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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걷기 여행] 지리산 둘레길 제9코스 덕산~위태 “우리 마을 지날 때는 이름을 대시오”
[걷기 여행] 지리산 둘레길 제9코스 덕산~위태 “우리 마을 지날 때는 이름을 대시오”
  • 유명희 기자
  • 승인 2014.0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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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지리산 둘레길 제9코스 덕산 ~위태 구간의 시작점인 덕산 앞으로 흐르는 덕천강.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여행스케치=함양] 덕산~위태 구간은 조선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은하수에 비유했을 정도로 풍광이 뛰어난 덕천강과 천왕봉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거리는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 비교적 짧은 편으로 코스 중간지점인 중태마을에 실명제 안내소가 있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옥녀봉에서 옥녀가 하늘로 올라가며 금가락지를 빠뜨렸다는 ‘금환락지’ 표석.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옥녀가 금가락지를 빠뜨린 ‘금환락지’
지리산 둘레길 제9코스의 시작점인 덕산은 지리산 관문 가운데 하나다. 천왕봉을 오르는 최단 코스인 중산리, 세석고원까지 이어지는 거림골 등 동부 지리산 곳곳으로 연결된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중산과 삼장으로 나뉘어 흐르다 양당에서 다시 만난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남명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덕천서원은 덕산에서 손꼽히는 명소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덕산은 시천면과 삼장면 일대를 아우르는 이름이다. 시천면 사리 덕천강가에는 조선 중기 영남학파의 거두인 남명 조식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덕천서원이 있다. 서원은 학문을 위한 공간 경의당과 제례 공간 숭덕사로 나뉜다. 남명 선생의 위패를 모신 숭덕사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의 향례를 올린다. 

서원 앞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다. 남명 선생이 펼친 뜻만큼이나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은행나무는 키가 얼마나 큰 지 가까이서 보려고 하면 목덜미가 아플 지경이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의 세심정은 덕천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은행나무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세심정’이 마주보고 있다.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의 세심정은 덕천강을 바라보고 세워진 작은 정자다. 남명 선생의 제자인 수우당 최영경이 덕천서원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심정에는 퇴계 이황과 남명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퇴계와 남명이 세심정 근처에서 시천의 물고기를 회를 쳐서 먹고 그것을 다시 뱉어내 살리는 도술시합을 했단다. 퇴계가 먼저 고기를 씹다가 뱉었다. 살기는 하였으나 눈이 한 쪽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번엔 남명이 고기를 한참 씹다가 뱉었는데 물고기의 두 눈이 온전할 뿐만 아니라 힘차게 물을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덕천강 건너편은 시천면 천평리다. 천평리는 본래 마을 앞에 넓은 들이 있다 해서 ‘평광’이라 하였고, 큰 정자나무가 있어 ‘당촌’이라고도 불렸다. 덕산서원에서 천평교를 건너면 ‘냇가 옆에 자리 잡은 넓은 들녘’이라는 뜻을 가진 천평 들이 나온다. 이곳은 지리산 옥녀봉에서 옥녀가 하늘로 올라가며 금가락지를 빠뜨린 ‘금환락지’라 하여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올 때는 울고 들어오고 나갈 때는 웃고 나가는 곳’이라 하여 ‘해평 들’이라고도 불린다. 평생을 산청에서 살았다는 마을 주민들은 “덕천강 하류 쪽에서 천평 마을로 들어올 때는 좁은 입구와 협곡을 보며 실망하지만 나갈 때는 그 풍요로움에 기뻐한다”고 평한다. 

