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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일출여행] 비행기 일출 합천 오도산  아는 사람들만 타는  오도산 일출  비행기
[일출여행] 비행기 일출 합천 오도산  아는 사람들만 타는  오도산 일출  비행기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8.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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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합천 오도산에서 바라본 일출.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합천] ‘합천’하면 해인사나 합천댐 정도만 알았지, 일출을 볼 수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바닷가도 아니요,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특별히 높은 산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합천에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 모여드는 ‘비밀의 장소’가 있단다. 소문을 듣고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비밀의 장소를 다녀왔다. 

이 비밀의 장소로 가기 위해선 우선 합천으로 가야 한다. 워낙 아는 사람이 없는지라 내비게이션을 콕 찍어 목적지를 설정해놓지 않고 지도만 보고 찾으려면 꽤 머리가 아프다. 일단 합천군 묘산면으로 간다. 

묘산면은 딱 시골 동네다. 겨우 저녁 6시 조금 넘긴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요기할 만한 식당은 문을 죄다 닫아버렸다. 시골의 밤은 그렇게 일찍 시작된다. 다행히 작은 마트를 찾아 빵이며 우유, 과자 등 식사를 대신할 주전부리들을 샀다. 

비행기 일출은 합천 오도산 정상에서 보는 일출을 말한다. 오도산은 해발 1134m로 주변의 가야산(1430m)이나 덕유산(1254m)만큼은 못해도 이 일대에선 가장 높은 산이다. 다행히 오도산 정상은 ‘날로 먹을 수’ 있다. 통신탑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정상까지 12km 되는 등산길을 힘 하나 안 들이고 차로 갈 수 있다.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합천호 덕분에 일출 후에는 신비로운 모습의 운무를 볼 수 있다.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1982년 통신탑이 세워지고 길이 닦이기 전까지만 해도 오도산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1962년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야생 표범이 잡힌 곳도 바로 오도산이다. 지금은 길이 닦였다고 하나 역시 무엇이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오도산은 깊다. 

묘산읍에서 시간을 보내다 좀 늦게 정상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딱히 갈 곳도, 할 일도 없어 이른 저녁에 정상에 도착해 차에서 잠을 청하기로 한다. 새벽에 올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은근히 일출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주민의 말에 길이라도 막히면 어쩌나 조바심이 나는 터라 일찍 올라 자리부터 잡기로 한 것이다. 

길의 길이는 약 12km. 오도산 중턱의 가야마을을 지나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답게 경사는 물론, 급커브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하지만 걸어서 올라가지 않는 것이 어딘가. 오직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의지해서 올라가는 길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다.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참을 올라가는데 앞에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갑자기 휙 지나간다. 화들짝 놀라 핸들을 놓는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버렸다. 일촉즉발. 동물적인 감각으로 다시 브레이크를 밟아 겨우 낭떠러지 앞에서 멈췄다.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일출 감상 포인트인 기념비.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붉은 일출을 바라보는 등산객.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나도 모르게 터지는 육두문자.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작은 개만한 토끼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동물원에서 뛰어 다녔으면 귀여움 받을 녀석이 괜히 여기서 돌아다니다 애꿎게 욕만 먹는다. 

30여 분을 달려 통신탑에 도착한다. 더 이상 올라갈 길이 없어 차를 세우고 요기를 한다. 산 아래는 칠흑 같은 어둠이다. 마을 가로등 불빛만이 점처럼 켜져 있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빛이 더 밝다. 도시에서는 결코 구경할 수 없는 ‘반짝반짝 작은 별’들이다. 

대충 내일 카메라를 설치할 자리를 봐두고 잠을 청한다. 어두워서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지만 이곳이 정상은 정상인가보다.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대로 차에 부딪혀 들썩거린다. 이러다 통째로 날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밖으로 나간다. 바깥은 해 뜨기 30분 전, ‘시민박명(해가 지고 나서 약 30분까지, 또는 해가 뜨기 전 약 30분간을 일컫는다. 해는 지평선 아래에 있지만 대기에 의한 태양빛의 산란 때문에 인공적인 조명 없이 인간이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이 밝은 상태)’ 시간이라 어슴푸레 빛이 난다. 

일출을 찍는 포인트는 통신탑 정문 가기 전의 일출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발밑에서 필름통이 굴러 다니는 걸 보면 대충 감이 온다. 바람에 삼각대가 날아가지 않게 땅에 잘 박아놓는다. 이제 밝은 해가 잘 뜨기만을 바랄 뿐이다.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오도산 중턱에 살포시 내려앉은 가야마을의 아침.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해가 점점 올라오는 기분이 든다. 하늘과 산을 딱 절반으로 나눈 지평선이 조금씩 주황색으로 물들더니 칠흑의 땅, 검푸른 하늘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옆으로 번져나간다. 손과 발이 바빠진다. 

하늘의 별빛이 조금씩 사라지며 이제껏 감춰놨던 산봉우리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니 수십 개의 봉우리와 커다란 호수가 발 아래 떠 있다. 바로 이 모습이 사진가들을 끌어들인 것이리라. 서쪽으로는 덕유산, 기백산, 백운산 같은 백두대간의 준령들이 성벽을 이룬다. 북쪽에는 가야산이, 남쪽은 황매산이 좌청룡 우백호처럼 기세등등하게 서 있다. 

드디어 주황색의 띠 안에서 둥근 물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태양이다. 이제껏 수많은 일출을 봤지만 이번엔 뭔가 다르다. 지평선 아래 무엇 하나도 지금 서 있는 자리보다 높은 곳이 없다. 역시 비행기 일출이라 불릴 만하다. 순식간에 뜨는 해의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장엄하게 피어난 태양은 그렇게 작은 카메라 속에 간직된다. 

어느새 해가 지평선 훨씬 위에 걸려버렸다. 지평선에 걸렸던 주황색 띠도 사라졌다. 세상은 그 모습을 모조리 드러내고야 만다.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밤새 물방울로 밤을 지냈을 수증기들이 낮은 구름처럼 운무를 만든다.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 같은 곳은 합천호다. 이런 모습들이 마치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만 같아 다시금 비행기 일출이란 말을 실감한다.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정상에 있는 통신 중계소는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중계소 가는 길엔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배곡하게 들어서있다. 2008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은 후 밤에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온다. 그러고 보니 숲이 꽤 울창하다. 소나무며 전나무, 각종 나무들이 원시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며 길 주위를 감싸고 있다. 산 밑으로 펼쳐진 작은 마을에선 딸딸거리며 일터로 나가는 경운기의 모습이 푸근하다. 산 중턱 가야마을의 어느 집은 아직도 군불을 때서 밥을 하는지 굴뚝에선 뽀얀 연기가 퐁퐁퐁 새어나온다. 젖소들이 잠에서 깨어 낯선 객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너도 사진 찍고 왔냐? 낯빛 참 거시기하구나’라고 말하는 듯하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멍한 탓에 그 젖소 녀석들을 보며 히죽 웃어주었다. ‘니들이 비행기 일출을 알아?’ 괜한 뿌듯함에 히죽거리며 젖소들을 보며 중얼거리는 게 바보 같아 보여 얼른 창을 올리고 마을을 빠져나오지만, 그래도 계속 히죽거리는 얼굴을 바꾸기가 어렵다. 

정작 비행기 안에서 한 번도 일출을 본 적이 없지만 누가 물어보면 나는 비행기 일출의 장엄한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보았다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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