된다. 깊은 협곡 아래엔 금강산 아래서 발원한 한탄강이 암벽을 휘돌아 유유히 흘러간다. 평원을 질러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강물이 한 굽이 휘돌아 나갈 때마다 입이 떡 벌어질만한 천혜절경이 펼쳐진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직탕폭포 하류. 가운데 보이는 빨간 다리가 태봉교이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직탕폭포
밑으로 긴 여느 폭포와는 달리 직탕폭포는 옆으로 길다. 높이는 3m에 불과하지만 너비는 80m에 이른다. 한탄강 물줄기가 계단처럼 생긴 수직 암반 아래로 떨어지는데, 심산유곡 ‘와르르’ 쏟아지는 폭포수의 장쾌함은 없다. 천둥같은 소리로 계곡을 뒤흔드는 폭포를 연인들의 열정적인 사랑에 비유한다면, 옆으로만 긴 직탕폭포는 마음으로 앓는 짝사랑을 닮았다. 

자신을 사모하다 병을 얻어 죽은 청년을 위해 황진이는 속곳을 벗어 관위에 덮어준다. 서녀로 태어나 반쪽짜리 양반이라며 수차례 결혼을 거부당했던 차에 이제 반쪽 처녀라 놀림 받을 것을 알면서도, 칠거지악에 묶여 사느니 차라리 반짝이는 별이 되어 감정에 자유로운 여인으로 살리라 마음먹는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임꺽정의 활동 근거지였던 고석정.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고석정과 순담계곡, 삼부연폭포 
직탕폭포에서 2km 가량 내려가면 임꺽정의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고석정과 기암괴석이 절경인 순담계곡이 이어진다. 고석정 일대에는 선인(仙人)들이 깎고 다듬은 듯한 기암절벽이 웅장하게 둘러서 있다. 절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 위로 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강 가운데는 머리에 낙락장송 몇 그루를 인 기암봉이 솟아 멋을 더한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2,3분 간격으로 물살이 변화해 래프팅 명소로 유명한 한탄강 순담계곡.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절벽 위 정자에 섰는데 유원지 어디에선가 쿵작거리는 노랫소리가 계곡 안까지 시끄럽게 울린다.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풍류를 즐기려는 마음이야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지만 거문고 술대를 뜯으며 노래하고 시를 짓던 옛사람들의 은근한 풍류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고석정이 아기자기한 풍광을 자랑한다면 순담계곡은 기기묘묘한 자연이 연출하는 리듬이 느껴진다. 골 깊은 협곡과 바위 사이를 우렁차게 흐르던 강물이 넓은 소(沼)를 만나면 잔잔히 흘러간다. 강물이 크게 휘돌아 나가는 물굽이에는 제법 큰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다. 
각종 기예에 능했던 황진이는 특히 창을 잘했다. 그저 소리만을 외어 흉내 내던 다른 기녀와는 달리 곡의 정조(情調)를 알고 혼을 담아 부르니 그 노랫소리를 듣고자 찾아오는 유객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선전관이면서 명창으로 유명한 이사종도 있었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3번 꺾여 떨어지는 삼부연폭포.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십여 명은 족히 앉아 놀았을 법한 너럭바위 위로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쬔다. 이곳에 서서 두 명창이 창을 주고받는다면, 굽이치는 강물과 숲속의 새들이 화음을 맞추고 물속의 송사리떼가 군무를 추었을 것 같다. 

한탄강의 또 다른 지류 끝자락에 위치한 삼부연폭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길가에 있어 힘들이지 않고도 선경을 볼 수 있다. 20m 절벽 위에서 3단으로 꺾여 떨어지는 폭포수도 멋있지만 그 소리가 우렁차 목청을 틔우려는 수많은 명창들의 연습장이었을 것 같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북계산 청석골 세트장.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복계산 매월대와 선암폭포
신철원 동쪽에 위치한 복계산은 복주산과 등을 맞대고 있다. 복계산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분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은거한 곳이다. 매월대 산장쪽에서 시작하는 산행 들머리 오른쪽으로 청석골 세트장이 있다. 예전에 드라마 <임꺽정>을 촬영했던 곳으로 이후 관리가 소홀해 쓸쓸히 쇠락해 가고 있다. 최근엔 영화 <황진이>(송혜교 주연)의 촬영을 위해 매월대 아래 세트장을 지었지만, 촬영이 끝난 후 거의 철거하고 지금은 너른 언덕에 두 채의 집이 남아 있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매월대와 마주하고 있어 일명 매월대폭포로 불리는 선암폭포.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선암폭포 오르는 길에 만난 성황당.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등산로를 따라 15분쯤 오르자 매월대를 마주한 선암폭포가 나온다. 일명 매월대폭포라 부르는 이 폭포 앞에서 산기슭에 곧게 솟은 층암절벽 매월대를 바라보자니, 황진이의 절세미모 앞에서도 초연했던 유학자 화담 서경덕이 생각난다. 명월은 그 인물됨을 시험하려 했지만 오히려 화담의 성품에 탄복하여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가르침을 받았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도피안사는 철원의 대표적인 사찰이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도피안사
사찰을 둘러싼 것이 소나무인지 고즈넉한 경내에 들어서자 은은한 송진 내음이 향긋하다. 예스러운 낙엽길 끝에 삼성각이 섰는데, 올라오라는 듯 문 하나가 활짝 열렸다. 바람이 스산하니 마음까지 심란하다. 오래있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데 젊은 처자가 삼층석탑을 돌며 무언가를 간구한다. 기도를 방해하지 않으려 일부러 대적광전 안으로 들어섰다.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입가의 미소가 오묘한 철조비로자나좌불상. 2006년 11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참선에 빠진 것인지, 꿈을 꾸는 것인지 철조비로자나상의 미소가 오묘하다. 익숙하게 보아온 불상과는 달리 얼굴선이 갸름한데다 체구마저 왜소해 불상이라기보다 오랜 수행으로 여윌 대로 여윈 수도승 같다. 

산중 암자에서 30년 면벽수도를 해온 지족선사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생불이라 불릴 만큼 도(道) 높음을 자랑하던 지족선사였지만 황진이의 눈에는 산 이도 죽은 이도 아니었다. 선사에게 크게 실망한 명월은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수도승보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느낄 줄 아는 기녀인 자신이 훨씬 낫다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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