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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한국의 비경] 봄여름가을겨울 아름다운 사계, 경북 청송 주산지  꿈에 본 듯, 생시에 본 듯
[한국의 비경] 봄여름가을겨울 아름다운 사계, 경북 청송 주산지  꿈에 본 듯, 생시에 본 듯
  • 송수영 기자
  • 승인 2007.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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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청송 주산지 왕버들의 모습.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여행스케치=청송] 다섯 시간 차 타고 와서 30분 훌쩍 보고 떠나려면 아예 주산지를 찾지 말라. 멋진 사진 한 장 건져보겠다는 욕심이 더 앞선다면 다른 곳을 찾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미 너무 유명해져서 멋진 사진은 인터넷에 수없이 넘쳐난다. 주산지는 그냥 아무 기대 없이 찾아야 한다. 

청송에서 올라온 친구가 자신의 고향을 ‘오지’라고 할 때 그냥 하는 소리인줄 알고 웃어넘겼는데 아닌 게 아니라 들어가는 길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굽이굽이 물결친다.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가는 길이 지루하진 않다. 청송(靑松)…. 나지막이 부르면 푸른 물이 막 떨어질 것만 같다. 지금 푸른 소나무 고을 청송에 있는 주산지를 향해 가는 길이다.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주산지를 만든것을 기념해 입구에 세워둔 비석.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주산지를 말할 때 꼭 수식어로 등장하는 것이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봄 >이다. 영화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두 해 전 그곳에 가본 적 있냐고 물어보는 영국인을 만나 머쓱해진 적이 있다. 이런 엄청난 반응 덕분에 김기덕 감독은 그해 대종상 영화제 작품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 공을 주산지에 돌리기도 했다. 

주산지까지 가려면 청송 부동면에 들어가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들어가야 한다. 절에 들어갈 때 세속의 번뇌를 씻기 위해 먼저 일주문을 거치듯 주산지로 들어가는 포장 안 된 길을 걸으며서 왠지 벌써부터 마음이 차분해진다.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잉어들이 왕버들과 더불어 평온하게 살고 있다.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주산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아랫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나물이나 콩 등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벌인다.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올라가는 길 오른쪽으로는 오염이 안 된 주왕산 계곡 물소리가 싱그럽다. 부동면에 사는 주민 할머니 말로는 주말이면 전국에서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빽빽이 들어와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간다는데, 평일 오후라 그런지 다행히 그런 소란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40분 정도 들어가자 길 끝에 짙푸른 호수가 보인다. 아, 주산지다. 

길이 100m, 넓이 50m라고 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주산지 자체는 넓지 않다. 그러나 푸른 물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28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킨 왕버들의 카리스마는 다른 모든 생각을 접게 만든다. 그 오랜 시간이 이 나무에게도 질곡의 세월이었을까, 가지가 한껏 뒤틀려 하늘을 향한 채 미동도 않는다. 또 한 해를 맞아 푸릇한 생명의 기운을 더해가는 왕버들의 신비로운 생명력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 

주왕산국립공원의 주산지를 관리하는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원래 소(沼)였단다. 물이 많아 주변에 왕버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이것이 워낙 습한 것을 좋아하고 생명력이 왕성해 물이 찬 뒤에도 죽지 않고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이란다.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보기에도 시원한 나무들. 한창 물이 올랐다.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햇살이 잔물결에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눈부시다. 2007년 6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현재 물속에 잠겨 있는 왕버들은 총 25주, 물가에 5주, 총 30주가 있다. 5년 전만 해도 물속에 30주가 있었지만 환경 변화 등으로 자연 고사했다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주산지는 원래 물을 대기 위한 인공저수지이다. 통치자의 덕이 물을 잘 다스리는 치수(治水)에 있던 농경사회의 산물인 것이다. 숙종 46년인 1720년 완공하였는데, 입구엔 이를 기념하는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다. “一障貯水 流惠萬人 不忘千秋 惟一片碣(정성으로 물을 모아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오래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운다).” 

처음 숙종 임금이 이곳을 만들 때는 후대 사람들이 멀리에서 ‘저수지’를 보러 일부러 찾아오리라고는 아마 생각치 못 하셨을 것이다. 어쨌든 물을 잘 돌보신 덕분에 주산지는 첨단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여전히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창 물이 필요한 5월 하순부터 9월까지 이곳의 물은 아랫마을 논에도 가고, 사과밭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때문에 이 시기에 주산지를 찾은 여행객들은 물이 빠진 주산지를 보게 된다.     

주산지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의 풍광에서 풍기는 웅장한 멋은 없지만 아기자기하고, 인공적이고 화려한 일본적인 분위기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멋이다. 왕버드나무 너머로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고, 수림들은 그저 무념무상하다. 

그런 때문일까, 물가에 철퍼덕 주저앉아 몇 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겠다. 모든 생각을 잊고 나무만 바라보며, 물을 바라보며, 거기에 비친 나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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