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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복고 여행] 응답하라, 청춘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화본 시간 여행
[복고 여행] 응답하라, 청춘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화본 시간 여행
  • 주성희 기자
  • 승인 2013.1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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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여행스케치=군위] 20년 전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함께 보며 엄마 아빠는 안방의 시계를 조금 더 뒤로 돌렸다. 까만 교복에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칼라가 자존심의 상징이던 학창시절, 자신들의 풋내 나는 청춘이 피어난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화본에 간 엄마 아빠는 만면에 해맑은 웃음을 띠었다. 수줍은 단발머리 소녀, 장난기 넘치는 까까머리 소년이었을 적, 예의 그 천진난만함을 되찾은 얼굴 앞에선 희끗한 머리칼도, 깊게 팬 주름도 무색했다. 

  
화본마을은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에 위치한 한적한 마을이다. 마을의 끝에서 끝까지 걷는데 30분이면 충분하고 관공서와 식당 몇 곳을 빼면 이렇다 할 시설도 없는 그야말로 조그마한 시골 마을인데, 주말이면 1000명 씩 외지 사람이 찾아온다. 증기기관차가 달리던 간이역, 낡은 풍금이 울리는 학교, 낮은 담장과 구멍가게가 어우러진 거리 등 기억 속에 묻어둔 그리운 풍경을 지금 현재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꼭 한번쯤은 되돌아가고 싶은 그때 그 시절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곳, 화본에서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시간 여행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진다. 

시간 여행의 관문, 화본역.​​​​​​​​​​​​​​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80여 년 전 모습 그대로의 간이역, 화본역
추억을 찾아 떠나는 시간 여행의 이동수단으로는 역시 낭만적인 기차가 제격. 서울 청량리역에서 화본역까지 무궁화호 열차로 4시간 20여 분이 걸린다. 그때 그 시절처럼 삶은 달걀에 톡 쏘는 사이다를 곁들여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별로 길지도 않다.   

1936년 문을 연 화본역은 80여 년 전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철도동호회 네티즌이 선정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뽑혔다. 과거 2, 7일 영천장이 서는 날이면 사람들이 꽤 북적였지만, 이용객이 줄면서 지금은 하루에 상행 3번, 하행 3번 총 6번만 열차가 정차하는 고즈넉한 간이역으로 변했다.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화본역 역사 내부.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중고 객차를 활용한 레일카페.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역사는 일제 강점기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드르륵 소리가 나는 나무문을 열고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역무원이 쓰던 모자, 석탄 난로, 손때 묻은 만화책 등 아기자기한 진열품이 볼거리를 더한다. 역무원 모자는 화본역 기념촬영의 단골 소품. 모자를 쓰고 역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데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개구진 표정이다. 손가락으로 V자도 그려 보고 승객을 맞이하는 역장처럼 제법 절도 있게 거수경례도 해본다.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1930년대 세워진 급수탑.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철로 건너편 거대한 급수탑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 증기기관차에 물을 보충하는 시설인 급수탑은 1930년대 높이 25m 규모로 세워졌다. 담쟁이덩굴에 둘러싸인 탑 내부에는 두 종류의 파이프 관과 환기구가 그대로 남아 용도를 유추해볼 수 있다. 탑 아래 위치한 우물 속에 그려진 증기기관차의 작동 원리 설명을 참고하면 급수탑의 용도를 한층 이해하기 쉽다. 

화본역과 급수탑을 둘러보는데 열차 이용객은 비용이 들지 않지만, 일반 여행객은 기념 입장권(500원)을 구매해야 한다. 역사 오른편으로는 아름드리나무가 널따란 그늘을 드리우는 쉼터와 중고 객차를 이용한 레일카페가 마련돼 있다. 오붓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공간이다.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에서 꼬마 때 추억을 되살린 20대 대구 아가씨들.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추억이 방울방울,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역을 나서면 복고 여행의 하이라이트, 1960~70년대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추억 체험 박물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가 기다리고 있다. 역전 삼거리에서 왼쪽 길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마법의 통로’. 단군신화, 주몽 등 <삼국유사>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그려진 마을 담장을 따라 이동하면 단 5분 만에 시간은 40년 전으로 거꾸로 흐른다.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폐교된 산정중학교를 추억 체험 박물관으로 꾸몄다.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폐교된 산성중학교에 꾸민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는 이름 그대로 엄마 아빠 어렸을 적 풍경으로 꽉 채워져 있다. 교실 문을 열면 백묵가루 날리는 칠판을 마주보고 키 작은 나무 책걸상이 조로록 열 맞춰 있다. 그 한가운데는 양은 도시락이 켜켜이 포개진 석탄 난로가 중심을 잡고 있다.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 후라이’가 밥을 덮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1960~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 골목.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온갖 간식 거리로 아이들을 유혹하던 추억의 역전상회.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뮤직 박스에서 DJ가 음악을 틀던 옛날 다방. 2014년 1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우리 집이 동네에서 텔레비전 제일 먼저 샀다 아이가. 그거 키면 우리 집으로 다 모였다 카이. 그때 다 같이 여로 보고…” 흑백 텔레비전 앞에서 꼼꼼히 옛 기억을 더듬는 조경래 씨 부부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결혼 32주년을 맞아 이곳으로 추억 여행을 왔단다. 아리랑 성냥, 청자 담배, 눈깔사탕 등 좁아도 없는 거 없이 다 있는 구멍가게 안을 들여다보다 삼양라면이 중학교 때 나왔는지 초등학교 때 나왔는지 실랑이를 하면서도 입가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맞나? 나 나오나?” 뮤직 박스가 있는 음악다방에 처음 앉아보는 대구 아가씨 셋은 못난이 인형과 포니 자동차 등이 전시된 소품 창고, 연탄가게, 만화방, 이발소가 들어찬 골목 곳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거 기억나나?” “난다! 마이 묵었다 아이가” 20대지만 익숙한 물건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추억의 퍼즐을 맞추는 목소리에 즐거움이 가득하다. 유치원생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는 철로 된 말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아빠가 아이보다 더 신나게 말을 구른다. 

“영주행 승차하십시오. 어머니 이거 타고 안동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홀로 승객을 하나하나 챙기는 역장님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추억 속을 빠져나온다. 열차 안에서는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은 엄마 아빠, 세대 간극을 좁혀 한층 가까워진 모녀, 잊고 있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되살린 부부가 현재의 시간을 다시금 촘촘히 채워간다. 
 
INFO. 화본역
운행 시간

상행선 10:24 청량리, 16:38 영주(매주 수요일 제외), 17:31 강릉 방면
하행선 11:22 동대구, 12:41 부전, 14:04 동대구(매주 수요일 제외) 방면
기념 입장권 500원(열차 승차권 소지시 무료)
주소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824-1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관람 시간 9:00~18:00(동절기 9:00~17:00)
관람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500원  
주소 경북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826-1

Tip .
서울에서 화본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당일로 여행할 경우 청량리역에서 8시2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면 12시 40분 화본역에 도착한다. 운임은 1만9100원. 
되돌아올 때는 오후 시간대 화본역에서 출발하는 청량리행 열차가 없기 때문에, 16시 38분 영주행 열차를 타고 안동이나 영주에 내려 청량리행 기차로 갈아타거나 서울행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화본역에서 안동역까지 열차 운임은 3600원, 소요 시간은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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