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여수] 2012 세계엑스포 유치 성공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여수. 이 즈음하여 여수에 다녀오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다. 그냥 한번 휙 둘러보면 평범한 해안도시에 지나지 않지만 구석구석 찾아가다보면 그야말로 보고 먹고, 할 것들이 ‘겁나게’ 많은 곳이 바로 여수(麗水)다. 이름처럼 맑고 고운 물이 흐르는 청정해역의 땅, 여수에서 보낸 알토란 같은 1박 2일 여정.
한동안 뉴스에서 여수라는 이름을 수도 없이 들은 까닭일까, 왠지 여수에 꼭 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수시민뿐만 아니라 국민의 바람이던 세계박람회 유치가 결정되고 지금 세계가 여수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꼭 세계박람회와 연관 짓지 않더라도 여수는 여행과 접목시킬 만한 훌륭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곳이다.
2개의 해상국립공원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여수 하면 향일암이나 돌산 갓김치, 돌산대교 정도만 떠올리지만 실제 여수에 하루 이틀 머물다보면 집에 가기가 싫어질 정도라고 말하곤 한다. 갈 때는 길이 멀게 느껴져도 막상 돌아갈 시간이 되면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곳이 바로 여수라는 얘기다.
첫날 일정은 오동도를 시작으로 2012 세계박람회홍보관과 하멜공원 진남관, 수산시상을 지나 해넘이 명소인 돌산공원에서 마무리하는 일정으로 잡아봤다. 보기엔 다소 빡빡한 일정이지만 서로 가까이 있어 무리가 없다.
오동도는 숲과 바다는 물론, 동백과 털머위, 팔손이 등 희귀식물을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만 지금의 이슈는 단연 엑스포다. 바로 세계엑스포 부지가 오동도 앞바다에 조성되기 때문. 머지않아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라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이들의 발길도 잦다. 여수시청 관광진흥과 서현호 씨에 따르면 “앞으로 KTX가 개통되면 서울에서 3시간 대에 닿을 수 있고 역에서 엑스포 행사장까지는 철로가 놓이는 등 특별 교통수단이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또 순천까지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개통되어 주변 지역 연계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 전한다.
#1st day 자연 조성된 해양공원에서 음이온 충전
오동도에는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오동도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다. 방파제를 오가는 동백열차가 수시로 운행되고 있으니 시간이 없거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동백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오동도는 일제시대 당시 수탈을 위한 신항구기지를 보호하고자 방파제를 쌓은 것이 오늘날 모습의 시초다. 지금은 여수를 대표하는 관광자원이지만 아픈 역사가 그 시작이었던 것이다. 지난 1968년 이 일대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바다와 육지가 연결된 곳으로 기록되고 있다.
오동도를 돌아보는 방법은 두 가지. 방파제 끝부분에서 연결되는 산책로를 따라 오르거나 안쪽에 있는 맨발공원을 따라 올라오는 방법이다. 두 코스 모두 시작점만 다를 뿐 같은 길이지만 이왕이면 맨발공원에서 산책을 시작하는 오동도를 보다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동백숲을 비롯해 신이대숲이 자연 조성되어 있어 한겨울에도 계절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숲의 음이온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음이온을 풍부해 다른 곳보다도 산책할 ‘맛’이 난다.
오동도 가는 길에 세계박람회홍보관이 자리하고 있으므로 나오면서 들러보자. 홍보관 바로 뒤가 엑스포 개최지인 까닭에 이곳에 홍보관이 마련된 것. 2층 규모, 4개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박람회 유치 후 전시 내용은 다소 바뀌었지만 박람회 개최 의의와 활동 등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해군 역사의 중심축
도로는 자연스레 여수해양공원으로 이어진다. 해양공원의 옛 이름은 하멜공원. 하멜등대 주변으로 수많은 어선이 정박해 있고 낚시꾼도 꽤 많다. 주말에는 아침 일찍부터 나와야 자리가 있을 정도란다. 해양공원 일대는 헨드릭 하멜이라는 네덜란드 사람과의 인연으로 잘 알려 져 있다.
1653년 항해사였던 하멜이 타고 가던 배가 난파되어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되었다. 일행은 순천, 남원 등에도 분산 수용되었는데 하멜을 비롯한 12명의 일행은 여수로 보내져 전라좌수영성의 문지기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멜 일행이 머무는 동안 이도빈이라는 수사가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 결국 1666년 조선을 탈출하게 된다.
