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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빛바랜 사진 속 그리운 간이역, 남양주 능내역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빛바랜 사진 속 그리운 간이역, 남양주 능내역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0.04.14 2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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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문 닫게 된 남양주 능내역
텅 빈 대합실, 추억 가득한 흑백사진으로 채워
남한강 자전거길과 다산유적지까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남양주시 조안면에 자리한 정겨운 능내역 풍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남양주] 기차역은 단순히 떠나고 도착하는 공간이 아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전하며 자연스레 만남과 이별도 쌓인다. 때론 설렘이, 때론 아픔이 시간과 겹쳐지며 추억이 된다. 기차는 멈춰도 추억은 여전히 누군가를 그 시절로 데려다준다. 남양주에 자리한 낡은 폐역, 능내역이 그런 곳이다. 

갈래머리 여고생부터 멀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회사원까지 아침저녁으로 북적이던 기차역은 폐역이 됐다. 하지만 텅 빈 대합실은 빛바랜 흑백사진들로 채워졌고 버려진 객차는 쉼터로 변신했다. 누구든 이곳에선 추억 속으로 달려갈 수 있다. 경주까지 이어지던 기찻길은 이제 자전거길이 대신한다. 근처에 조선 최고의 개혁가로 꼽히는 다산 정약용의 생가와 박물관이 자리해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하기에도 좋다. 

세월의 흐름 따라 문 닫은 역사
능내역은 중앙선에 속한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경주역까지 이어지는 중앙선은 경부선 다음으로 내륙을 관통하는 종관철도다. 1939년 청량리~양평 구간이 먼저 개통되고 이듬해에 원주까지, 1942년엔 전 구간이 완성됐다. 당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던 일제가 군대와 군수물자를 나르기 위해 전략적으로 부설했던 노선이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능내역의 겨울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무쇠 난로.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능내역은 한참 후인 1956년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이용객이 점차 늘면서 1967년 보통역으로 승격됐다. 아침저녁으로 기차역을 찾는 이들이 많아 늘 북적거렸다. 서울까지 달리는 기차라 마을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자랑이었다. 

하지만 자동차가 보급되고 도로가 개발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은 자꾸만 줄어 1993년 간이역으로 격하된다. 2001년부턴 단선 열차가 잠시 쉬어가는 신호장의 역할만 수행하다, 중앙선 복선화가 시작되면서 2008년 결국 폐역이 됐다. 

추억 속으로 데려다줄게요
야속하지만 전국엔 능내역과 비슷한 운명의 폐역들이 꽤 많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면서 대부분 잡초 무성한 폐건물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능내역은 찾는 이가 없어도 먼지를 닦아내고 텅 빈 대합실을 흑백사진들로 채웠다.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장님의 빛바랜 사진부터 관광객들이 교복을 빌려 입고 찍은 기념사진까지 한 장 한 장 애틋한 그리움과 유쾌한 웃음들이 담겼다. 덕분에 주민들은 물론 능내역을 처음 찾은 여행자들도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어본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대합실의 흑백사진이 여행자의 향수를 자극한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텅 빈 대합실을 채운 흑백사진.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이제는 역무원이 사라진 매표소.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알록달록 색이 칠해진 나무의자가 놓여 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눈 내린 대합실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무쇠 난로와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빨간색 나무 우체통도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기적소리가 멈춰버린 플랫폼으로 나서니 알록달록 색깔을 칠한 나무 의자가 동화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기차역 앞에는 버려진 객차 하나가 덩그러니 남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카페로 활용됐으나 지금은 잠시 걸음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쓰인다. 처음 능내역을 찾았을 때 이곳 카페에서 고양이 ‘능내’를 만났다. 길고양이지만 한두 번 사료를 챙겨줬더니 아예 터전을 잡고 역장 흉내를 낸다고 카페 주인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쿠키를 먹던 아이에게 슬쩍 발끝을 간질이며 장난을 거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이는 고양이와 낡은 기찻길 위를 함께 걸었다. 그 뒤로 분홍빛 하늘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렇게 나도 하나의 풍경을 능내역에 쌓아뒀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능내역의 마스코트로 통했던 고양이 능내.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한때 카페로 사용됐던 객차.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기차역은 훌쩍 자란 아이만큼이나 바뀌었다. 나무 의자는 더 낡았고 참 다정했던 카페 주인과 고양이 능내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추억할 수 있는 나만의 풍경과 시간이 있다는 것, 이 봄에 능내역이 그리웠던 이유다. 

