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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별한 만남이 있는 여행 ②] 울주군 간절곶 등대 바다의 빛과 그림자, 등대와 등대지기 
[특별한 만남이 있는 여행 ②] 울주군 간절곶 등대 바다의 빛과 그림자, 등대와 등대지기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7.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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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등대지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장명수 항로표지원.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울주] 모두가 잠든 밤, 가장 환한 빛으로 배들의 앞길을 비춰주는 사람. *등대지기다. 어느 직업인들 힘들지 않을까마는 외딴 곳에 위치한 일터에서 외로움과 싸우는 그들의 삶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울주군 간절곶 등대에서 30년째 안전 항해를 돕는 장명수 항로표지관리소장을 만나보았다. 

울주군의 간절곶은 새해 일출을 보는 명소다. 2000년 울산시에서 주최한 해맞이 행사가 치러진 이후로 매년 이곳에서 뜨는 해를 보며 소망을 빌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새천년을 앞두고 조사한 결과 간절곶에 해 뜨는 시각이 호미곶보다 1분 4초 빠른 것으로 밝혀지면서 관광객 수가 급증한 것이다. 동해를 지형적으로 보면 포항의 호미곶이 가장 돌출되어 보이지만 섬나라를 제외한 동아시아 중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곳은 간절곶이다. 등대 앞에 해맞이 공원이 조성돼 있어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일출을 볼 수 있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등대가 보이는 간절곶 풍경.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더위가 한풀 꺾인 이날도 부산, 포항 등지에서 드라이브를 온 사람들로 해맞이 공원은 북적였다. 공원에는 바다와 마주한 벤치와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신라 충신 박제상 부인의 조각품 등이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있어 작은 조각공원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울산시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이곳에 멋있는 소나무를 몇 그루 심었는데 강풍으로 잘 자라지 못해 결국 베어버렸단다. 해안절벽에 나무 한 그루 없으니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바닷가 전망은 탁월하다. 간절곶 위로는 등대가 보인다. 1920년 3월에 첫 불을 밝힌 간절곶 등대는 입출항 물자량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이 길목에서 무수한 화물선과 어선들을 안전한 항로로 이끌었다. 그 중심에 장명수 항로표지관리소장이 있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기원전 280년 건축된 파로스 등대와 비빌론의 공중 정원등을 비롯해 고대 7대 불가사의가 그림과 함께 나타나 있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30년, 등대와 함께한 세월
“30대 초반에 시작했는데 괜찮데. 큰 보람은 없지만.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섬 위주로 출장을 다녔는데 군산 앞바다 연도섬에 있는 무인등대를 보고 또 다른 섬에서 유인등대를 보고 막연하게 등대에서 근무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의외였다. 등대를 지키는 사람을 인터뷰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고독을 이겨내는 법, 바다 사랑과 같은 감성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냈다. 외로움과 고독이 그들을 따라다니는 수식어 같기도 하다. 한데 간절곶을 지키는 장명수 소장은 ‘할 만한 일’이라며 그 모든 궁금증을 일축했다. 군산이 고향인 그는 막연히 등대에서 일해보고 싶어 1979년 3월에 목포 홍도 등대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현재는 유명한 관광지인 홍도지만 그 당시엔 그의 표현대로 고해낙도(孤海落島)였다. 말 그대로 외로운 바다에 홀로 떨어져 있는 섬이었던 것. 

“나 같은 경우는 가족과 한 번도 안 떨어졌어, 집사람 없으면 못살 것 같아서 죽으나 사나  붙어 있었지. 아마 내가 유일 할 거여.” 
섬으로 발령이 나면 대부분의 등대지기는 가족을 두고 혼자 살지만 장명수 소장은 등대원 일을 시작한 이후로 아내가 딸을 출산할 때 한 달을 제외하고는 현재까지도 부인과 함께 지낸다. 그래서 가족들의 고생이 많았다.   

홍도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5시간, 홍도 다음으로 근무했던 죽도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이섬 저섬 다 들른 뒤 서거차도에서 1박을 하고 개인 사선이나 정부 보조로 운행되는 그 당시의 새마을호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배 타는 시간만 무려 13시간. 어린 딸을 데리고 부인과 함께 죽도를 들어가면 바닷물에 전부 속을 게워내고 더 나올 것이 없는데도 헛구역질을 했다. 절반쯤 갔을 무렵, 뱃멀미에 몸이 축 늘어진 딸이 이제 내리자며 보채기 시작했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부인과 딸에게 미안하단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한국의 등대 모형과 등대 관련 소품이 전시된 전시관.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외딴 섬에는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배가 없다. 그 시절엔 특히 더 그랬다. 그러면 식수와 기름, 식량 등을 싣고 등대원 근무 교대하러 오는 표지 보급선이나 어선이나 사선 등을 타고 두세 달에 한 번 육지에 나왔다. 그나마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고 풍랑이 일면 섬에 발이 묶이는 것도 다반사.

