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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①  봄소식을 찾아]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다랭이논 사이로 봄이 왔네
[특집 ①  봄소식을 찾아]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다랭이논 사이로 봄이 왔네
  • 장병목 기자
  • 승인 2008.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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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푸릇한 마늘대가 보이는 다랭이마을.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여행스케치=남해] 남해군 남면 최남단에 자리한 가천 다랭이마을에 봄이 찾아왔다. 마을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춘풍과 넉넉한 햇살을 받으며 다랭이논엔 마늘이 자라고 유채, 냉이, 시금치가 두렁마다 가득 뒤덮여 있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해서 유난히 달다는 시금치와 냉이 냄새가 가득한 남해의 아름다운 가천 다랭이마을은 지금 봄기운이 활짝 기지개를 펴고 있다.

날씨는 거의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던 우수(雨水)에 남해를 찾았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4시간 30분 남짓 떨어져 있다. 남해로 가는 길목, 창가 너머로 보이는 세상엔 드문드문  겨울의 잔재가 고집스레 남아 있다. 뒤늦게 하얀 눈까지 듬성듬성 내린 풍경을 바라보니, ‘과연 남해에는 봄 소식이 찾아왔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행여나 하는 생각에 마음 졸여가며 도착한 남해는 이 모든 걱정이 기우였음을 말해준다. 비록 갈색 산이 푸른 옷으로 바꿔 입지는 않았지만, 마을마다 어김없이 마늘이 발목 이상까지 자라 있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층층이 자리한 다랭이논.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유채, 시금치와 냉이가 제철이라며 전답(田畓)에 자란 나물을 캐는 아낙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해읍내 버스터미널에서 가천 다랭이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타자 푸른 마늘밭은 더욱 자주 눈에 띈다. 종점인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내려 마을을 바라다보았다. 버스정류장 아래로 약 50가구가 오밀조밀 촌락을 구성하고 있고, 그 주위엔 다랭이논이 층층이 자리한다. 그 풍경이 실로 평화롭다.

층층계단으로 펼쳐진 봄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은 다랭이마을로 더 유명하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인 다랭이(다랑)논은 경사가 급한 지형에 주로 나타나는 논으로, 우리나라 서·남해의 섬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 중 가천마을이 다른 지역의 다랭이논보다 더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바로 마을 앞에 펼쳐진 바다 때문이다. 깊은 푸른빛을 머금은 바다와 다랭이논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소위 사진가들이 말하는 ‘달력 그림’을 연출할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마을 뒤쪽 풍경 또한 그에 버금간다. 마을 뒤쪽에 자리한 설흘산과 응봉산은 능선마다 거대 암벽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웅장한 멋을 자아낸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마늘밭 너머로 남해의 깊은 바다가 보인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돌이 올려진 지붕.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다랭이논은 삿갓논, 삿갓배미(배미는 이 고장에서 논을 세는 단위이다)라고도 불리는데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일화가 민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한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다 더 있더란다. 그래서 삿갓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일화처럼 다랭이논의 크기는 논이라 부르기엔 너무 작은 논부터 넓은 곳까지 다양한다. 논의 모습 또한 각양각색이다. 사각으로 잘 정돈된 토지보다는 반달 모양, S자형, 길쭉한 타원, 삼각형 등 여러 가지 형태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본 꿈틀꿈틀한 논의 풍경은 호남평야나 예당평야와는 다른 유연하면서도 질퍽한 멋이 느껴진다. 아마도 농사 짓기 어려운 조건에서 땅을 경작한 농부의 억척스러움이 만든 강한 생명력이 그런 인상을 심어줬는지도 모른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마을 중앙에 촌락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명소가 된 가천마을 
가천 다랭이마을은 농가의 수가 줄어들어 황량해진 여타의 시골마을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관광명소로 유명해지면서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다시 귀농을 하여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마을 주민의 수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이곳을 찾는 객이 많아지자 몇몇 마을 주민들은 부업으로 남은 방을 민박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골목마다 사철나무집, 조은집, 조약돌집 등 민박을 운영한다는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현란한 간판을 내건 집은 없다. 고만고만한 크기에 아담한 간판만 있을 뿐이다. 

