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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맛있는 여행] 남쪽 바다 맛의 진수를 가린다 남해 멸치회 VS 여수 간장게장
[맛있는 여행] 남쪽 바다 맛의 진수를 가린다 남해 멸치회 VS 여수 간장게장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4.04.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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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여행스케치=여수] 벚꽃이 팝콘처럼 꽃망울을 터뜨리던 날, 고속도로까지 남해의 갯바람이 마중을 나왔다. 멸치회랑 생선조림이랑 간장게장이랑 맛보고 가라 살랑살랑 꼬드기기에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멸치회무침은 봄에 잡은 멸치를 급랭시켰다가 꺼내서 초고추장과 버무려서 만든다. 멸치 쌈밥도 있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남해 

새콤달콤 사르르 죽방렴 멸치 지족마을 멸치회&멸치쌈밥 거리

몇 해 전 남해를 여행하면서 다짐해 둔 일이 있다. 진달래가 피고, 벚꽃이 활짝 필 때 남해를 다시 찾자! 순전히 멸치회 때문이다. 당시 미조항에서 생선조림을 먹고 창선대교 쪽으로 차를 달리는데 죽방렴으로 멸치를 잡는 지족마을 일대에 횟집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배가 부른 탓에 겨우 맛만 봤는데 새콤달콤 사르르 씹히는 멸치회 맛이 여러 날 동안 입안에 살아 있었다. 

“4월부터 6월에 잡은 멸치가 회무침으로 먹으면 맛있어요. 쌈밥도 좋고요. 특히 6월 멸치는 알이 배 맛있지요.” 산동면 지족마을 사무장 박대규 씨의 설명이다. 남해 본섬과 창선도 사이에서 죽방렴으로 멸치를 잡기 시작한 것은 조선 예종 때라고 전한다. 약 550년 전부터 멸치를 잡아먹은 셈이다. 지족마을은 남해도와 창선도를 잇는 창선교 양쪽 끝에 있는 두 마을을 말한다. 마을 이름은 다리가 놓이기 전 먼 길을 걸어온 다리(足)를 쉬었다 가는 마을, 언제나 욕심을 부리지 말고 만족(足)함을 알고 살라는 뜻한다. 각기 다른 면에 속하면서도 마주 서서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지족마을에 멸치횟집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집집마다 안주인이 솜씨껏 만들어서 먹던 음식을 하나둘 씩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게 벌써 20여 집이다. 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멸치를 빙장한 후 냉장고에 보관했다 먹을 때 절반으로 쪼개서 양념이 골고루 스며들게 한다. 양념은 초고추장과 양파, 미나리, 풋고추를 넣고 적당히 버무려 따로 낸다. 상추나 들깻잎에 멸치와 양념을 넣고 풋고추와 마늘을 올린 뒤 싸서 입에 쏙 넣으면 멸치 살이 부서지면서 혀에 감기는 촉감이 그만이다. 입안에 향긋한 멸치냄새가 가득 고인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음식점 주인과 이웃집에 살면서 주방 일을 돌봐주는 김해경 조리실장.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는 손도멸치쌈밥에서 주방 일을 보고 있는 김해경 씨는 “싱싱한 멸치와 손맛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맛이 비슷하다”며 “집에서 막걸리를 숙성시켜 만드는 전통식초를 사용해 새콤한 맛을 낸다”고 말한다. 뚝배기에 무시래기와 갖은 양념을 넣고 뜨거운 불에 졸인 멸치를 밥과 함께 상추에 싸먹는 멸치쌈밥도 거의 모든 멸치횟집에서 함께 판매한다. 멸치는 중멸(고주바) 이상을 사용하며, 이른 봄에 잡은 것을 급냉시켜 사철 사용한다. 

5월부터 갈치, 병어 등 생선조림을 맛볼 수 있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풍광만큼 맛도 아름다운 미조항 생선조림 식당거리
남해에서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포구는 미조항(彌助港)이다. 10여 년 전 처음 미조항에 갔을 때, 너무나 당연하게 아름다운 미(美) 자를 쓰는 포구인 줄 짐작했다. 옅은 안개가 살포시 휘감고 있는 미조항이 넋을 빼놓을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진입로 뒤편 남항에 갔을 때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면서 울어댈 때는 마치 선계에 이른 듯했다. 음식 따윈 안 먹어도 좋을 만큼, 배고픈 줄도 모르고 풍광에 빠져들게 했던 미조항. 그곳에 한 집 건너 하나씩 횟집이나 음식점, 주점이 즐비한 사실에 놀랐고, 어느 허름한 음식점에 들었다가 생선조림으로 점심을 먹다가 다시 한 번 놀랐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미조리 남항에 있는 미조식당은 생선조림과 생선구이 전문 식당이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남태평양에서 가장 가까운 포구가 미조항입니다. 작은 포구가 아니죠. 1968년에 어업전진기지로 지명된 마을인데 창선교와 연륙교가 놓이면서 물고기를 실은 트럭이 하루에 수십 대씩 드나들었어요.” 스스로 미조항의 머슴을 자처하는 김대홍 미조면장이 미조항의 규모를 자랑한다. 그런 만큼 싱싱한 생선이 많다는 이야기다. 생선이 많고 찾는 사람이 늘면서 음식점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은 30집이 넘는다. 생선회와 생선조림을 파는 음식점이 대부분이다. 5월말부터 본격적으로 생선조림을 팔기 시작하는데 먼저 찾는 손님들을 위해 미리 준비한 식당도 있다.

