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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걷고, 달리다 ①] 레트로 마을길 따라 산책, 오늘의 사치…한양도성 성곽길 낙산구간
[걷고, 달리다 ①] 레트로 마을길 따라 산책, 오늘의 사치…한양도성 성곽길 낙산구간
  • 이루리 여행작가
  • 승인 2020.04.16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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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산을 잇고 8개의 문을 품은 한양도성
레트로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 좋은 '낙산구간'
쉽게 걸으며 탁 트인 전망 만끽할 수 있어
[편집자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원한 야외, 청량감이 전해지는 숲, 그리고 오롯이 자연을 따라 걷고, 달리는 여행이 대세입니다. 도심에서, 여행지에서 자연과 함께 보내는 여행을 찾아 떠나봅니다. 도심을 발아래 두고 걷는 산성 투어, 남해의 해안선을 따라 걷는 바래길, 그리고 전주천을 따라 만경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여행까지. 꽃피는 봄, 걷고 달리는 여행을 담았습니다. #코로나19 함께 이겨냅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한양도성 성곽길은 언제든 걷기 좋은 길이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서울]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했던 한양도성. 한양을 방어하던 조선의 성곽길을 따라 공상과학에나 나올 법 하다고 여겼던 2020년의 서울을 걷는다. 어제를 발아래 두고 오늘의 호흡으로 걷다보면 문득 내일의 시간이 귓가를 스친다. 빌딩으로 둘러싼 서울 한복판에서 만난 왠지 낯선 성곽길, 그 길 따라 펼쳐진 익숙하고 소소한 삶의 풍경을 담는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마음을 들었다 놓는다. 바람 따라 마음이 무시로 들썩이는 봄날이라도 굳이 멀리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서울 시내 한복판, 하늘 언저리로 눈길을 두면 먼발치에 한양도성이 눈에 들어온다. 휴일 늦은 오후나 퇴근길에라도 갑작스레 발길을 둘 수 있는 성곽길은 가볍고도 만만하다. 서울 사대문 안에서 누리는 호젓한 길이다. 걷다보면 들떴던 마음도 살포시 내려앉는다. 

4개의 산을 잇고 8개의 문을 품은 한양도성
북악산(해발 342m), 인왕산(338m), 낙산(125m), 남산(262m)으로 둘러싸인 한양도성은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싼 성곽이다. 한양도성은 조선의 왕궁인 경복궁의 풍수를 중심으로 세워졌다. 백악산(북악산의 옛 이름)을 주봉으로 왼편의 낙산을 좌청룡, 오른편의 인왕산을 우백호, 백악산과 마주보는 남산은 안산으로 두어 남쪽의 경계로 삼았다. 네 개의 산이 한양을 둘러싸고 주궁인 경복궁을 보호하는 형세다. 자연의 선을 훼손하지 않고 지형을 그대로 따라가며 쌓은 성은 쌓이는 세월 따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됐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나들이를 즐기는 여행객들의 모습.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길 옆으로 노란 산수유가 만발해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마을버스 종로03을 타면 쉽게 성곽길 진입로가 있는 낙산공원에 닿는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서울의 주산인 네 개의 산을 한 바퀴 아우르는 한양도성은 평균 높이 5~8m로 총 길이 18.6km다. 근대화와 일제에 의해 평지의 성곽 대부분이 헐렸다가 최근 복원되어 다시 그 위용을 갖추고 있다. 오래된 돌들 사이로 더해진 새 돌들, 그 모습이 마치 노인의 얼굴에 훈장처럼 새겨진 검버섯 같다. 세파에 시달려 거뭇거뭇 울퉁불퉁 이낀 낀 옛 돌들 위로 어쩔 수 없이 말끔한 새 돌들이 더해진 성곽은 그렇게 다시 오늘의 시간을 쌓아간다. 

성곽이 복원된 후 만들어진 6개의 성곽 코스는 옛 서울인 한양의 아름답고 아련한, 미련하고 현명했던 역사를 켜켜이 간직한 채 사람들을 맞는다.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의 4대문과 서북에서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의 4소문을 품고 있다. 돈의문과 소의문은 소실되었지만, 걷다 보면 시나브로 나머지 6개의 문과 만나게 된다. 

성곽길이 서울시민에게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코스마다 걷고 쉬기 좋은 공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북악산에는 와룡공원과 삼청공원이, 남산에는 N서울타워와 남산공원이, 낙산에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낙산공원, 마로니에 공원 등이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벽화마을과 성곽길이 이어진 길에는 전망 좋은 카페도 여럿 자리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한양도성 6개 코스는 백악구간(창의문~혜화문), 낙산구간(혜화문~흥인지문), 흥인지문구간(흥인지문~장충체육관), 남산구간(장충체육관~백범광장), 숭례문구간(백범광장~돈의문 터), 인왕산구간(돈의문 터~창의문)으로 나뉜다. 오늘은 이 중 가장 접근이 쉽고 데이트 코스로도 좋은 낙산구간을 걷는다. 

벽화마을과 연결된 레트로 데이트 코스 낙산구간 
장수마을과 이화마을을 통과하는 낙산구간은 누군가에게는 동네길이기도 하다. 벽화마을길과도 연결되어 있다. 발랄한 벽화들로 채워진 마을길은 허름한 옛 집들과 어우러져 레트로가 대세인 요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 있다. 이화동 벽화마을과 이어진 성곽길 중간쯤 전망 좋은 카페도 여럿 몰려있다. 송혜교ㆍ박보검 주연의 드라마 <남자친구>의 촬영장소가 된 덕에 더 인기몰이 중이다.     

