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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국도여행] 포항 호미곶 925번 지방도 겨울 바다의 낭만, 호랑이 꼬리로 가면 다 있다
[국도여행] 포항 호미곶 925번 지방도 겨울 바다의 낭만, 호랑이 꼬리로 가면 다 있다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7.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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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포항 호미곶 상생의 손.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포항] 12월과 1월, 우리나라 그 어느 곳보다도 분주해지는 곳이 바로 호미곶이다. 대표적인 일출·일몰 여행지로 알려진 탓이다. 지도를 꺼내 놓고 보면 태백산맥이 우리나라의 등뼈라면 포항 호미곶은 호랑이를 닮은 우리나라의 꼬리에 해당한다. 이 꼬리를 살살 에두르며 갈 수 있는 해안길이 바로 925번 지방도이다. 

호미곶 일주의 출발점으로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즉 구룡포에서 대보를 거쳐 동해면으로 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이렇게 가야 바깥 차선을 타고 바다를 잘 볼 수 있다. 작은 차이지만 막상 달리다보면 절벽 아래 절경을 보느냐 놓치느냐의 차이가 크다.

31번 국도에서 925번 지방도를 갈아타면 곧바로 구룡포읍이다. 겨울 바닷바람에 몸을 말리는 오징어와 과메기 형제들의 속살이 탐스럽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한창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어부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바다를 앞마당 삼아 사는 마을.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구룡포는 동해 남부 어항의 집결지로 수많은 어선들이 출항과 회항을 하는 전초기지와 같은 곳이다. 그래서 구룡포의 새벽은 뱃사람들로 인해 활기가 넘친다. 경매에서는 주로 대게가 거래된다. 포항은 대게가 많이 나는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덕 대게, 울진 대게만을 기억한다. 사실 알고 보면 영덕 대게, 울진 대게도 이곳에서 사가는 것들이다. 그 속내야 정확히 알 수 없고, 또한 외지인들이 뭐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덮어두기로 하자. 

구룡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해안 드라이브가 시작된다. 길가로는 꽁치와 오징어가 바람에 몸을 말리고 있다. 머지 않아 꽁치는 과메기가 되고, 오징어는 피데기가 될 것이다. 겨울의 한적한 풍경이건만 바다를 맞대고 사는 사람들의 손길은 여전히 분주하다. 그물을 손질하는 할아버지와 오징어를 건조대에 거는 할머니, 배를 손보는 청년의 손길엔 여유가 없다. 다만 이 순간 여유가 있는 것이라면 한껏 아침에 일출 사진 모델을 서준 후 잠시 갯바위 위에서 날개를 쉬고 있는 갈매기 떼뿐이리라.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대보 앞바다의 작은 등대.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구룡포 읍내에서 호미곶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아낙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겨울이라고 쉴 틈이 있나? 여름엔 여름 괴기 잡고 겨울엔 겨울 괴기 잡아야지. 글고 괴기만 잡아서 묵고사나 어디? 멍게도 키우고 미역도 따고 캐야지.”

부인과 함께 그물을 손질하던 하종학 씨는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목소리에선 꽤나 여유가 묻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저 한쪽 길게 걸어놓은 오징어들이 모두 하씨 내외의 것이니 조금은 여유를 부려도 좋을 듯싶다.

길 중간에 삐져나와 있는 골목길로 차를 돌려본다. 어촌 에는 대부분 골목길이 있어 그곳으로 가면 바다와 바로 맞닿은 해안 길을 찾을 수 있다. 가끔은 들어간 길 그대로 후진해서 나와야 하는 낭패도 있지만…. 

그렇게 숨바꼭질을 하며 길을 달리다 우연찮게 동쪽 땅끝마을이란 곳을 찾게 된다. 남쪽 땅끝이 해남이라는 건익히 알고 있지만 서쪽이나 동쪽의 땅끝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땅끝에는 커다란 가두리양식장이 있고 그 뒤쪽에 있는 갯바위 위에 동쪽땅끝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29도 33분 10초’.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지점의 공식적인 경도다. 가장 먼저 바다와 부딪히는 곳이기에 파도 또한 거세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겨울바람에 오징어가 휘날리며 피데기로 말라가고 있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이맘때가 되면 마을 아낙의 반은 과메기를 말리고 반은 피데기 오징어를 다듬으며 생계를 이어간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이윽고 호미곶에 닿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인 호미곶은 이 시기만 되면 일출여행지 후보 일순위로 꼽힌다. 호미곶의 예전 이름은 장기곶이었는데, 원래 생김새가 말갈기와 같다 하여 그렇게 불렸으나, 민족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호랑이 꼬리’라는 의미의 호미곶으로 2001년 12월, 공식 변경했다. 