“제주도 앞바다에서 몇 마리 잡힌 거래요.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받아 놨어요.”미조식당 김영애 사장은 갈치조림을 내놓으며 말한다. 초봄에는 병어조림이 없다. 5월에 접어들어야 병어나 갈치조림을 쉽게 맛볼 수 있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돌게장은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있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여수 
달콤 짭쪼름한 밥도둑봉산동 게장백반거리

여수는 전국에 한정식을 퍼뜨린 고장이다. 바닷가에서 흔한 생선회보다 다양한 조리를 해서 먹기 시작한 것이 여수 한정식의 역사다. 여수에는 수산물 먹을거리가 지천이다. 봄에는 서대회와 도다리, 여름에는 하모(갯장어), 가을에는 전어와 갈치, 겨울에는 굴과 삼치, 그리고 사계절 맛있는 아구찜을 먹을 수 있다. 여수여객선터미널 뒤편에 있는 수산시장은 남해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다 있다. 사계절 쉬는 날 없이 생선을 사고판다. 때문에 여수를 찾는 관광객들은 일부러 수산시장에 들러 생선회를 사먹거나 길 건너 있는 수산물특화시장에서 건어물을 사기도 한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게장백반을 주문하면 두 가지 게장과 10가지 넘는 밑반반이 나온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동쪽으로 돌산대교가 바라보이는 봉산동에 게장거리가 있다. 여수돌게장은 주로 여수 앞바다와 진도 앞바다에서 서식하는 돌게를 간장에 숙성시켰다가 반찬으로 먹는다. 돌게는 꽃게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 커도 꽃게보다 작다. 봄에 잡아서 급랭시켜 보관해 두고 조금씩 꺼내서 판매한다. 

“돌게는 다 같은 바다에서 잡히잖아요. 간장에 따라 게장 맛이 조금씩 달라지죠. 계피, 당귀, 황귀, 감초 등 갖은 한약재를 넣고 끓입니다. 끓인 간장을 돌게에 붓고, 적당히 숙성되면 꺼내 먹지요.” 등가게장 차미순 사장은 간장 맛이 게장 맛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게장백반을 시키면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조기 매운탕에 반찬이 10가지가 넘게 나온다. 게다가 게장은 무한 리필! 간장게장의 다리를 집어 몸통을 먼저 입에 넣었다. 앞니로 살짝 깨물었더니 입안에 게살이 가득 찬다. 혀가 깜짝 놀라서 목구멍으로 물러난다. 무서운 밥도둑이 들어온 것이다. 게살이 달콤하고 부드럽다.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하모 샤부샤부. 2014년 5월 사진 / 류병문 기자

오독오독 쫄깃쫄깃 야들야들 남산동 하모의 거리
여름에 여수에 가면 하모를 먹으란 말이 있다. 하모는 갯장어의 일본말. 일본 사람들이 여수 어부들에게 갯장어를 잡아 달래서 몽땅 수입해가던 시절에 붙은 이름이다. 하모 요리는 경도에 있는 경호회관에서 시작했다. 70년대 말, 일본 수입업자들이 여수에서 갯장어를 잡아 준 선주와 어부들을 일본으로 초대해 하모 요리를 대접했는데, 이 맛에 반한 선주와 어부들이 한국에 돌아와 지인들에게 하모 요리를 선보이다 메뉴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돌산대교 북단 바닷가 달머리동네에 네 집이 자리하고 있다. 달랑 네 집이지만 그래도 '하모의 거리'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여름에는 성시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중 하얀집 강복희 사장의 아낌없는 서비스에 홀려 몇 년 째 단골로 다니고 있다.  

"우리 집 손님인디 맛있게 잡수고 가셔야제. 술 좋아하시면 장어 쓸개주도 한 잔 드릴까?"? 

강 사장은 딸이나 며느리들이 가끔 일을 돕는다고 와도 혹여 서비스 정신이 부족해 손님들한테 송구를 끼칠까 걱정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손님이 많은 시기에는 종업원 수를 더 늘리곤 한다고.  

하모는 일단 회로 먹는다. 상추에 하모 살점을 집어 올리고, 풋고추랑 마늘을 넣어서 쌈을 싸서 먹으면 탄탄한 살점이 입안에서 구른다. 오독오독 쫄깃쫄깃하며 몇 차례 씹으면 단맛이 고인다. 샤부샤부로 즐겨도 좋다. 부추, 버섯, 대파 따위 채소를 넣어 펄펄 끓인 육수에 장어 살점을 적셔 살짝 데친 후 꺼내서 소스에 찍어 먹거나 쌈을 싸서 먹는다. 샤부샤부로 먹으면 육질이 아주 부드러워져 입안에서 아리랑 가락에 맞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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