30년 통틀어 죽도에서 근무했을 때가 가장 고생이었다는 장명수 소장. 하지만 ‘힘들다’는 말을 아낀다. 섬에서의 생활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지금은 육지에서 근무하니 현재 섬에서 근무하는 다른 등대원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라고. 홍도 이후 목포구 등대, 죽도 등대 등 남해 인근에 근무하다 1985년에 울산 간절곶 등대, 울산 방어동의 화암초 등대, 울산 일산동의 울기 등대를 거쳐 4년 전 간절곶 등대로 돌아와 울산 등지에서만 22년째 근무 중이다.
 
등대원의 24시간
간절곶 등대에는 3명의 항로표지원이 있다. 3명씩 3교대로 12시간씩 아흐레 일하고 나흘을 쉰다. 한 사람이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하면 다음 사람이 밤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식이다. 근무시간은 매일 달라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도 감수해야 한다. 

등대 바로 옆 2층에는 우리나라의 등대를 소개하는 작은 전시관이 있어, 시간 여유가 있고 미리 단체에서 부탁을 하면 전시관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사무실 옆에는 등대원을 위한 관사가 있다. 점심과 저녁 시간대에는 관사 내에서 각자 밥도 해 먹는다. 낮에는 주로 시설을 점검하고 보수하며 관할구역에 있는 무인등대를 관리하고, 본격적인 업무는 해가 지면 시작된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신등탑을 건립하며 철거된 기존 등탑.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저녁이면 등탑의 가장 위에 설치된 회전식 대형 등명기에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15초에 한 번 불이 반짝인다. 등이 사면에 달려 있고 돌아가면서 바다로 불빛을 비추는데 바다에 있는 사람은 15초에 한 번 반짝이는 그 불빛을 보고 간절곶 등대를 알아본다. 불빛이 나가는 거리는 25마일로 50km 전방에서도 보인다. 조그만 1촉짜리 전구 180만 개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빛이다. 해무가 자욱해서 불빛이 보이지 않는 날은 무종을 울려 소리로 등대가 있음을 알린다.      

“우리가 육지에서 지도나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듯이 바다의 교통을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육지에 도로가 있듯 바다에도 배가 다니는 항로가 있지요. 그 길을 밝혀주고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임무입니다.” 

2~3년마다 도서지방을 돌아가며 근무하는 순환업무체제라 한 곳에 오래 정 붙이며 살기도 쉽지 않다. 등대가 빛이라면 등대원은 그림자인 셈이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등탑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해맞이 공원 전경.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등대에서 일출도 보고 등대 체험도 가능
간절곶 등대는 지난 2001년 해맞이 행사를 하며 새롭게 신축하였다. 17m 높이에 맨 아래쪽은 원형, 중간 몸통은 팔각형이고 지붕에는 동기와를 얹은 세련된 모습이다. 

기존에 쓰던 등대는 잔디밭에 전시해놓아 일반인들이 볼 수 있지만 새 등대는 평상시에는 개방하지 않다가 1년에 1~2주간의 바다주간과 연말에만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등대 주변 어디에서나 일출을 볼 수 있지만 등탑 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동해바다와 해맞이공원 일대가 시원스레 눈앞에 펼쳐진다.  

간절곶 등대에는 관사 내의 남는 숙소를 개조한 휴양시설인 일영정(日迎亭)이 있다. 원래는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개방형 숙소였지만, 일부 이용객의 추태로 인해 요즘에는 아이들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한시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콘도처럼 모든 시설이 잘 갖추어져 먹을 것만 준비해 가면 큰 불편은 없다. 방학 전에 숙소가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항로표지과에 미리 예약하면 등대에서의 하룻밤을 체험할 수 있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조각공원 한쪽에는 대형 소망우체통이 있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우리나라 등대 100년의 역사
등대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대륙 침략을 꾀하던 일본이 해상수송을 위해 등대 같은 항로표지시설을 확충할 것을 요구하면서 등대가 처음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903년 인천의 팔미도 등대를 선두로 울산항의 울기등대, 제주항의 우도등대, 여수항의 거문도등대 등 유인등대가 생기기 시작해 일제강점기까지 20곳의 등대가 더 생겨났다. 

현재 전국의 유인등대는 총 43곳(무인등대 666곳)이다. 대부분의 유인등대는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날씨나 기상상태에 따라 전망대에 오르는 것을 금하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 100년 등대 역사를 다룬 등대박물관은 포항 호미곶 옆에 자리한다. 

등대를 배경으로 한 CF나 드라마, 영화 촬영이 늘면서 최근에는 등대가 관광지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젠 예술성도 갖춘 등대가 대접받는 시대지만 등대의 의미만은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자고 한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등대지기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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