INFO 능내역
주소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384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남한강 자전거길에서 만나는 두물머리 풍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찻길 대신 자전거길, 남한강 자전거길
능내역 앞에는 옛 기찻길이 그대로 남아있다. 기차는 멈췄지만 그 옆으로 둥근 바퀴들이 쉴 새 없이 달린다. 자전거들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가운데 단연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남한강 자전거길이 이곳을 지난다. 남양주 팔당대교에서 시작해 충주 탄금대까지 이어지는 남한강 자전거길은 총 길이 132km에 달한다. 

그중 팔당역에서 양평 구간은 옛 중앙선 철길을 따라 달린다. 낡은 기찻길은 물론 기차가 지나던 터널과 철교를 건너는 특별한 경험은 남한강 자전거길의 가장 큰 매력이다. 게다가 팔당댐을 시작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등 아름다운 강가 풍경이 내내 펼쳐진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능내역에서 잠시 쉬어가는 자전거 여행자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능내역은 이 길을 달리는 이들에게 반가운 휴식처다.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추억에 젖어볼 수도 있고 기찻길 위에 앉아 다리를 쉬어갈 수도 있다. 능내역 주변으로 간단히 배를 채울 수 있는 식당과 멋스러운 카페도 자리한다. 자전거길 종주 인증 스탬프도 비치됐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달리는 마니아들에겐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장소인 셈이다. 

일반 관광객들도 자전거여행의 매력을 잠시 즐겨볼 수 있다. 능내역 근처에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자전거대여소가 자리해 누구나 자전거와 헬멧 등을 빌릴 수 있다. 두물머리를 지나 양수역까지 왕복하는데 1시간, 옛 철로가 끝나는 양평 읍내까지는 왕복 3시간 정도 소요된다.   

INFO 남한강 자전거길
이동구간
팔당대교~충주 탄금대(총 132km)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정약용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다산유적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정약용의 흔적을 만나는 다산유적지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로 꼽힌다. 수원 화성을 짓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거중기를 발명하는 등 실학자로서의 재능도 뛰어났지만, 조선의 낡은 제도와 불합리한 사상을 개혁하려는 의지도 분명했다.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 그가 남긴 책들이 지금껏 다시 읽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산은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여유당이라 이름 붙은 생가는 안타깝게도 1925년 홍수로 소실됐지만 다산유적지 내에 새롭게 복원돼 당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10세에 이미 자작시를 모아 책으로 엮을 만큼 특출했던 그는 22세에 성균관에 입학하며 정조의 눈에 띄게 된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유당은 다산이 유년시절을 보낸 공간이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다산유적지에 전시된 거중기.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다산박물관에서 다양한 전시물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탄탄대로였던 관료 생활은 정조 승하 후 위기를 겪게 되는데, 젊은 시절 탐독했던 천주교 관련 서적들이 문제가 됐다. 가족이 참수당하고 유배지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는 수많은 책을 저술했다. 오랜 유배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다산은 마지막 눈 감는 순간까지 능내리의 호젓한 풍경에 위로를 얻었다. 

유적지에는 다산의 생가와 묘지, 그의 생애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다산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에선 거중기와 배다리, 수원화성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해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다. 매년 유적지를 배경으로 정약용문화제도 열린다. 여름엔 유적지 주변에 탐스러운 연꽃이 만발해 산책코스로도 제격이다.   

INFO 다산유적지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실학박물관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주소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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