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1박 2일 여행] 근대문화유산 답사 군산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보다
[1박 2일 여행] 근대문화유산 답사 군산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보다
  • 서태경 기자
  • 승인 2007.09.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군산에서 볼 수 있는 일본식 가옥.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여행스케치=군산] 군산만큼 개성적인 콘텐츠를 지닌 도시가 또 있을까. 한때 일제 수탈의 전초기지였던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큰 번영을 이루었던 천야해일(天夜海日)의 군산. 지금도 군산 곳곳에는 과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를 발판 삼아 더 멀리 날아
오르려는 군산의 힘찬 날갯짓을 보았다. 

일제의 잔재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근대문화유산이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아직까지도 분분하지만, 이는 어떻게 가꾸고 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진다. 잔재라고 한다면 일찍이 이를 떨쳐내지 못한 이들을 비난해야 마땅할 것이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생각한다면 보전을 해줄 일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 돌아보건대, 일제 당시 수탈의 최전방에서 영화와 쇠락의 길을 동시에 거친 군산의 옛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고마운 일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한 번 보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할 수 있는 군산으로 1박 2일 근대문화유산 답사를 다녀왔다.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은파유원지.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과거로 회귀하다
적산가옥과 일본관청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문화유산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군산의 대표 이미지다. 그 수가 방대한 만큼 곳곳에서 이들 유적을 발견하는 재미가 꽤나 크다. 현재까지 개방되는 곳이 많아 1박 2일 여정이면 주요 문화재는 둘러볼 수 있는데, 그중 첫째 날은 근대문화유산, 그 가운데서도 시대를 대표할 만한 곳들을 선별해 동선을 구성했다. 

첫 목적지인 발산리유적지는 서해안고속국도 동군산IC로 나가는 것이 가깝다. 시마타니금고로도 알려진 발산리유적지는 발산초등학교 뒤편에 자리한다. 지금은 학교가 있지만 1900년대 초중반 당시 시마타니 야소야라는 일본인 대지주의 저택이 있었던 곳이다. 뒤로 돌아가 보니 기가 막힌다. 사찰이나 능에서 마구 가져온 석탑과 석등으로 꾸며진 정원이 나온다. 문화예술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시마타니는 1903년부터 군산에 살면서 전국 각지에서 닥치는 대로 예술품을 모았는데, 이들을 따로 보관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금고가 바로 ‘시마타니금고’다. 이 정도만 보더라도 시마타니가 아예 한국에 눌러 살 작정이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원영금 문화관광해설사는 설명한다.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발신라유적지.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동국사.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쌍용반점 짬뽕. 해물이 가득 올려져 있다.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가까운 곳에는 이영춘 가옥이 있는데,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영춘 박사가 살던 집으로 본래는 구마모토 리헤이라는 지주의 별장이었던 곳. 당시 2만호의 소작인을 두고 있던 구마모토는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병원이 필요했고 이영춘 박사를 촉탁의사로 영입을 했다. 1934년 세브란스의전에 근무하던 이영춘은 한국인 교수의 지도만으로 유학을 가지 않고 교토제국대학의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다. 군산에 내려온 이 박사는 구마모토의 지원을 약속받고 주민들의 위생과 교육 등 예방에 큰 힘을 쏟았다고 하는데, 당시 개정면 소작인들의 건강 상태가 일본 본토보다 좋았을 정도라고 하니 그가 얼마만큼 노력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광복 후에도 군산에 남아 농촌연구소를 설립해 후진 양성에 애를 썼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한 인물로 기억된다. 구마모토가 일본으로 간 뒤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 살고 있다. 비싼 수입자재를 사용해 조선총독부 관저에 맞먹는 건축비를 들인 곳으로 기록된다.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히로쓰 가옥.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구 조선 은행 군산지점.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한편 공공기관과 은행 등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군산항 내항 부근이다.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쌀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고 1934년 당시 군산항은 전국 최고의 쌀 수출기지가 된다. 그때 군산 일대에서 1년간 생산된 쌀이 158만 석이었고 군산항을 통해 반출된 쌀이 200만 석이 넘었다고 하는데, 이는 다른 지역의 쌀도 군산항을 통해 팔렸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군산항은 쌀 하나만으로도 연일 북새통을 이루었고 항구를 중심으로 은행과 세관 등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지금까지 부잔교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구 군산세관 등이 남아 있다.  당시 전국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고 하는데, 고된 노동과 차별 대우 탓에 ‘조선인에게는 지옥, 일본인에게는 천국’이라는 소리가 생겨난 곳도 바로 이곳 군산항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준설선이 나오던 곳이기도 하다. 구 조선은행은 당시 경성 이외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건물로 군산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케 한다. 적벽돌과 동판 지붕, 자연채광창을 갖추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안타깝다. 나이트클럽이었다, 노래방이었다가 현재는 비어 있는 상태. 그 어느 곳보다도 복원이나 관리가 시급한 곳이다. 

