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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명인별곡] “커피를 내리는 건 행복을 내리는 과정” 대한민국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명인
[명인별곡] “커피를 내리는 건 행복을 내리는 과정” 대한민국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명인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5.07.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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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8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8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강릉] 머리칼이 희게 센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원두를 볶고 커피를 내리는 박이추 명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1세대 바리스타다. “커피 한 잔에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며, 때론 위로가 는 커피를 만드는 것이 바리스타가 추구해야 할 이상”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보자.

2015년 8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8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8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8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한국관광공사 주최로 여행자와 커피 명인 박이추 씨가 만나는 토크 콘서트를 진행해요. 인근 여행지도 함께 둘러볼 계획인데, 생각 있어요?” 여행 칼럼리스트 송세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솔깃하고 만다. 가뜩이나 명인 섭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와중에 이 무슨 천군만마란 말인가. 


가뭄으로 바짝 타들어간 농심을 달래주려 내린 단비와도 같다. 뇌중에는 간사하게도 ‘한국관광공사와 송 씨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란 생각이 파고든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커피 문화의 효시인 박이추 씨를 만난다니 마다할 까닭이 없다.

“저기서 루왁커피 파는데 가보지 않을래?”란 말에 저절로 발걸음이 움직이는 사람, 그러니까 커피를 좀 안다는 사람치고 ‘박이추’란 이름을 못 들어본 이는 없을 거다. 기자 역시 커피는 ‘둘둘둘’이 최고라고 외치던 시절을 떠나보낸 후, 현재는 반자동커피머신을 구입하고 좋은 원두를 사고자 발품 깨나 파는 지경이 된 처지라 그가 어떤 인물인지 익히 알고 있다.

박이추 명인은 우리나라 1세대 바리스타로서 일본식 핸드드립의 초고수로 이름 높다. 그는 우리나라 커피의 선구자를 일컫는 ‘1서(徐) 3박(朴)’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며, 이 네 명 중에서도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지금까지 로스팅과 핸드드립을 마다하지 않는 독일무이한 현역이다. 혹자는 대한민국 커피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찬탄하기도 한다. 이런 박이추 명인을 만나고자 서울에서 강릉을 향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빗속을 뚫고 액셀을 밟는다.마침내 도착한 ‘박이추커피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전국에 내로라하는 ‘커피 덕후’들이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앞서 로스팅 실장 황광우 씨와 함께 로스팅 공장을 구경하고 온 이들은 박이추 명인이 등장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명인을 이렇게 가까운 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는 바로 조금 전까지 상상만 했을 테니 말이다.

이내 말문을 연 박 명인의 말투가 조금 어눌하다. 알고 보니 그는 재일 교포 2세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건너온 이유는 낙농인이 되기 위해서였고, 그 꿈을 실현해 한국에서 농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다 돌연 고향 같은 도시가 그립다며 도쿄로 돌아가지만, 우연히 들르게 된 작은 커피숍에서 그의 운명은 커피와 엉키고 만다. 노년의 바리스타가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한 잔의 커피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것.

커피에 꽂히고 만 박 명인은 일본에서 정통 드롭커피 교육을 받고 1988년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 혜화동에 커피숍을 연다. ‘다방 커피’가 대세였던 당시 그가 선보인 일본식 드롭커피는 혁명 그 자체였다. 하지만 2000년 소위 ‘잘나가는’ 가게를 강릉으로 옮긴 그는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커피를 내리는 게 노동이 되고 장사가 되는느낌이 싫었어요. 최대한의 정성을 쏟은 만족스러운 커피를 만들어 최소한의 손님에게 내놓고 싶었지요.” 하지만 그의 커피에 길들여진 이들은 그가 북한을 가지 않는 이상 항상 쫓아다닌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다. 평일 주말할 것 없이 그가 내린 커피를 맛보고자 강릉을 찾는 사람들이 숱하니까.

박 명인은 베트남에 커피 농장을 세워 투자자에게 커피나무와 수확한 원두를 제공한다는 계획도, 남녀노소가 어울려 커피 수확 체험을 하는 커피 놀이동산을 만들 꿈도 키우고 있다. 이처럼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물주전자를 든 채 커피가루가 놓인 필터를 뚫어질 듯 응시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그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수식어가 허투루 생긴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가 손수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푸르른 바다와 맞닿아 있는 박이추커피공장 테이블에 앉는다. 이내 진한 커피향이 코끝을 간질이니 오래 머물다 가고픈 욕구가 요동친다


INFO. 박이추커피공장(보헤미안 박이추커피)
영업시간 평일 오전 8시~오후 10시 30분, 토요일 오전 8시~오후 11시
30분, 일요일 오전 6시 30분~오후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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