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서울] 평소 차 안에서, 혹은 멀리서 단편적으로 보던 한강을 자전거를 타고 한 번에 쭉 둘러보면 이전에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한강 북단 길은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 보는 즐거움이 더욱 크다. 단, 웬만한 장정도 다리가 후들거릴 만한 거리이니 미리 각오를 단단히 해두시라.
이번에 소개할 곳은 한강 수계 서울 북쪽이다. 자전거 타고 한강 구경한다고 하면 아주 가볍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큰코다친다. 한강 수계 서쪽인 행주대교에서 동쪽인 광진교까지 거리가 34.9km. 왕복하면 70km가량이나 된다. 자전거 속도는 대략 1시간에 15km 정도 잡으면 된다. 이렇게 보면 대략 5시간 이상 걸리는 구간이란 뜻이다. 여기에 쉬는 시간을 포함하면 소요 시간은 더 늘어난다.
평소 자전거를 열심히 타지 않던 사람이 이렇게 타고 나면 다리는 후들거리고 이후 자전거만 보면 ‘화들짝’ 놀라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런고로 한 번에 다 가겠다 욕심 내지 말고 힘 닿는 대로 적당하다 싶을 만큼만 타시길. 거리와 속도에 무심하게 강가를 달리다 보면 살랑거리는 바람과 길가에 핀 풀꽃이 코끝을 간질인다. 특히 봄날 등 뒤에서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한번 느껴보면 좋겠다.
물론 맞바람이 불면 그때부턴 고통이다. 내가 왜 자전거를 탔을까 하는 원망이 절로 나온다. 이럴 때는 한강과 관련된 속담놀이를 해보시라.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 있나’, ‘한강에 돌 던지기’, ‘한강에 그물 놓기’, ‘한강 가서 목욕한다’, ‘한강 물 다 먹어야 짜냐’ 등등.
한강 다리 맞추기 놀이도 있다. 한강사업본부가 밝힌 다리 개수는 26개, 위키백과엔 27개다. 꽤 많다. 가장 짧은 다리인 한강대교는 841m, 가장 긴 방화대교는 2559m나 된다. 가장 넓은 다리는 한남대교로 상하행선 각각 6차선이다. 이런 자료를 미리 준비해서 이야기하면서 달리면 자전거 여행이 더 재밌지 않을는지.
출발은 행주대교다. 행주대교에서 보면 행주산성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지휘하고 부녀자들이 행주로 돌을 날랐다는 곳이다. 한강 자전거길 서쪽 종점이 행주대교 아래이기 때문에 주말이면 이곳에 많은 자전거족들이 모인다. 음식을 싸 가지고 와서 술과 곁들여 먹는 사람도 있고, 시켜 먹는 사람도 있다. 이들을 보면 도시락 준비해서 한강을 찾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그동안 한강엔 많은 매점이 있었지만 서울시가 한강 주변 고급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말 모두 철거됐다. 물론 영화 <괴물>에 나온 매점도 사라졌다. 행주산성 주변은 강폭이 제법 넓고, 주변 흙길에 개망초꽃 등 풀꽃이 있어 제법 시골 분위기가 난다.
방화대교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다 보면 낚시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흔히 낚시꾼을 두고 ‘세월을 낚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더 느리게 가는 느낌이다. 배 안에서 열심히 작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한강에 유람선만 다니는 게 아니란 것을 이들 배들이 잘 보여준다.
여기서 조금 더 페달을 밟으면 성산대교다. 이곳엔 수변 모래 일광욕장이 있어 여름이 되면 자리를 펴놓고 노는 사람들이 참 많다. 봄이면 연을 날리고, 여름이면 요트를 탄다. 능숙하게 바람을 가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연신 물에 빠지며 초보 티를 내는 이도 있다. 아, 성산대교 옆엔 수영장도 있다. 샤워장이 개방돼 있어 지나면서 흘깃거리는 엉큼족들이 은근히 많다.
양화대교에서 서강대교 쪽으로 가다 보면 잠두봉으로, 봉우리 정상엔 순교자를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돼 있다. 1866년에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을 모신 곳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각 지방 세곡이 올라오던 중요한 항구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조금 더 가면 마포대교다. 한강 북쪽과 여의도를 연결하는 세 개 다리(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 중 하나다. 마포대교 부근에는 추억의 기찻길이 있다. 2005년 12월 만든 것으로 1904년에 개통한 용산선(마포구간 5.1km)이 사라지면서(경의 공항선으로 지하화) 폐선된 침목을 이용해 재현한 것이다. 이렇게 한강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자연스레 서울 역사 공부도 하게 된다.
여기서 조금 더 아래쪽에 한강 지류인 ‘욱천(원래 이름은 만초천)’이 있다. 하천 옆 표지판에 영화 <괴물> 촬영지라고 돼 있다. 오호! 현서(고아성)가 잡혔던 곳으로, 영화에선 하수관으로 나왔다. 남주(배두나)가 괴물에게 활을 쏘려다가 튕겨진 곳이기도 하다. 가까이 보이는 다리가 원효대교다.
다시 한강대교와 동작대교를 지나면 반포대교다. 반포대교는 복층교인데, 아래가 잠수교다. 비가 많이 내리면 잠기고 평상시엔 드러나는 요술 다리다. 1985년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란 영화가 있었다. 박영민이 부른 아주 ‘느끼한’ 주제곡이 생각난다.
반포대교 직전 길은 살짝 오르막길이다. 기어를 조절해도 되지만, 길이가 짧아 이 정도는 엉덩이를 들고 올라가는 게 더 좋다. 기어를 조절하는 동안 힘이 떨어져 오히려 오르막길에서 헤맬 수도 있으니.
동호대교를 지나면 서울숲이 보인다. 뚝섬경마장을 과천으로 옮기면서 생긴 땅을 숲으로 가꾸었는데 꽃사슴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보이는 다리가 대형 참사의 주인공 성수대교.
주현미의 데뷔곡 ‘비 내리는 영동교’가 생각나는 영동대교, 청담대교를 지나면 잠실대교다. 이곳에선 참게를 볼 수 있다. 어떻게 한강에서 참게를 볼 수 있냐고? 정말이다. 날씨가 좋은 늦봄과 여름날 잠실대교에 가면 잠자리채를 들고 참게를 잡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자그마한 참게가 제법 귀엽다. 참고로 우리가 식용으로 종종 먹는 참게는 19세기까지 유럽엔 없었다. 1913년 독일 오데르 강에서 잡힌 게 최초다. 중국에 다녀온 유럽 배가 퍼뜨린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참게를 열심히 구경하다 보면 피로가 ‘싹’ 달아난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호흡을 가다듬어 올림픽대교, 천호대교까지 올라가면 종점인 광진교다. 자전거에서 열이 난다. 수고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