마을 위아래를 잇는 골목은 상당히 가파르다. 폭 또한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으니 운전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가파른 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다 마을 가운데에 자리한 동네 슈퍼를 찾았다. 때마침 일과를 마친 주민 몇몇이 난롯불에 모여 소주 한잔을 곁들이고 있다. 그 중에는 마을 이장 김학봉 씨도 있었다.  “어서 오시다.” 쭈빗쭈빗 서 있는 내게 인사를 건넨다. 서울에서 왔다하니, 먼 길 왔다고, 수고했다며 술을 권한다. 졸지에 난롯불에 앉아 촌부들과 마을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사람들 많이 오제.” 김학봉 이장은 5월 마늘이 무르익고, 그 자리에 모내기를 할 때엔 사람들로 마을이 북적거린다고 한다. 요즘은 설흔산과 망응산을 등산하고자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곤 한단다. 그의 말대로 다음날 한 무리의 관광버스들이 마을 위에 따로 마련된 주차장을 메우고 있었다. 

내일은 마을 주민들이 마을 앞바다에 내려가 톳을 캐러 가는데, 방송국에서 그걸 취재한다 한다. 일 년에 수차례 방송이며 신문에서 이곳을 찾는다며 마을에 대한 자랑을 하나 둘씩 늘어놓는다. 자고 일어났더니 관광명소가 됐다는 우스갯소리를 끝으로 하나둘씩 집으로 향한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밭을 일구는 엄기봉 씨.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봄나물 캐는 주민들 
“얼었다 녹았다 해서 달콤하지요.” 민박집을 운영하는 마을 주민 조영애 씨가 텃밭에서 유채를 캐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남편 김성옥 씨가 귀농하면서 이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는 조영애 씨. 오늘 캔 유채로 겉절이를 담그겠다던 그녀가 유채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하나 일러준다. 바로 회에 싸서 먹으면 달콤한 맛이 회와 아주 잘 어울린다고. 남편 김성옥 씨와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모델로 알려진 엄기봉 씨도 밭에 나와 일손을 거든다. 세 사람이 캐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나물이 한 아름 쌓인다. 밭에 함께 따라온 강아지는 연신 꼬리를 흔들며 촐랑거린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쑥과 냉이가 자란다는 남해의 봄은 이처럼 봄나물을 캐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시금치를 캐는 김점례할머니.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마을 아래쪽 다랭이논 사이를 걸었다. 그런데 바다 근처라면 어김없이 풍겨오던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김성욱 씨의 말을 빌리자면 가천마을에 부는 바닷바람은 심해에서 오는 바람이기 때문에 짜고 비린 냄새가 나질 않는다고 한다. 

마을버스정류장에서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한두 시간에 한 대꼴로 버스가 운행된다는 말을 미리 들었기에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졸음이 올 정도로 제법 따뜻한 햇볕이 내리쬔다. 정오라서 그런지 간간이 마을을 오가던 주민들도 뜸하니 점심을 먹나 보다. 이때 김점례(77세) 할머니가 바구니와 소도를 들고 힘겹게 마을과 도로 사이의 가파른 샛길을 오른다. 숨이 차오르셨는지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풀썩 바닥에 주저앉는다. 마을 위쪽에 자리한 다랭이논으로 저녁 찬으로 쓸 시금치를 캐러 가신다 한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사철나무집처럼 마을주민들은 빈방을 민박으로 운영하고 있다. 2008년 3월. 사진 / 장병목 기자

“휴, 이렇게 한번 올라오면 한 번씩 쉬어야 하제.” 김할머니는 가천에서 자라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울산에서 망응산으로 등산을 온 중년 부부와 할머니가 정답게 이야기를 한다. 전기도 버스도 없었던 옛이야기. 논에 힘겹게 물을 대야 했던 지난 시절의 고생을 토로하는 할머니는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한다. 객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할머니가 논으로 향한다. 그런데 가는 길이 심상치 않다. 층층이 계단처럼 이어진 다량이논 사이엔 잘 닦인 길이 없다. 

마치 암벽 타듯(?) 층층이 이어진 논을 오른다. “조심하시다. 돌을 쥐고 올라오시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넘어지는 날에 정성스럽게 쌓아올려 진 돌도 함께 무너지기라도 할세라 조심해서 걸음을 옮긴다. 몇 차례 이렇게 층층으로 난 논을 오른 후, 할머니가 잠시 숨을 고르고 시금치를 캔다. 소도로 한 번 쓱 그을 때마다 시금치가 바구니에 하나둘씩 쌓인다.  

버스정류장에 드디어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급하게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마치고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내게 할머니는 오히려 “젊은 사람이 건강해야지”라 하신다. 서울에 사는 아들과 손자들이 생각난다며 자신의 집에서 식사하고 가라고 거듭 권한다. 다음을 기약하며, 할머니와 아쉬운 인사를 나눴다. 아직은 훈훈한 남해의 인심을 접해서인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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