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과천]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인한 소식이 많이 전해진다. 3~4월이 제철인 주꾸미가 2월부터 잡히고 겨울잠을 못 자 스트레스를 받은 고슴도치의 가시가 빠진다고도 한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야외에서 뛰놀고 싶은 아이들에게만큼은 반가운 소식이지 않을까. 드넓은 잔디밭에 야생화가 활짝 핀 제비울 미술관을 소개한다.
과천-의왕간 고속국도를 달리면서 왼쪽을 힐끔 보았다. 고풍스런 한옥 양식 지붕과 문패가 보였는데 거기에는 ‘제비울 미술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옥 건축물에 웬 미술관? 외관과 이름이 독특해서 과천시 갈현동에 있다는 미술관을 찾아갔다. ‘제비울’은 이곳의 지명인데 ‘작은 골짜기’라는 뜻의 ‘좁이울’이 변해 제비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의미처럼 제비울 미술관은 마을에서도 가장 안쪽, 청계산 기슭에 자리하였다.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입구 안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한옥 건물이 나타난다. 현대적인 편리함과 전통의 고풍스러움이 조화를 이룬 미술관과 사무실이다. 제비울 미술관은 청계산 자락에 꾸며진 산책로까지 포함해서 7,000여 평의 공간에 미술관, 산책로, 3개의 전시실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그림책을 갖춘 도서관, 야외 자연학습시설, 관악산과 청계산 인근을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휴식공간까지 두루 갖추었다. 입장료는 무료다.
과천에서 14대째 살고 있는 신창건설 김영수 대표가 미술의 대중화와 어린이, 청소년에 대한 예술교육을 목표로 지난 2002년 건립하였다. 이곳은 소장품을 바탕으로 설립되기보다는 우리 현대미술을 담은 기획전을 전시하는 형태로 운영되어 상설전시가 없어 아쉽긴 하지만, 한번 가서 둘러보고 마는 미술관이 아니라 꾸준히 새로운 전시회가 열리고 교체되기 때문에 갈 때마다 새롭다. 특히 방학이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4월 중에는 작가 이선민의 <울타리, 혹은 프레임의 안과 밖에서 사진으로 살림하기>라는 주제로 사진전이 열린다. 사진전 중 ‘애 키우는 집안은 다들 별반 다를 게 없구나’라는 작가의 생각으로 기획된 <여자의 집 I>은 출산 후에 작가가 처한 현실과 가족제도가 담겨 있다. <여자의 집Ⅱ>는 한 집안의 주요 행사 중 하나인 제사, 명절, 집안행사를 프레임에 담았다. 대개 여자들이 보면 많이 공감할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사진들이다.
2~3층의 전시물을 천천히 둘러본 뒤에는 야외 테라스에서 간단히 음료를 마시고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 보자. 길을 따라 놓인 작가들의 조각품을 구경하다 보면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나온다. 도시락을 싸와서 아이와 먹으면 좋을 공간이다. 미술관은 꽤 한산한 편이다. 아이는 마음껏 뛰놀게 두고 엄마는 모처럼 책 한 권 읽어도 좋겠다.
잔디밭에는 나무 계단으로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제비울 미술관이 자랑하는 공간이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처음엔 한 길로 이어지지만, 돌탑이 있는 곳에서 두 갈래로 나눠지고,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하지만 어느 길로 가도 미술관 뒤로 통하므로 걱정할 것 없다.
산책을 하다 보면 작은 푯말들이 눈에 띈다. 패랭이, 금낭화, 크로커스, 믹스백합, 은방울꽃, 노랑매미, 시베리아 등 낯설면서 이름이 예쁜 야생화가 천지다. 이름 모를 새들도 날아와 지저귄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아이와 함께 꽃 이름을 하나씩 불러 봐도 재미있겠다. 산책로 중간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와 나무 벤치가 있어 경치와 전망을 구경하며 쉬어갈 수도 있다.
미술관이 산자락에 있어 조금만 올라도 근처 마을, 산들이 다 내려다 보인다. 올해는 개화시기가 빨라 4월 초에도 미술관 돌담을 둘러싼 철쭉, 진달래, 개나리를 만날 수 있겠다. 전경이 참 예쁘다 싶었는데 봄이면 “꽃이 피었어요?”하며 묻는 사진작가들의 문의가 잦단다.
미술관을 나와 과천 청사 방면으로 가다보면 아동미술작업실 ‘바림’(Balim Art Studio)이 보인다.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했던 부인 장희정 씨와 도예가 남편 최재훈 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입시미술을 가르치며 교육의 한계를 깨달은 부인이 학습을 위한 미술이 아닌 진정 아이들이 좋아하고 표출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아동미술과 심리미술 치료과정을 이수한 뒤 새롭게 오픈하였다. 보통 3달간의 프로젝트로 진행되지만 당일에도 체험가능하다.
남편은 도예를, 부인은 아이들이 마음대로 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벽화나 흙을 던지면서 놀 수 있는 점토 흙놀이 등을 가르친다. 장희정 씨는 아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 스트레스를 표출하며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미술관 부근에는 염색체험장이 있고 음식점도 많다. 햇살 좋은 날, 아이 손잡고 꽃에 마음을 터놓고 미술로 감성을 표출할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