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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명인별곡] 800년 역사의 하회별신굿탈놀이 한마당 진정한 놀이꾼 임형규 명인
[명인별곡] 800년 역사의 하회별신굿탈놀이 한마당 진정한 놀이꾼 임형규 명인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5.05.01 0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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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안동] 어렵사리 생령만 유지하다 사라질 뻔한 하회별신굿탈놀이. 오늘날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재담을 선보이고, 웃음을 참지 못한 관객들이 자지러지는 광경이 연출되는 건 어느 놀이꾼의 노력 덕택이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탈을 쓰고 좌중과 호흡하는 임형규 명인을 만나보자.

싱그러운 초록 빛깔로 대지가 물드는 계절에 우리나라 중요민속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하회마을을 찾았다. 800년을 이어온 신명, 하회별신굿탈놀이 한마당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다. 안동하회마을에서 12세기 중엽부터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고자 상민들에 의해 연희돼온 탈놀이다. 그 시절 상민들은 탈놀이를 통해 세상살이를 풍자하며 억눌린 감정을 거리낌 없이 발산했다.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당시의 사회상을 감안하면 지배계층을 비판하는 목소리로 일관된 탈놀이가 양반들의 묵인 하에 연희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우선 안동하회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으레 들르는 삼신당 느티나무로 발걸음을 옮긴다. 수령 600년의 이 나무는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소원을 빌면 이뤄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간 무수히 많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느라 지친 모양인지 기자의 소원은 단 한 번도 이뤄준 적이 없지만 말이다. 단순히 소원이나 빌자고 이곳에 온 게 아니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고는 흥겨운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열릴 탈춤 공연장으로 향한다. 공연장에 도착해 주위를 살피니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관객이 어느새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평일임에도, 그것도 공연 시작 전부터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성황을 이루는 건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흥겨운 풍악이 울려 퍼지고 ‘양반선비마당’이 막을 올린다. 소 한마리가 등장하더니 관객들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개도 아닌 것이 다리를 들어 오줌을 휘갈기자 관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웃음보를 터뜨린다. 이내 거들먹거리는 양반과 선비가 기녀인 부네를 서로 차지하려고 옥신각신한다. 그러다 “이보게 선비 나는 사대부의 자손일세. 에헴~” “아니 뭐 그까짓 사대부 가지고. 나는 팔대부의 자손일세”라며 서로 자기의 지체가 높다는 것을 과시하며 다툰다.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그러던 중 “샌님들, 소불알 먹으면 양기에 억시기 좋시데이”라며 능청스럽게 백정이 등장한다. 정력에 좋다는 말에 혹한 양반과 선비는 소불알을 서로 독차지하려 으르렁거리기에 이른다. 이 같은 광경을 멀찌가니 떨어져 지켜보던 할미의 비아냥거림은 공연의 백미다. “양반도 지 부랄이라 카고, 선비도 지 부랄이라 카이께네 대관절 이 부랄은 뉘 부랄이고? 내 팔십 평생 살았다만 소부랄 하나 가지고 싸우는 꼬라지는 처음 봤다. 에이, 몹쓸 것들아.”

공연에서 양반 역할을 맡아 구수한 재담과 해학을 선보이는 자가 눈에 띈다. 그는 바로 임형규 명인.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회장이자 현재 우리나라에 셋뿐인 예능보유자 가운데 한 명이다. 지금이야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지만 예전만해도 멸시의 눈초리와 온갖 푸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유난히 봉건적이고 보수적인 안동에서 탈놀이를 한다고 하면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부모까지 손가락질을 받았지요.” 하지만 임 명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원형을 복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뜻을 함께하는 분들과 마지막 탈춤꾼 고 이창희 선생을 수소문했지요.” 임 명인은 백정탈 이상호 명인과 할매탈 김춘택 명인 등 하회가면극연구회의 주역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1928년 마지막 굿판 이후 가까스로 숨만 붙이고 있었던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명맥을 잇고야 만다. 나라에서도 임 명인 등의 갖은 고초와 부단한 노력이 만들어 낸 결실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을 터. “1980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지요. 무척 기쁜 나머지 서로 얼싸 안고 울기까지 했지요.” 칠흑 같은 어둠의 터널을 뚫고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다시 세상에 선보이기까지의 과정을 회상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임형규 명인의 민얼굴은 그야말로 영락없는 하회탈이다.

INFO. 하회별신굿탈놀이
장소 안동하회마을 탈춤공연장
일정 1~2월 매주 토·일 오후 2~3시, 3~12월 매주 수·금·토·일 오후 2~3시
주소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종가길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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