가을이면 천평리 송하마을은 집집마다 탐스럽게 익은 홍시가 담장을 넘어와 둘레길 여행객에게 인사를 건넨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종시로 마을에는 풍성한 ‘가을날의 수채화’가 그려진다. 겨울에는 말 그대로 설국이 따로 없다. 하얀 눈이 덮인 마을에는 바람마저 몸을 숨긴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천평 들 옆에는 곶감 경매장이 있다. 차가운 기류 덕에 자연 동결 건조가 가능한 산청 곶감은 당도가 높고 껍질이 얇으며 육질이 차지고 연하다. 고종시와 단성시로 생산되는데 씨가 거의 없고 과질이 부드럽다. 고종 황제 진상품으로 올렸을 정도로 맛이 빼어나다. 근래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선물해서 찬사를 받기도 했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중태마을 느티나무 옆 실명제 안내소.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공정여행의 발판, 중태마을 실명제 안내소
곶감 경매장에서 덕천강을 따라 2km쯤 가면 중태마을이 나온다. 중태마을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이다. 관군이 동학군에게 밀리자 조정과 일본은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군을 투입하였다. 일본군은 화약총, 단발식 총으로 무장하고 나타나 동학군을 공격했다. 충남 우금치에서 동학군 10만 명과 일본군 1만 명이 전투를 벌였는데 한나절 만에 동학군 9만5000명이 총탄에 맞아 죽었다. 동학군 간부들은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퇴각했다. 남부로 간 동학군이 뒤쫓는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매복한 곳이 바로 중태마을 부근 대나무 숲이었다. 마을은 느닷없는 난리를 겪고 쑥대밭이 되었다. 그날 얼마나 많은 동네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중태마을 당산은 한국전쟁 직후 불에 타 없어졌다. 이후 마을 주민들이 인근에 있던 느티나무를 지금의 자리에 옮겨 심어와 주민과 둘레길을 오가는 여행객의 쉼터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무는 멀리서도 한눈에 보일 만큼 크고 웅장하다. 

느티나무 옆에 ‘중태마을 실명제 안내소’가 있다. 안내소에서 여행객들은 스스로 책임여행과 공정여행을 다짐하는 기록을 한다. 책임여행, 공정여행이란 다름 아닌 ‘지리산 둘레길 도보여행을 위한 모든 준비는 이용객 스스로 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지역민들의 소중한 재산인 농작물은 눈으로만 보기, 쓰레기 되가져가기, 마을민박 이용하기’ 등을 실천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마을과 마을, 도시와 농촌, 자연과 사람, 공존과 화해가 함께하는 지리산 둘레길에서의 공정한 여행을 통해 건강한 지리산 둘레길 만들기에 앞장서는 것이다.  

중태에서 유점마을까지 가는 완만한 오르막길에는 감나무가 지천이다. 중태에서 골짜기로 들어가면 유점마을과 함께 그릇을 만들었다는 놋점골, 불당이 있었던 불당골이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유기그릇을 만들었던 유점마을과 놋점골, 불당골을 일컬어 ‘유점부락’이라고 불렀다. 

유점마을을 지나 임도를 따르면 갈치재 가는 길에 작은 쉼터가 나온다. 갈치재는 지리산 둘레길 산청구간과 하동구간의 경계로 갈치재를 넘으면 하동 땅이다. 쉼터는 갈치재를 넘어 하동으로 가기 전 산청을 제대로 느껴보라는 둘레길의 배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평상에 앉아 몸도 쉬고, 간식도 먹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갈치재에서 하동 쪽으로 내려가면 사철 푸름을 자랑하는 대나무 숲을 만난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산청과 하동을 잇는 갈치재
임도를 지나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갈치재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에서 갈치재까지는 5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갈치재는 한국전쟁 격전지 중 한 곳이다. 마을 주민들 상당수가 빨치산과 국군 사이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갈치재를 넘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동 사람들은 옥종장이 없던 시절 덕산장, 하동장을 보기 위해 갈치재를 넘었고, 산청 사람들은 하동으로 양식을 구하러 가기 위해 갈치재를 넘었다. 갈치재는 옥종의 사림산, 두방산 등의 산행코스에 속한다. 또 능선 정상에서 주산까지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다. 주산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의 전망이 아름다워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유점마을에는 감나무가 많다. 곶감을 말리는 풍경이 아름답다. 2014년 2월 사진 / 유명희, 이영우 기자

하동 위태마을 주민들은 갈치재를 중태마을과 연결 되어 있다 하여 ‘중태재’라고 부른다. 갈치재에서 하동 쪽으로 내려가면 대나무 숲이 펼쳐진다. 하늘을 찌를 듯 키 큰 대나무들이 열을 맞추어 빽빽하게 서 있다.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태 마을회관이 있다. 회관 골목을 빠져나가자 착착 도리깨질 소리가 반갑게 맞는다. 소리의 주인공은 덕산 시천면 내공리에서 시집을 와 위태에서만 61년을 살았다는 할머니. 일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고 했더니 함박웃음으로 기꺼이 허락한다. 

INFO.
지리산 둘레길 제9코스_덕산~위태 구간
코스
덕산(사리마을)~시천면사무소~천평교~중태~유점마을~중태재~위태(상촌)
거리 10.3km 
소요 시간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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