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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명인별곡] 줄풍류에 얽힌 어느 풍류객의 이야기 단소의 대가 이철호 명인
[명인별곡] 줄풍류에 얽힌 어느 풍류객의 이야기 단소의 대가 이철호 명인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5.09.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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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구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대밭을 누비며 단소를 깎는 이철호 명인. 그가 혼신의 열정을 축축하게 쏟아 부어 단소를 분다. 이내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내뿜은 곧고 고운 선율이 가슴팍을 휘젓는다. 줄풍류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듯 말이다.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 덕분일까. 선선하게 불어와 온몸을 훑고 가는 가을바람 덕택일까. 절로 탄력이 붙은 발걸음을 내딛다 보니 어느새 전남 구례 운조루에 닿는다. 운조루는 그 옛날 지리산 형제봉으로 내려온 천상의 옥녀가 실수로 떨군 금가락지를 품고 있는 곳이다. 이 전설 때문에 우리나라 3대 길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집을 지으면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전해지는 명당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천연 풍경화를 보는 듯한 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풍수에 관련된 지식이 전무한 편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풍광만 놓고 보더라도 명당임을 부정할 근거가 없는 듯하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이곳에 찾아온 까닭은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명사와 함께하는 지역 이야기’, 이른바 토크 콘서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매달 전국 각 지역의 명인?명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인근 여행지를 둘러보는 이 행사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koreastoryteller.com)에서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운조루에서 조우할 인물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3-1호 구례향제줄풍류 예능보유자(단소) 이철호 명인이다. 구례향제줄풍류보존회의 수장이기도 한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줄풍류의 실오라기 같은 명맥을 유지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거듭 중이다. 줄풍류란 현악기가 주를 이룬 조선시대 궁중 아악의 하나다. 서울의 줄풍류는 앞에 ‘경제’를 붙이고, 지방의 경우는 ‘향제’를 붙인다. 구례와 줄풍류란 단어 사이에 향제란 낱말이 자리한 이유다.


“그토록 고결한 단소 소리는 처음이었지요.” 1938년 구례에서 태어난 이 명인은 권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단소에 매료된 건 중학교 학예회 무대에 연극을 올리면서다. 공연이 막바지로 향할 즈음 연출을 맡고 있던 그의 귓속으로 시나리오 상에 없던 소리가 파고들었다. 청아하면서도 구슬픈 단소의 울림이었다. 어린 이 명인을 단숨에 도취되게 만든 단소 소리의 주인공은 교장 선생님이자 줄풍류의 대가로 이름 높은 김무규 선생이었다.

학예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이 명인의 귓전은 단소 소리로 메아리쳤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집에 이르자 사랑방에서 교장 선생님 못지않은 단소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는 게 아닌가. 당시 한약방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사랑방을 풍류객이 모이는 ‘풍류방’으로 삼고 소리꾼과 어울리길 즐겼다. 그리고 이날 이 명인이 들은 단소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교장 선생님의 스승이자 단소의 전설로 일컫는 전용선 선생이었다. 그 시절 이 명인의 아버지는 가난한 소리꾼들을 먹이며 재웠고, 심지어 돈까지 쥐어주며 뒷바라지하는 것을 기꺼운 일로 여겼다. 이 명인은 이러한 선친 덕에 전용선 선생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룰 수 있었다. 게다가 전 선생을 스승으로 사사하고 본격적으로 단소를 배울 수 있었다.

“촉망받는 권투선수이기도 했지요.” 이 명인은 단소를 들던 손에 글러브를 끼고 권투선수의 길을 걷기도 했다. 각종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챔피언인 김기수 선수도 한때 이 명인에게 무릎을 꿇을 정도였다. 하지만 1960년 로마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신 후 글러브를 벗어던지고 채석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나 했지만 그와 줄풍류와의 인연은 질겼다. 우연히 들른 서울 인사동의 한 다방에서 교장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

“평생 동안 해온 줄풍류의 생령이 끊길 지경이다. 자네가 이어보겠나.”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전율을 느꼈다는 이 명인은 사업을 정리하고 구례로 내려왔다. 줄풍류를 계승해야겠다는 신념 하나로 큰 망설임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INFO. 구례향제줄풍류보존회
정기연주회, 찾아가는 문화재 공연 등 매년 수차례의 공연을 연다. 
주소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성산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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