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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책 따라 떠난 가을 문학 여행] 허생원과 함께 메밀밭을 걷다 강원도 봉평 효석문화마을
[책 따라 떠난 가을 문학 여행] 허생원과 함께 메밀밭을 걷다 강원도 봉평 효석문화마을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4.09.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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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봉평]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는 10월. 짙어지는 가을색이 어디든 떠나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마음이 동한다면 새하얀 메밀꽃으로 물든 봉평 효석문화마을로 발걸음을 내딛는 건 어떨까.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이효석의 문향(文香)을 길동무삼아 느리게 걷는 법을 배워보자.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효석문화마을은 가산 이효석이 태어나 자란 곳이자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다. 1930년대 최고의 작가라 일컫는 이효석의 흔적은 봉평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서정미와 시적인 표현이 녹아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향기도 가을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봉평에서 이 모든 것을 만끽하고 싶다면 잰걸음을 멈추고 타박타박 천천히 걷는 게 답이다.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소설 속에서 허생원과 성씨 처녀가 사랑을 나눈 물레방앗간.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장돌뱅이 따라 느리게 걷기

여정은 허생원, 동이, 나귀 조형물이 여행객을 맞이하는 봉평장터에서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 나귀와 함께 전국을 떠돌던 장돌뱅이 허생원도 이곳만큼은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들렀다. 우연히 하룻밤을 보낸 성씨 처녀를 혹시라도 다시 마주칠 수 있을까란 기대감 때문이었을 게다. 봉평장터는 2일과 7일에 오일장을 연다.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싹나물 비빔밥, 올챙이국수 등 다채로운 먹을거리가 미각을 즐겁게 하고, 골동품을 내다놓은 상인의 모습도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닭 울음소리, 어미젖을 갓 땐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소리, 물건 값을 흥정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던 그 옛날 장터의 분위기와는 다르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 드는 건 부정할 수 없다.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이효석문학관 문학정원에 자리한 이효석 동상.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봉평장터를 벗어나면 이효석의 흉상이 있는 가산공원이 나온다.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조성한 가산공원 옆에는 충주집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봉평장터 입구에 있었지만 예전 터에는 표지석을 세우고 공원 내에 복원했다. 충주집 앞에 서니 시끌벅적한 주막에 앉은 장돌뱅이들이 교태를 부리는 주모가 내온 탁주를 게걸스레 들이켜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그 사이로 충주집 아낙과 농탕치던 동이가 허생원에게 따귀를 맞는 모습도 오버랩된다.

가산공원을 나오면 소설 속에서 동이가 물에 빠진 허생원을 업고 건넌 흥정천과 마주한다. 소설 속 공간적 배경인 이곳을 지나 곧장 걷다보면 평창군 종합관광안내센터 우측으로 허생원과 성씨 처녀가 사랑을 나눈 물레방앗간이 나타난다. 한밤에 일어나 멱을 감던 허생원이 봉평 제일의 일색이었던 성씨 처녀를 우연히 만나 무섭고도 기막힌 밤을 보낸 그곳이다.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이효석문학관 정문 천장을 올려다보면 볼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대표적 구절.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해마다 가을이면 물레방앗간 일대부터 흐드러진 메밀꽃은 봉평의 들판을 어김없이 뒤덮는다. 봉평에서 나고 자란 이효석이 새하얀 메밀꽃의 장관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을 터. 그는 메밀꽃의 황홀경을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고스란히 녹여 넣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굵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란 대목이 바로 그것.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밤길 묘사라고 칭송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이효석의 흔적을 더듬다
‘여행 중에 보고 듣고 생각했던 일들은 그대로 생활의 진폭을 넓히고 사상의 씨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척한 겨울여행도 또한 즐거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이효석은 수필 <겨울 여행>에서 이처럼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여행을 새로운 체험으로 여기며 생활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생각했다. 남미라 문화관광해설사는 “이효석은 관동지방과 동해안 여행을 선호했고, 서부유럽을 여행하고픈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만약 36세에 요절하지 않고 서부유럽 여행에 대한 소망을 이뤘다면 주옥같은 작품은 더 쏟아지지 않았을까.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어쨌든 여행을 통해 익힌 감성이 모조리 스며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작품 세계를 비롯해 인간 이효석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곳이 이효석문학관이다. 허생원의 잊지 못할 추억이 묻어있는 물레방앗간에서 나무 데크길을 따라 300m를 걸어가면 이효석문학관 입구와 만난다.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가을의 감흥이 고요하게 내려앉은 듯한 문학정원에서 책상에 앉은 이효석 동상이 여행객을 반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꾸며진 문학전시실은 이효석의 유품과 초간본 등을 소장하고 있어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의 흔적을 더듬기에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이효석문학관을 나와 사방으로 널린 메밀꽃밭을 한눈에 담고 그윽한 내음에 취해 걷다보면 이효석생가에 닿는다. 이곳에서 약 700m 떨어진 곳에 생가터가 위치하고 있지만 이효석 출생 당시의 모습은 잃어버린 상태다. 더욱이 현재 개인 소유지로 부지 확보가 어려워 지역 원로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부득이하게 복원한 것이 이효석생가다.

생가 뒤편에는 이효석이 평양에서 머물렀던 푸른집이 복원돼 있다. 빨간 지붕과 벽돌로 이뤄져 있어 ‘붉은집’으로 보는 게 맞겠지만 푸른 담쟁이넝쿨이 외벽을 온통 덮고 있어 푸른집으로 불리게 됐다. 이효석은 푸른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이 무렵 <메밀꽃 필 무렵>을 세상에 내놨다. 아마도 이효석은 평양의 푸른집에 기거하는 동안 봉평의 기억을 꺼내 작품에 담아냈을 것이다. 바람결에 흩날린 황홀한 메밀향을 따라 자신이 걸었던 길을 떠올리며 말이다. 여행의 마침표는 짧은 생을 살다 간 이효석이 행복의 절정을 이뤘던 푸른집에서 찍었지만, 봉평의 가을빛 풍광과 그윽한 메밀향은 가슴 한구석에 온전히 남았다.

INFO. 효석문화마을 안내도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이효석 문학의 숲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속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한 곳. 500m의 소설길과 2.7km 등산로로 조성됐다. 장터, 충주집, 물레방앗간 등 소설 속 배경은 물론 허생원, 동이, 성씨 처녀 등 등장인물 모형이 숲속을 걷는 내내 즐거움을 선사한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바위에 새겨진 소설 속 구절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효석문학100리길
이효석이 평창초등학교를 다니던 옛길인 봉평면에서 평창읍까지 53km의 길을 정비·복원했다. 곳곳에 설치된 QR코드를 통해 <메밀꽃 필 무렵>을 영화로 감상하거나 내레이션으로 들을 수도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인 허생원과 동이의 여정을 좇아갈 수 있는 구간은 제1구간인 문학의 길이다. 흥정천을 따라 걷다보면 마치 소설 속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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