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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시골 장터 기행] “아직도 다 몬 팔았나, 내는 다 팔았는데” “이 할마씨가 지금 누구 약 올리나” 경북 영해오일장
[시골 장터 기행] “아직도 다 몬 팔았나, 내는 다 팔았는데” “이 할마씨가 지금 누구 약 올리나” 경북 영해오일장
  • 전설 기자
  • 승인 2014.11.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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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영해] 장날 하루 전, 영해터미널에 도착했다. 느긋하게 하룻밤 머물렀다가 매월 5, 10일 열리는 영해오일장 구경에 나설 참이다. 시간도 때울 겸 자그마한 방앗간, 철물점, 담뱃가게가 오밀조밀 모인 읍내를 둘러볼 때는 몰랐다. 이토록 조용한 동네가 장날마다 어떻게 변하는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골목마다 장사진을 치고 있다. 간밤에 텅 비어 있던 시장 입구의 방앗간과 철물점 앞은 이미 정원초과. 물건을 내놓고 흥정하는 소리가 마구 섞여 들려오니 혼이 쏙 빠진다. 어제는 사람 구경하기도 어렵더니, 어디 숨었다가 이렇게 한꺼번에 나오셨나.


“나는 이짝 원구마을에서 나왔고 여기 양반은 위짝 신기마을서 왔고. 평소에 집에서 팔 거 쟁겨 놓고 있다가 장날 나와서 팔아 묵지. 시골 할마씨들은 다 그렇게 살어. 한번 씩 나와서 팔 거 팔고 살 거 사고. 말 다했응께 우리 집에서 딴 단감이나 한 봉다리 사 가.”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아케이드 지붕을 올린 영해관광시장 중앙. 그 위아래 양옆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난전이 펼쳐진다.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알록달록 파라솔 밑에는 집에서 딴 텃밭 농작물이 한 아름.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영해면 원구리에서 원정을 나온 김영혜 할머니가 단감 한소쿠리를 ‘박카스 봉지’에 담아 주신다. 엉겁결에 받아드는데 얼마냐고 대꾸할 틈 없이 단감 한 조각이 입에 들어온다. “봐라. 뭘 사든 맛을 보고 사야지. 우리 단감은 딴딴하니 맛있어서 오래뒀다 먹어도 괜찮여. 까마귀가 쪼사뿐 건 다 내삐고 빤질빤질 이쁜 놈만 담았으니께 집에 가서 맛있게 들어.” 2000원 어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묵직하다. 값을 치르고 산 것이 아니라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단 것, 맛난 것 양손 묵직하게 챙겨 나올 때의 딱 그런 무게감이다.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손난로 겸 간식 겸 들고 다니며 먹기 좋은 국화빵.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난전의 행렬은 아케이드 지붕이 놓인 영해시장 중앙까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보따리와 바구니 색은 다 달라도 내놓은 물건은 대개 단감, 대추, 가지, 늙은 호박, 무말랭이 같은 집에서 키운 농작물이다. 그중 어른의 허벅다리만큼 굵은 수세미가 눈에 들어온다.

“이기 내가 키운 수세미인데 이걸 말리가꼬 운동화나 발 사이즈대로 딱 오려. 그걸 구두 신을 적에 신발 안에 깔면 발 냄새도 안 나고 푹신푹신해가 오래 걸어도 아프지도 않고 참 좋아. 거짓말인가 싶으면 내가 하나 오리줄 테니께 신 줘 봐. 좋은지 안 좋은지 봐야 알지.”

조금만 신기하다 싶어 멈춰 서면 집에서 키운 실한 농작물에 마음이 혹하고, 삶의 지혜를 일러주는 어르신의 재미난 입담에 반해 지갑이 열린다. 고성일 할아버지가 손수 오려준 수세미 깔창은 한 쌍에 3000원. 폭신한 감촉이 좋아 값을 치렀더니 설거지할 때 쓰라며 말린 수세미 서너 장을 더 챙겨주신다. 어째 산 것보다 덤으로 받은 것이 더 크다.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팔 것 다 팔고 난 다음에는 살 것 사서 다시 집으로. 2014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장터를 한 바퀴 돌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장사는 이미 뒷전인 장사꾼들이 많다는 것. 좋은 목을 찾아 새벽부터 나왔을 텐데, 목청껏 호객하는 사람보다 삼삼오오 모여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떠는 사람이 더 많다. 궁금했던 윗마을 아랫마을 사정을 묻고 답하느라 말소리가 한데 겹친다. 그러다 장터 한복판에서 별안간 쇳소리가 난다. 싸움이라도 붙었나 싶어 들여다보니 할머니 두 분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계신다. “아직도 다 몬 팔았나, 내는 다 팔아서 벌써 집에 간다” 하는 야속한 놀림에 “이 할마씨가 지금 누구 약 올리나. 퍼뜩 가기나 해라” 할머니 한 분이 빽빽 소리를 지른다. 놀란 마음에 들여다보다 슬쩍 미소 짓게 되는 경북 영해오일장의 오후 풍경. 볕이 참 따습다.

특산품 텃밭 농작물, 동해안 해산물
날짜 매월 5, 10일 

주소 영덕군 영해면 예주시장6길 15

고한오일장에서 만난 사람
대추 할머니

아니, 도대체 이름을 왜 안 알려주세요?
다 쭈그렁 빠진 할매 이름은 왜 자꾸 묻노. 그냥 대추 할머니라꼬 하면 알 사람 다 안다. 사진은 왜 자꾸 찍노. 치야라. 고마 추잡시라워서 안 찍을란다.

대추를 많이 팔아서 대추 할머니인가요?
집에 대추나무도 큰 놈이 있고 캐서 글케 부르제. 봐라. 오늘도 대추 안 가꼬 왔나. 대추는 벌건 놈이 질로 좋은 기다. 퍼런 거 사면 볕 좋은 데 말리야 되는데 아파트 살면서 어데다 말리노. 식구들 많지 않으면 그냥 한 되 사다가 쭈글기 전에 후딱 묵는 게 좋다.

대추도 밤도 모두 할머니가 딴 거예요?
그럼 내가 따지 누가 따준다 카드나. 밤은 우리 집 뒷산, 대추는 집 마당에 여문 놈으로 가지고 온기다. 시집 안갔제? 산밤은 처녀가 못 묵는다. 약을 안 치가꼬 벌레가 많아. 여 거믓한 구멍 보이제? 밤 살 땐 구멍이 있나 없나 잘 살피보고 없는 놈으로 골라야 돈 안버린다.

오늘의 장사 목표 매출은 얼마인가요?
이 무거운 걸 다 짊어지고 왔는데 많이는 못 팔아도 남아서 도로 가져가진 않아야 않긋나. 제값 받고만 팔면 5만원도 나올낀데 오늘 하는 걸 보니께 반도 팔기 힘들겠다. 그러니까 언능 비키라 마. 할매도 장사를 해야 집에 갈 거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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