그래서인지 운동화나 플랫슈즈 정도면 양반이고 하이힐을 신은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하지만 낙산공원까지 마을버스가 올라오기 때문에 편하게 낙산의 성곽길을 즐길 수 있다. 창신역에서 대학로, 종로5가, 동대문 등을 거쳐 낙산까지 올라오는 마을버스 종로03번을 타면 쉽게 성곽길이 이어진 낙산공원에 도착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성곽길 돌 틈으로 보이는 창신동의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집들이 향수를 자극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드라마 <남자친구> 마지막 회에 등장한 예쁜 카페 '개뿔'.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성곽길 골목 카페에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즐기는 커피와 차.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혜화문에서 흥인지문(동대문)까지의 낙산구간은 2.3km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낙산의 높이도 125m밖에 되지 않아 경사가 급한 산동네 정도다. 여유 있게 걸어도 1~2시간, 카페에서 여유를 부려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길 곳곳에서 발길을 멈추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성곽길 옆으로 보이는 근사한 풍경을 그냥 지나쳐버릴 수가 없다. 골목 사이사이 찾아들어가 보고 싶어지는 유혹도 생긴다. 성곽길 따라 걷다보면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한 동네도 정겹다. 낙산 근처의 동네들에는 현실에서도 추억이 흐르는 듯하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며 구멍가게 간이 테이블에서 소주 한 잔으로 소일 삼는 할아버지들 모습이 정겹고도 아스라하다. 

낙산 성곽길은 아기자기하게 흐른다. 성곽 너머 먼발치로 종로의 높은 빌딩들과 동네 풍경이 가만가만 어우러진다. 성곽을 사이에 두고 길은 양쪽으로 흐른다. 중간 중간 암문이 있어 문을 통과하면 이쪽저쪽을 통과해 왔다 갔다 하며 걸어볼 수 있다. 성곽바깥길에서 보면 성벽이 높아 웅장해 보여도 성곽 안쪽에서 보면 사람 키만한 높이로 아늑함이 느껴진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낙산성곽길에서 이화동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대학로를 만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TIP 한양도성 낙산구간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4번 출구 또는 혜화역 2번 출구, 동대문역 1번 출구를 이용해 한양도성 낙산구간에 진입할 수 있다.
이동 경로 ① 동대문역 1번 출구~동대문성곽공원~마을길~암문~낙산공원~체육시설~성곽길~한성대입구역 
이동 경로 ② 혜화역 1번 출구~대학로~낙산공원~암문~이화동 벽화마을~암문~성곽길~동대문역  
소요시간 약 1~2시간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낙산구간은 한성대입구역 또는 혜화역, 동대문역 출구를 이용해 진입할 수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흥인지문(동재문)으로 내려가는 길 끝에 공원과 한양도성박물관이 있다. 동대문역과도 맞닿아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춘래불사춘, 작은 사치로 오늘을 누리기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멀리 있어 만나기 어렵다면 가까운 이웃사촌만 못한 법. 그런 점에서 낙산성곽길은 언제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친근한 길이다. 근사한 친구는 아닐지언정 늘 곁에서 바라볼 수 있고 오를 수 있는 편하고 부담 없는 사이다. 

낙산길은 낙산공원이 이어진 가톨릭대학 뒷길로 이어져 있는데 축조 시기별로 다른 다채로운 성돌들을 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동행이 있어도 좋겠지만 동네를 걷듯 혼자서도 부담 없다. 길은 사람이 걷기 좋도록 잘 닦여있고 깔끔한 모습으로 정돈되어 있다. 걷기는 수월하면서도 전망만은 여느 높은 산 정상에 비해도 손색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나 봄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요즘은 우리들 모두에게 그런 시절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시나브로 느끼는 유예할 수 없는 행복이 있다. 그것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거나 좋은 날씨를 즐기는 것처럼 그 순간이 지나면 영영 사라져 버리는 순간의 것들이다.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시간들이다. 계절은 다시 올 테지만 그때의 그것들은 오늘과는 또 다른 것이다.

이 순간이 안타까운 것은 나에 의해 그리고 상황에 의해 자꾸만 미뤄지는 것들 때문이다. 오늘은 성곽길 산책으로 작은 사치를 누려본다. 산책은 별 볼일 없고 자질구레한, 종종 구차하기도 한 일상에 잔잔한 재미와 여유를 불어넣는다. 나빠도 오늘, 인생은 늘 지금 뿐이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도로 건너편에서 바라본 흥인지문(동대문).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TIP 서울 성곽과 사대문 
서울성곽은 1396년에 조선 건국과 함께 수도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됐다. 도성은 성벽자체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성벽 안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성곽길을 걷다보면 유난히 숙종의 이름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1704년경 숙종이 대대적으로 강행했던 성곽 정비 정책 때문이다. 옛 한양에는 네 개의 큰 문과 네 개의 작은 문, 즉 4대문과 그 사이로 난 4소문이 있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이고 4소문은 혜화문(동소문), 돈의문(서대문), 광희문(남소문), 창의문(북소문)이다. 이 4대문과 4소문을 모두 연결한 것이 한양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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