지금은 일출여행지로, 등대박물관이 있는 관광지로 언제나 활기찬 모습이지만,  호미곶은 역사적으로는 비운의 땅이었다. ‘호랑이 꼬리’가 모두 ‘장기현’이라고 불리던 조선시대, 그때 장기는 나라에 필요한 말들을 기르는 목장이 있었을 뿐 풍토가 사납고 거칠었다.
지금도 있는 ‘구만리’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한양의 정치세력들에겐 구만리처럼 멀리 느껴지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이 변방은 모든 사람들이 꺼리는 ‘공포의 장소’였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이 시대에 장기반도는 ‘유배지’였기 때문이다. 흔히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라고 하면 강진을 떠올린다. 하지만 선생이 18년의 긴 유배생활을 시작한 곳이 바로 여기 장기현이다. 또한 호미곶은 3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시체가 버려진 곳이기도 하다.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도피했던 김옥균은 1894년 상하이에서 자객 홍종우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 시체를 국내로 가져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을 시켜 전국에 효시했고, 그중 그의 왼팔이 장기곶 앞바다에 버려졌다. 

이처럼 세찬 바람과 파도만큼 역사의 굴곡도 모진 곳이 바로 지금의 호미곶이다. 하지만 과거는 그렇다 치고 지금 이 시대의 호미곶은 낭만과 추억을 담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까꾸리게 마을의독수리바위는 아는 사람들만 찾는 숨은 명소이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한반도 동쪽 끝을 알리는 기념비.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호미곶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소는 해맞이광장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소는 바다와 육지에 쑥 나와 있는 ‘상생의 손’이다. 동해 일출 중에서도 상생의 손 위로 뜨는 일출 광경은 장관으로 꼽힌다. 중절모 눌러쓴 할아버지도 담배 한 개비만 물고 사진을 찍으면 ‘낭만의 마도로스’가 된다.

해맞이공원 근체엔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큰 등대에서부터 암초에 심어져 있는 등표까지 박물관에서는 등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등대원 생활관은 가장 ‘짠한’ 곳이다. 교통선이 오지 않아 식량이 떨어지면 둥굴레 뿌리로 연명하던 참담함, 아기 엄마였던 아내가 영양실조로 젖이 안 나와 갓난아기가 울어댔을 때의 안타까움, 절해고도에서 느끼는 외로움 등 한 인간으로서 겪는 등대원의 애환을 그들이 남긴 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호미곶에서 나와 다시 길을 오른다. 이때는 925번 지방도로 오르지 말고 (좀 찾기는 힘들겠지만) 까꾸리계(鉤浦溪)로 가는 마을길로 가길 권한다. 호미곶 등대에서 나와 바닷가 선착장을 지나는 마을길을 따라가면 까꾸리계 마을이다. 호랑이 꼬리 중에서도 가장 끝부분에 속하는 이곳 일대는 바람과 파도가 세다. 그래서 이곳 대보 사람들 사이에선 ‘된밥 먹고 구만바람 쐬지 마라’는 말이 있다. 바람에 날려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까꾸리계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바람이 몰아치면 파도가 일고 이 파도에 바다 속의 청어 같은 물고기들이 쓸려 나오면 까꾸리(갈퀴의 사투리)로 그러담을 정도로 고기가 많았던 데서 비롯된 지명이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저 멀리 포스코 건물은 밤이면 오색찬란한 불빛을 낸다.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올해로 불이 켜진 지 100년이 되는 호미곶등대. 2007년 12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이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놓은 작품이 바로 ‘독수리바위’이다. 낮은 갯바위들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바위의 모습이 영락없이 비상하는 독수리를 빼다 박았다. 풍파(風波)라는 자연조각가가 멋들어지게 깎은 예술작품이다. 해질녘 독수리 부리에 걸리는 낙조는 아무에게나 말해주는 풍광이 아니다. 독수리바위에서 저 멀리 바다 쪽으로 시선을 향하면 바다 위에 뜬금없이 우뚝 서 있는 등표 하나가 거센 파도를 받으며 홀로 길을 비추고 있다.  

까꾸리계 마을에서 다시 925번 지방도를 타고 올라오면 길이 조금 더 험해지는데, 여기서부터는 해안 길의 풍광에 산길의 풍광이 더해진다. 고갯길은 숨이 끊어지듯 이어지면서 한없이 넓게 펼쳐지는 바다를 보여준다. 저 멀리 영일만 반대편에서는 포스코의 스카이라인이 함께 길을 따른다.  

925번 지방도는 겨울에 가장 어울리는 드라이브 코스다. 맏형격인 7번 국도에 비하면 훨씬 좁고 짧은 여정이지만 그래서 더욱 소박하고 낭만이 있다. 더구나 새해의 시작인 1월, 마음을 새롭게 하고 각오를 다지기 위한다면 더더욱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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