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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김준의 섬 여행 45] 바다와 육지가 풍요롭다 경남 사천시 신수도
[김준의 섬 여행 45] 바다와 육지가 풍요롭다 경남 사천시 신수도
  • 김준 작가
  • 승인 2014.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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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스케치=사천] “그것이 뭐요.”

“고사리요. 팔라고 가지고 나오요.”
금년에 꺽은 고사리다. 바다 고기가 줄어드니 나물용 고사리가 생계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덕분에 경사진 거친 땅도 일궈 고사리밭을 만들었다. 신수도는 작은 땅도 놀리지 않는다. 그 탓에 노인들 골병드니 이를 반겨야 할지 망설여진다. 부자섬으로 소문난 신수도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다른 섬은 낚시를 위해 말총을 사용할 때 신수도 주민들은 나일론 줄로 고기를 잡았다. 지금도 노인들은 흑산도나 제주 인근 해역에서 고기를 잡던 기억이 생생하다.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섬에 사람이 많이 살 때는 공동으로 미역을 채취하고 똑같이 나누었다. 갯바위에 붙어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었다. 눈으로 보고도 힘이 부치고 갯바위가 위험하니 뜯을 수 없다. 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겨우 작업을 해오면 가까운 곳에 사는 자식들이 들어와 돕는다. 귀찮은 일이지만 양식 미역과 다름을 알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명품섬으로 지정되다
사천시에는 신수도를 비롯해 10개의 유인도가 있다. 신수도는 그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에는 큰 마을인 신수마을과 작은 마을인 대구마을이 있다. 한 때 1500명이 살았지만 지금은 177가구에 366명이 살고 있다. 신수도로 가는 배를 타는 곳은 삼천포 유람선 선착장에서 삼천포항으로 가는 길에 있다. 배를 타고 ‘다리백화점’이라 일컫는 남해와 사천을 잇는 다리에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도착할 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 1978년에야 전깃불을 켜기 시작했고, 1985년이 되어서야 간이상수도가 생겼다. 2010년 6월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한국의 명품섬 10’에 포함되어 도선터미널, 관광안내센터, 특산물판매장을 갖춘 복합문화터미널을 신축했다. 그리고 어느 길에서나 바다와 섬을 볼 수 있는 자전거 트레킹 코스도 만들었지만 걸어서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거리다. 그동안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대구마을과 본동마을을 잇는 2km의 해안도로를 개설하지 못했다. 그 덕에 섬의 풍광과 자연이 오롯이 남을 수 있어 명품섬으로 지정되어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으니 새옹지마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새벽 첫물에 그물에 든 새우를 털어왔다. 팔딱팔딱 뛰는 통통한 새우를 한 마리 건네며 먹어보라 권했다. 바닷물이 채 마르지 않은 새우가 입안에서 바르르 떨었다. “잔인한 인간들” 하면서. 그런데 달콤하다. 삶아 말리지 않고 생새우를 그대로 말리는 이유를 물었다. 삶으면 육수가 빠지기 때문에 색깔은 거무튀튀하지만 그냥 말리는 것이 좋단다. 늘 이렇게 배운다.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멸치 잡는 죽방렴
신수도에는 섬마을을 오가는 차가 없다. 자전거 길이 좋아 타고 다닐만 하지만 걸어서도 반나절이면 섬 구석구석을 돌아 볼 수 있다. 섬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2개 있어 막걸리 정도는 마실 수 있지만 식당은 없다.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첫배를 타고 들어와 섬을 둘러보고 점심은 사천 어시장 부근에서 먹으면 된다. 

선창 앞에 신수동 출장소가 있다. 그 앞에 커다랗게 안내판이 있어 길을 걷는데 참고할 만하다. 어느 쪽이나 해안을 따라 걷는다. 우선 섬의 북쪽으로 걷기로 했다. 채방골을 지나 언덕에 올라서자 사천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끝자락을 조진나루라고 부른다. 바로 그곳에 죽방렴이 있다. 문이 잠긴 멸치막 안에 가마솥과 여러 도구들이 보였다. 멸치 잡는 모습이나 삶는 광경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가까운 곳에서 죽방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신수도에는 모두 3개의 죽방렴이 있다. 조진나루의 죽방렴 외에 두 개가 대구마을에 있다. 죽방렴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고 물살이 세고 수심이 낮은 곳에 ‘V’자 모양으로 날개를 만들고 ‘V’자 끝에 함정인 임통(불통)을 만들어 물고기를 유인해 가두어 잡는 어법이다. 조진나루의 죽방렴은 서쪽으로 날개가 열려 있고, 대구마을의 죽방렴은 북쪽으로 열려 있다. 모두 사천만으로 들어왔던 물이 빠져나가는 방향에 맞춰 설치한 것이다. 죽방렴이 많은 경남 남해군 지족마을의 날개는 서쪽을 향해 열려 있다. 역시 썰물을 따라 빠져나가는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신수도처럼 섬에 가깝게 잇대어 죽방렴을 설치한 늑도, 신도, 마도 등의 죽방렴 방향이 다른 것도 섬이나 지형지물로 인해 조류의 방향이 변하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큰 마을인 신수마을과 창선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진주재에 올랐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멀리 진주까지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고개 이름이다.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마을 지키는 신당과 성황당
조진나루에서 신수마을로 향하다 보면 왼쪽으로 물이 빠지면 건너갈 수 있는 추도라는 무인도가 나온다. 사천시는 이곳에 해양야영장, 활쏘기 체험장, 수군막사 체험장 등을 갖춘 ‘경상우도 수군 병영체험장’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추도를 지나면 당산에 이른다. 마을 주민들은 신당이라 불렀다. 정월 초사흘에 제를 지냈다. 당산 안에 작은 당집이 있고 주변에 느티나무가 있다. 그 곁에 수령이 수백 년이 된 소나무가 쓰러져 썩어가고 있었다. 옛날에는 주민이 직접 제사를 지냈지만 20여 년 전부터 스님이 주관을 하고 있다. 

