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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초보 터키댁의 터키 즐기기②] 이스탄불 7일장 시장통에서 만난 친절한 2인조 소매치기  
[초보 터키댁의 터키 즐기기②] 이스탄불 7일장 시장통에서 만난 친절한 2인조 소매치기  
  • 김현숙 기자
  • 승인 2008.0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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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운동화를 주렁주렁 걸어놓은 신발상인 골목.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여행스케치=이스탄불] 그 나라의 활기와 진가를 알 수 있는 곳은 바로 시장이다. 꾸미지 않은 서민들의 삶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지갑 간수만 잘한다면 활기가 넘치는 터키의 요일장 역시 최고의 볼거리다. 

“어머, 가방 열렸나봐요?”
열심히 귤을 고르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그럴 리가 없는데, 아까 분명 슈퍼마켓에서 나올 때 배낭 지퍼를 올렸는데 왜 열렸지?’ 뒤를 돌아보니 투박하게 생긴 까무잡잡한 얼굴의 터키 아줌마와 키가 자그마한 귀여운 여자가 서 있었다. 손짓 발짓으로 ‘너 큰일 났다. 가방 열렸다’라는 말을 들으며 등에 짊어진 배낭을 내려 보니 지퍼가 열려 있었다. 안경집과 손수건 따위가 반쯤 나와 있어 화들짝 놀랐지만 다행히 지갑은 점퍼 주머니에 넣어둔 것이 생각났다. 

“가방이 열렸네. 고마워. 근데 별 일 없어. 내 지갑 여기 있거든….” 나는 고마운 마음에 다시 손짓 발짓을 하며 말했다. 그러나 문제없다는 그 말을 듣고도 그녀들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참으로 친절하기도 하지… 난 다시 귤을 골라 바구니에 넣었다. 그런데 웬걸, 아까 그 터키 아줌마가 마구잡이로 내 바구니에 귤을 넣었다.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시장에서 판매하는 늙은 호박.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야, 이봐. 이거 내 거야.”
놀라는 내게, ‘아, 그래’라는 듯 태연한 그 아줌마. 순간 느낌이 이상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앗! 지…갑… 이 없다! 
귤을 고르던 투박한 아줌마와 일행이었던  그 키 작은 여자가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보였다. 쫓아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그 바람에 모자 속에 감춰놓은 내 핑크색 지갑이 보였다. 
“야, 뭐하는 짓이야. 이거 내 거야.”

그러나 당황하는 기색도 없는 그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거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거야. 네 거냐?” 한다. 그러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지만, 경찰을 부르기도 뭣해서 참고 말았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럴 땐 ‘도둑이야!’라고 호들갑을 떨어야 한단다). 다행히 그녀가 지갑을 열어볼 시간도 없었는지 카드도 돈도 그대로였다. 훤한 대낮에 사람 많은 시장통에서 친절을 가장한 2인조 강도에게 걸려들었던 것이다. 배낭을 열어 지갑을 소매치기하려다 지갑이 없자 내게 가방 열렸다고 친절한 척하는 그녀들에게 나는 한 술 더 떠 지갑의 위치를 알려주고 ‘나 잡아 드슈’ 한 셈이다. 돈은 얼마 없었지만 신용카드며 현금카드 등이 들어 있어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웃에 사는 시누이 멜렉 언니와 처음 시장에 가던  날 사람 많고 어수선한 시장통에서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면서 그녀가 크로스백을 앞으로 여며 꼭 쥐던 것이 생각났다. 외국인뿐 아니라 터키 사람들도 시장통의 소매치기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놓지 않는 것이다.   

터키인들은 대체로 친절하다. 너무 친절해서 때론 부담스러울 정도다. 길을 물어보면 몰라도 아는 척 엉뚱한 방향을 알려주기도 하고, 같은 방향이라며 가던 길을 180도 바꿔 따라오기도 한다. 영어 한 마디 못하지만 외국인들에게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며 줄곧 터키말로 하고 별거 다 물어본다 싶게 말이 많다. 이번에도 그런 유의 친절인 줄 알았는데, 진짜 소매치기였다. 이스탄불에 1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당하는 일이라 놀란 가슴 진정시키느라 한참 걸렸다. 그러나 이런 의외의 상황을 제외하면 이스탄불의 7일장은 언제 가봐도 생기가 넘치는 삶의 현장이다.
  