그가 네덜란드로 돌아가 쓴 글이 <하멜표류기>이고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5일 네덜란드 호르큼 시의 기증으로 하멜 동상이 해양공원에 세워지게 됐다. 규모는 작지만 3세기 반 전에 있었던 양국 간의 뜻하지 않은 교류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여수에 온 이상 수산시장을 꼭 들러보아야 한다. 최근에 깨끗하게 정비된 여수수산시장 풍물거리와 수산물특화시장이 대표적이다. 해양공원이 끝나는 지점, 여수항 여객터미널 부근에 있어 찾기 쉽다. 풍물거리는 여수에서 첫 번째로 생긴 수산시장으로 여수만 일대는 물론 근해에서 잡은 해산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싱싱한 생선이 가득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한편 가까이에 자리한 진남관 역시 여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다. 단순한 유적지가 아닌 역사 속의 여수를 되짚어볼 수 있는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정유재란 당시 불탄 것을 숙종 44년(1716년)에 다시 건립한 우리나라 최대의 단층목조건물이다. 지방 관아임에도 불구하고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우리나라 건축 역사상 흔히 볼 수 없는 형태다.
일제시대에는 여수보통학교로 이용된 덕에 보존이 가능했다. 지금은 건물들로 인해 시야가 가려졌지만 장군도를 비롯해 여수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위치다. 1층에는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여수에서 해질 무렵이면 꼭 가보아야 할 곳이 있다.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일몰을 볼 수 있는 곳, 바로 돌산공원이다. 황혼 무렵 하나둘 항구로 돌아오는 어선들과 붉게 물든 수많은 섬 그리고 여수의 상징과도 같은 돌산대교에 조명이 켜지면 하나의 비경이 완성된다.
향일암에서의 해맞이를 하려면 숙박은 향일암 부근에서 하는 것이 좋다. 돌산대교를 기점으로 15~20분 정도면 향일암에 닿는다. 향일암 주변이 숙박시설과 식당은 몇 군데 있으므로 이곳에 여장을 풀 수 있다.
#2nd day 바다와 함께하는 여정
매년 새해 일출 여행지로 전국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향일암이다. 암자 자체보다 그 입지 때문에 더 유명한데 이름도 ‘해를 향해 있는 암자(向日庵)’라는 뜻. 하지만 굳이 1월 1일이 아니더라도 향일암에는 매일 아침 해맞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찾는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무려 291개지만 한쪽에 바다를 끼고 걷는 기분이 그만이다.
대웅전 왼편 바위굴을 오르면 관음전에 이를 수 있는데 향일암 여행의 백미다. 관음전 앞에 서면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바위, 망망대해로 이어지는 바다에 한동안 푹 빠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일출을 목적으로 오지만 실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날은 많지 않다. 일 년 중 1/3 정도라고 하니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하지만 해돋이를 제대로 보진 못하더라도 아쉬워하지는 말자. 바다를 마당 삼아 바위섬에 앉아 있는 향일암에 온 기분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향일암이 자리한 금오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바다로 막 들어가려는 거북 형상이다.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봉우리가 거북 머리이고 왼쪽의 바위는 거북 발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향일암은 거북의 몸체에 해당하는데 금오산이라는 이름도 큰 바다거북 오(鼇)자를 사용하고 있고 일주문 입구에 있는 북 조각도 풍수지리적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향한 곳은 무술목에 자리한 해양수산과학관. 전라남도에서 운영하는 전시관으로 일대에서 서식하는 수생물을 수족관에 모아놓았다. 국내외에 서식하는 어종, 수산자원 실태와 보전 및 활용 방안 등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교육 공간이다. 참고로 혈도와 죽도가 보이는 1층 전망대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이보다 좋은 호사가 없으니 놓치지 말 것.
지척에 있는 햇살 가득한 집 공방도 무술목의 숨은 명소다. 의류와 침구류 등 무명과 모시, 면 등을 소재로 한 천연염색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천연염색 하면 단조로운 색상을 떠올리지만 이곳에 전시된 상품들은 은은하면서도 화려하다. 지갑이나 향주머니, 냄비받침 등 자연스럽지만 특별한 소품도 다양하고 차를 마시며 잠시 쉬어 갈 수도 있다.
돌산도는 여수 시내와 다소 떨어져 있는 까닭에 해안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또 중간에 자리한 방죽포해수욕장 등에 차를 세워두고 망중한에 잠기기 좋은 곳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개발의 손길을 조금은 비켜갈 수 있었던 것도 고마워할 일이다. 또 돌산도는 갓을 많이 재배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굴도 유명하다. 돌산 굴전에서 생산되는 굴은 전량 수출될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고.
여수 여행의 마무리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둘러보는 유람선 탑승이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자주 운항이 되지만 겨울철에는 비정기적이므로 미리 문의해야 한다. 2시간 코스의 경우 장군도를 시작으로 대한조선, 돌산도, 우두리 용월사, 무술목, 남해 금산을 지나 오동도를 거쳐 온다. 해상국립공원 일대를 전체적으로 보고 싶을 경우 이용하기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