신수마을 당산나무를 지나 진주재에 올랐다. 신수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창선도와 삼천포를 잇는 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수도 앞 바다는 옛날 사천과 부산과 여수를 오가는 뱃길이었다. 진주재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진주까지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곳에 서면 공룡알이 발견된 아두섬과 장구섬, 코섬, 솔섬 등 크고 작은 섬과 창선도가 한눈에 보인다. 

신수마을에서 대구마을로 가는 길은 사량도와 수우도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 대나무 두 개를 세워 새끼줄을 드리우고 작은 무덤 가장자리에 동그랗게 둥근 돌을 세워 경계를 지웠다. 마을로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풍어를 기원하는 성황당이다. 보통 고갯마루나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의 위에 있는데 대구마을은 마을 앞 길가에 있다. 옛길을 생각해보면 성황당이 신수마을에서 고개를 넘어 대구마을로 들어오는 입구라 할 수 있다. 신수마을과 달리 규모도 작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선창과 방파제 공사의 틈바구니에서 성황당이 남아 있는 것이 대견했다.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며 섬을 지켜온 마을사람들을 꼭 닮았다.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한적한 자전거길은 고사리 차지다. 밭에 솥을 걸고 바로 뜯어 삶았으니 얼마나 신선하고 깨끗할까.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신수도의 명품, 고사리
섬마을 곳곳에 일궈 놓은 작은 밭들이 인상적이었다. 비탈진 곳을 일궈 고사리를 심고, 완두콩과 고구마 순도 자라고 있었다. 신수도에서는 고구마를 ‘고메’라고 부른다. 여름철에 순이 자라면 잘라 밭에 심을 것이다. 작은 고구마 순 한 줄기가 자라서 사방팔방으로 넝쿨을 내리고 굵은 고구마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쌀이 부족한 시절에 섬사람들의 식량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고마운 고구마다. 남해의 섬 주민들은 모두 땅에서는 고구마에 바다에서는 멸치에 기대어 살았다.

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초등학교가 문을 닫지 않아 다행이다. 배를 타고 사천시로 중, 고등학교를 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섬마을 학교는 특별한 곳이다.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건 떠난 사람이건 마음의 구심점이자 상징이다.2014년 7월 사진 / 김준 작가

가을이면 토실토실 붉은 고구마를 캐서 갈무리 해두었다가 찬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겨울 삼천포 장날에 가지고 나갔다. 고구마는 겨울철 신수도 주민들의 주 소득원이다. 신수도 고구마는 말랑말랑하니 달고 맛이 있어 단골들이 즐겨 찾는 품목이다. 욕지도 고구마가 맛이 있다지만 신수도 주민들은 “우리 고메 맛이 훨씬 낫다”고 자신한다. 오직 보리와 고구마로 식량을 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고사리와 완두콩을 심어 고구마와 함께 오일장을 찾는다. 봄꽃들이 질 무렵이면 신수도에서는 벌써 고사리를 삶아 말리는 일이 끝난다. 사량도와 수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섬의 동남쪽 양지바른 고사리밭. 귀퉁이에 화덕을 만들고 걸어 놓은 솥에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밭에서 꺾어 바로 삶아 말리기 때문에 싱싱하고, 차도 다니지 않는 갯마을에서 해풍에 말리니 깨끗하고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신수도 고사리 인기가 높아지니 고구마 밭도 마늘밭도 하나 둘 고사리 차지가 되고 있다. 땅을 살리고 바다를 살리는 일이 우선일 텐데, 현실은 앉을 사람도 없는 벤치를 만드는 일이 늘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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