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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기자 체험] 울산 태화강 용선 체험 용 타고 싶은 사람 태화강으로 냉큼 오시오
[기자 체험] 울산 태화강 용선 체험 용 타고 싶은 사람 태화강으로 냉큼 오시오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8.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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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태화강에 나타난 용선. 2008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울산]나룻배가 유유히 떠다니던 울산 태화강에 난데없는 용선이 출현했다. 용은 중국을 상징하는 영물이라지만 배를 타는 시민들의 즐거운 비명 속에서 출신 성분이 중요한 것은 아닐 터. 멋들어진 용선을 타고 시원하게 펼쳐진 물길을 따라 달리는 기분은 무엇을 상상하든지 그 이상이다.

저 멀리 고층 건물들 아래로 잔잔히 흐르는 태화강이 보인다.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울산엔 태화강이 있다. 잔잔한 물길 위로 모치(숭어새끼)들이 파닥거리며 튀어 오른다. 한쪽에선 용선을 타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용선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준비할 것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저 구명조끼를 입고 허공에 노를 젓는 흉내만 내면 끝이다. 그만큼 남녀노소가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용선이다. 

용선은 말 그대로 용의 모습을 닮았다. 미끈하게 쭉 빠진 몸매는 강물을 거침없이 거슬러 올라갈 듯하다. 앞부분의 용머리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면서도 무섭게 생기지 않아 친근하다. 원래 22명이 타는 배이지만 안전을 위해 15명 정도를 태운다.

2008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울산의 젖줄, 태화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용선. 2008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배에 오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용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늘 잘 부탁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넨다. 고수가 맨 앞에서 북을 치며 신호를 보내면 노젓는 사람들(승조원)은 북소리에 맞춰 노를 저으면 된다. 방향은 용꼬리 부분에서 방향잡이(콕스)가 잡아준다.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용선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어느 배나 똑같지만 모터가 아닌 사람이 끄는 배라면 협동심이 가장 중요해요. 좌우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노를 젓는 것도 딱딱 맞아야 하고, 힘도 통일되어야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선 배가 산이고 어디고 안 나갑니다. 사공이 많아도 마음이 맞아야 산이라도 안 가겠습니까? 용선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단연 ‘협동’이지요.”

현장에서 교육을 맡은 권태진 레저부장의 말처럼, 용선체험은 아는 사람들끼리 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타도 ‘협동’이 최우선이다. 이를 아는 체험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용선에 오르고 나서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며 오늘 잘해보자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2008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미끈한 용꼬리 대신 방향잡이의 노가 방향을 잡는다. 2008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저마다 노를 하나씩 받고 자세를 잡는다. 이제 맨 앞에서 고수의 북소리 신호만 기다리면 된다. 무슨 올림픽 나온 것도 아닌데, 심하게 긴장되는 건 무슨 연고인지. 

“둥, 둥, 둥, 둥~.”
드디어 북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진다. 일제히 교육 받은 대로 왼쪽에 앉은 사람들부터 힘차게 노를 젓기 시작한다. 물 위를 슬슬 미끄러지던 배가 네다섯 번의 노 젓기에 힘을 받기 시작한다. 모터로 달리는 배만 타보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작은 힘으로 배가 움직이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북소리는 더욱 힘차진다. 사람들도 힘이 빠지기는커녕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팔짓도 힘차다. 물 위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모치들이 오늘의 체험을 환영해주는 것 같다. 물론 혼자만의 ‘오버’겠지만…, 그런들 또 어떠랴. 

태화강 용선체험의 코스는 태화교에서 출발해 울산교까지 왕복하는 약 2.4km 다. 출발할 때 울산교는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처음 노 젓기를 해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기분을 내어 너무 무리해서인지 노 젓기 몇 번 만에 울산교는 목적지가 아니고 신기루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배의 속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8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두둥~두둥’ 고수의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2008년 5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아, 북 두 번 칠 동안 한 번 노 저어서 언제 다리까지 갈 낍니까? 이러다가 도로 돌아가지도 못하겠네. 자자~ 북소리에 맞춰 노래도 부릅시다. 이어도 사나 어흐야~.”

열심히 북을 두드리고 있는 고수의 멋들어진 노랫가락에 다시 힘을 내어본다. 하지만 궁둥이가 움찔움찔 앞사람의 그 폼이 우스워 웃으니, 뒷사람도 나를 보고 한참을 웃고 있을 게다. 북소리와 거친 숨소리, 거기에다 한바탕 웃음소리도 더해진다. 

그렇게 노를 젓다보니 어느새 다리 밑에 당도했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서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힘은 들지만 처음보단 많이 여유가 생긴다. 고개를 들어 강 주변을 둘러보니 도시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 건물들을 나란히 하며 이렇게 유유자적 뱃놀이-사실 용선은 뱃놀이가 아니고 엄연한 레포츠지만-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다시 선착장에 들어오니 온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거의 매일 용선을 타러 온다는 임복선 할머니 일행은 힘들어하는 젊은이들 앞에서 “이 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다”며 “우리는 한 번 더 타겠다” 하신다. 아, 부끄럽다 젊은이들 기초체력. 하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물 위에서 용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이는 기초체력 걱정일랑 접어두고 태화강으로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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