구 조선은행을 중심으로 주변은 나가사키 십팔은행, 식산은행 등이 들어선 은행가(街)였던 동시에 최대 번화가였다. 구 군산세관도 가깝다. 구 군산세관은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과 비슷한 양식을 보이는 곳으로 1908년부터 1993년까지 세관 청사로 사용되었다. 현재 내부는 옛 군산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관련 자료를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금강하구둑의 모습. 군산과 서천을 가로지른다.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상상을 초월하는 일본식 가옥
점심식사는 동죽이 듬뿍 들어간 짬뽕이다. 수산물이 유명한지라 짬뽕도 예사롭지가 않다. 구 군산세관 부근에 자리한 쌍용반점은 벌써 한자리에서만 30년 넘게 짬뽕을 팔고 있는 군산에서도 꽤 유명한 곳. 중국요릿집이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짬뽕이다. 조개가 많이 들어가 시원한 맛이 그만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찾은 곳은 월명산 자락에 자리한 해망동과 해망굴. 월명산을 뒤에 두고 내항이 바라보이는 산비탈의 작은 동네다. 지난해 ‘천야해일’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던 곳으로 지금 사람들에게는 그저 운치 있고 독특한 산동네로 보이지만 오밀조밀 자리한 수십 채의 집엔 일제와 한국전쟁의 애환이 남아 있다. ‘천야해일’이라는 이름은 군산의 옛 애칭이기도 한데, ‘하늘은 밤이고 바다는 낮’이라는 뜻. 한밤중에도 고깃배들로 해가 뜬 것처럼 훤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금강철새조망대.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2007년 9월. 사진 / 여행스케치
비웅도 풍력발전단지 풍경. 2007년 9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바로 아래에는 해망굴이 자리하는데 주변 분위기만 봐도 수십 년은 거슬러간 듯한 느낌이다. 진짜 굴이 아니라 1926년 개통된 터널로 당시로서는 최고의 건축기술이 선보여진 곳. 일본인들의 주거지와 수산업기지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해망굴 일대에 적산가옥과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모여 있다. 아파트만 아니라면 일본의 작은 동네를 걷는 듯하다.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와 일본 전통 가옥인 히로쓰 가옥이 있다.

히로쓰 가옥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혼마찌 야쿠자 하야시의 집으로 알려진 곳으로 포목업으로 큰돈을 번 히로쓰의 집이었다.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지금은 관리인만 살고 있다. 담장에 바짝 붙어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집으로 역시 곳곳에서 가져온 우리 문화재로 정원을 꾸몄다. 현재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렇지 야외수영장까지 갖춘 엄청난 규모다. 

저녁에 찾은 곳은 군산시민들의 휴식처인 은파유원지다. 지난해 가을 공개된 물빛다리와 음악분수가 압권으로 하루를 기분 좋게 마칠 수 있게 해주는 더없이 좋은 장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