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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고목나무와 개미 부부 이야기] 고대 잉카인들의 땅 페루 베일에 싸인 잉카 유적지 초케키라우와 후예들을 만나다
[고목나무와 개미 부부 이야기] 고대 잉카인들의 땅 페루 베일에 싸인 잉카 유적지 초케키라우와 후예들을 만나다
  • 김문숙 기자
  • 승인 2007.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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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초케키라우 가는 길. 가늘게 보이는 길이 등반길이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여행스케치=초케키라우] 잉카 최대의 유적지임에도 도보 이외에는 접근이 불가능한 탓에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초케키라우. 험난한 길을 뚫고 4박 5일간 트레킹한 후 우리 부부의 몸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러나 잉카 후예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몸을 추스르고 다시 길을 나선다.

마추픽추보다 규모도 크고 오래된 잉카 유적지가 있다고 한다. 구라와시의 숙소에 짐을 두고 트레킹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당나귀에 짐을 싣고 말을 타거나 걸어서 4박 5일을 가야 한다. 차도 다니지 않고 전기도 없어 별과 달을 벗 삼아 가야 하는 여행길이다. 심지어 물도 없어 강물을 이용하고 화장실은 알아서 적당히 해결해야 한다. 

음식, 물, 텐트 등을 바리바리 챙겨 카초라에 도착하니 당나귀만은 임대가 되지 않고 가이드도 데려 가야한단다. 당나귀만 빌려 둘이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막상 당나귀에 짐 싣는 모양을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당나귀 눈을 가리고 짐을 올린 후 꽉 묶어서 고정을 시키는데, 우리 둘이 당나귀만 몰고 갔다면 종일 당나귀 등에 짐 얹히느라 시간을 다 소비했을 것이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8일간의 휴식. 다시 비포장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차가 들어가지 않는 초케키라우는 이런 식으로 걸어서만 들어갈 수 있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카초라는 산속에 숨겨진 조그만 마을인데 조용하고 아늑하다. 현재 초케키라우 발굴로 인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곳에서 초케키라우 투어를 4박 5일 또는 5박 6일을 하거나 8박 9일의 일정으로 마추픽추까지 등반이 가능하다. 첫날 등반은 20km 가량인데 약초 냄새를 맡으면서 길을 걷는 기분이 묘하다. 차가 다닐 수 없는 길이라 역시 공기가 신선하다.

길을 걷는 이는 당나귀와 가이드, 우리 부부뿐. 이런 곳에 과연 사람이 살까 싶지만 간혹 한두 채씩 보이는 집에 200명 이상이나 되는 사람들이 산다고 한다.
 
첫날의 목적지인 쿠키사카 캠핑장에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2005년 프랑스에서 지원을 받아 곳곳의 캠핑 장소에 간단한 편의시설을 들여놨다고 한다. 텐트를 치니 보름달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그러나 감흥도 잠시 산길 등반이 힘들었던 탓인지 8시부터 세상 모르고 골아 떨어졌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마추픽추보다 크고 오래된 페루 최대의 잉카 유적지 초케키라우.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시골의 숙소.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출발이 늦어지면 무더위로 등반길이 힘들기에 다음날은 일찍부터 서둘렀건만 7시부터 해가 쨍쨍 내리쬔다. 로사린다에 도착하여 아이푸막강을 건너서부터는 오르막이 계속된다. 짐 하나 없이 카메라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가는데도 힘든 데,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는 외국인 관광객이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고생을 사서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한 2시간 걸어 도착한 싼타로사에서 사탕수수로 만든 시원한 치차를 마실 수 있었다. 등산에 익숙해졌다 생각했건만 길이 가팔라 보통 때보다 힘이 두세 배는 더 든다. 발가락이 아파오니 멋진 광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빨리 목적지에 도달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어느덧 3,000m 높이에 오르자 산속에 꼭꼭 숨은 초케키라우 유적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약 30분이면 도달할 것 같은데 착각이란다. 3시간은 더 가야한다기에 다음날 아침 일찍 방문하기로 했다. 보름달 빛 아래 위용을 드러낸 고대 잉카 유적지를 바라보며 가만히 기도를 드려본다. 

다음날,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자 초케키라우로 가는 길이 더욱 신비롭다. 이런 곳에 꼭꼭 숨어 있었구나. 초케키라우는 마추픽추보다 집의 형태가 더 적다. 현재 발굴작업이 20~30%밖에 진행되지 않아 그리 웅장해 보이진 않지만 지형적 위치는 마추픽추 못지않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페루인들은 옥수수로 만든 치차를 즐겨 마신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사카다라발리에 있는 소금동산 마라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초케키라우에서 잉카의 정기를 잔뜩 받고 돌아오니 발가락엔 감각이 없고 새끼발가락에는 피멍이 맺혀 있다. 에릭은 종아리 근육에 무리가 가서 이틀 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다. 이를 본 호스텔의 페루 사람이 놀려댄다. 왜 돈 주고 그런 고생을 하느냐고. 자신은 페루인이지만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단다. 행복한 고생도 있고 꼭 해야하는 고생도 있다고 설명해줘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니, 참 이 일을 어찌하리.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 등반이 생각보다 힘들었는지, 아니면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자전거를 탄 까닭인지 마추픽추를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 오한이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마저 옴팍 맞았다. 부랴부랴 돌아와 약국에 가 증상을 말하니 독감이란다. 3일간 항생제를 먹고 페니실린까지 복용했는데도 차도가 없다.

모르는 사이 이상한 병균에 옮은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병원에 갔더니 봄 알레르기와 독감이 겹쳤단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몸에 힘이 쭉 빠져 숙소로 돌아와 누우려는데 호스텔 주인아줌마 노에미가 열이 있냐고 묻는다. 증상을 말하니 잉카인들이 마셨던 ‘무냐’라는 잎차를 끓여 줄 테니 한번 마셔보란다. 향이 은은하고 좋았다. 한 잔 마시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일어났더니 한결 살아난 듯했다. 몸도 거뜬하고 머리도 아프지 않은 것이 명약이 따로 없다 싶었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3500m 산 속에 핀 잉카의 꽃.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재래식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호스텔 주인 노에미 아줌마.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몸이 회복된 후 주인집 딸 밀라와 캄페치노 복장을 하고 외출해 졸지에 인기스타가 되는 경험도 했다. 2007년 3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노에미 아줌마는 기회 될 때마다 무냐 잎차를 끓여 보온병에 담아 주면서 곧 완쾌될 거라며 우릴 안심시켰다. 아줌마는 차만 끓여 주는 것이 아니라 손수 음식까지 만들어 주었다. 아플 때 집에서 엄마가 해주던 그런 간호였다. 8일간 앓으면서 아줌마와 딸 밀라와 친해졌다. 

하루는 몸이 조금 가벼워져 아줌마의 전통의상을 빌려 입고 밀라와 함께 광장에 나가니 나와 똑같은 옷을 입은 캄페치노와 페루인들이 우릴 반겨주었다. 밀라가 내 딸이냐고 묻기고 하고 내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줄 알고 케츄아어로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한 외국인 관광객은 그런 우리의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졸지에 올란타이탐보의 스타가 된 것이다. 

몸도 거뜬해지고 더 머물면 헤어지기 힘들 것 같아 떠날 채비를 했다. 마지막날 노에미 아줌마와 내 눈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말은 완전하게 통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서로의 마음이 전달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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