“아블라, 빌 리라, 빌 리라(언니, 천원! 천원!)”
이스탄불의 요일장은 우리나라 지방에서 열리는 5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터나 주차장, 또는 번화한 중심가에서 살짝 벗어난 모스크 주변의 골목 노변에 장이 선다. 아침 9시부터 트럭에 싣고 온 과일, 야채, 옷가지 등을 부려 전을 펼치고 해가 질 무렵이면 판을 접는다. 물론 파장 무렵에는 우리식의‘떨이’도 있어 아침의 반값에 물건을 살 수도 있다.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7일장은 파티 모스크 근처에서 열린다.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상인들은 늘 정해져 있는 자리가 있고 취급하는 품목도 정해져 있다. 카르프나 미그로스, 디아 마켓 등 대형 마켓이 있지만 이스탄불의 아낙네들은 이 요일장에서 일주일 먹을 식재료와 과일, 옷가지 따위를 산다. 아줌마들은 삼삼오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바퀴 달린 패블릭 카트를 끌고 장으로 나온다. 좀더 싱싱하고 싼 토마토나 가지, 호박 등을 사느라 시장판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요일장은 파티(Fatih) 모스크 주변에서 열리는 수요일장이라고 한다. 사원 주변 골목골목에 끊이질 않는 시장은 품목별로 자리잡는 골목도 다르다. 사원 오른쪽 편에선 구두 와 옷들을 팔고 좀 더 내려가면 야채, 과일상들이 자리 잡는다. 처음 가는 사람은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일 정도로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시장통에선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다. 우리나라 재래시장처럼 상인들이 ‘언니’라고 부르는데 깜짝 놀랐다. 언니 또는 누나라는 뜻의 ‘아블라(Abla)’란 말이 꼬리를 잇는 곳이 바로 이 시장통이다. ‘Abla, bir lira(아블라, 빌 리라)!’라고 부르는 상인 앞에 무조건 사람들이 몰려 좋은 물건을 남보다 먼저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몇 번 이 사람들 속에서 1리라(800원 정도)짜리 티셔츠를 고른 적이 있다. 갭(GAP)이나 리바이스(Levi’s) 등의 브랜드도 눈에 띈다. 품질 좋은 멀쩡한 옷도 있지만 시장통의 ‘짝퉁’ 상표도 많으니 일단은 눈에 불을 켜고 꼼꼼히 살펴봐야 할 일이다.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비 오는 날도 어김없이 장이 선다.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시장통의 간식, 괴즐레메와 차이 한 잔 
내가 자주 가는 시장은 물론 집 근처 사마티아(Samatya)의 토요일장이다. 차파의 화요일장, 코자 무스타파파샤와 타라비야의  목요일장과 픈득자데의 금요일장도 심심찮게 들러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고르곤 한다. 

시누이가 사는 예실쿄이 수요일장에도 가볼 만하다. 한 살 차이인 시누이 엔델 아블라와 멜렉 아블라는 앞뒷집에 사는 이웃이다. 이들과 함께 장에 가기도 하는데, 예실쿄이 장에 가면 쇼핑 마무리로 차이 한 잔과 괴즐레메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에 열 잔도 더 마신다는 터키 차이와 우리식 빈대떡 같은 괴즐레메는 쇼핑 후의 노곤함과 출출함을 달래기에 그만이다. 술탄 아흐멧이나 탁심 등 번화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괴즐레메는 유프카라는 커다란 밀전병에 마가린이나 버터를 바르고 감자, 치즈, 다진 고기, 시금치 등의 소를 넣고 네모 또는 반달 모양으로 구워내는 기름이 적은 빈대떡 또는 대형 만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시장 골목의 떡볶이, 호떡처럼 터키인들이 사랑하는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다.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쇼핑 중의 출출함을 달래주는 터키식 패스트푸드.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하루에 열잔도 더 마신다는 터키 차이. 2008년 2월. 사진 / 김현숙 기자

이스탄불의 요일장에 가면 제철 과일과 야채가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5월엔 체리, 6월부터는 자두, 7·8월엔 멜론과 수박, 포도, 9월엔 사과와 복숭아, 10월부터 귤과 오렌지 등이 kg에 3리라 이하로 팔린다. 가격표가 kg 단위로 적혀 있어‘이거 얼마냐?’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다(터키에선 과일과 야채를 kg 단위로 판다. 우리처럼 몇 개에 얼마가 아니라서 한두 개를 집어 들면 눈총 받기 십상이다). 적어도 0.5kg은 사야 한다. 5인 이상의 가족이 대부분인 터키인들에겐 당연한 일인 듯하다.  

이스탄불은 물론 카파도키아나 셀축 등 지방 도시에 가도 이런 요일장을 만나게 된다. 대형 슈퍼마켓의 가지런히 정렬된 물건과 정가에 익숙한 도시인들은 물건 고르는 재미도 느끼고, 팔려는 상인이나 싸고 좋은 물건 고르는 터키 사람들도 구경하고, 외국인이라는 무기로 한두 개 ‘덤’도 얻을 수 있는 터키의 요일장을 기회 있으면 꼭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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