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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걷고, 달리다 ②] 붉은 철쭉이 필 때, 그대와 걷고 싶어라…남해 망운산노을길
[걷고, 달리다 ②] 붉은 철쭉이 필 때, 그대와 걷고 싶어라…남해 망운산노을길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0.04.16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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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바래길 제14코스 '망운산노을길'
남파랑길 44~45코스와 겹쳐…걸음마다 펼쳐지는 바다
노을처럼 붉은 철쭉이 예쁜 망운산
[편집자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원한 야외, 청량감이 전해지는 숲, 그리고 오롯이 자연을 따라 걷고, 달리는 여행이 대세입니다. 도심에서, 여행지에서 자연과 함께 보내는 여행을 찾아 떠나봅니다. 도심을 발아래 두고 걷는 산성 투어, 남해의 해안선을 따라 걷는 바래길, 그리고 전주천을 따라 만경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여행까지. 꽃피는 봄, 걷고 달리는 여행을 담았습니다. #코로나19 함께 이겨냅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 제14코스 망운산노을길은 서성항을 출발해 노구마을까지 가닿는 길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남해] 남해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남해바래길’은 총 14개 중 8개 구간, 101.3km가 완공된 상태다. 제3코스 구운몽길과 8코스 진지리길은 향후 개통을 앞두고 있다. 열린 길 어디든 다 좋지만, 봄이 무르익은 이달엔 서상항을 출발해 예계마을~작장마을~유포마을을 지나 노구마을까지 가닿는 제14코스 망운산노을길을 걷기로 한다. 

남해바래길 제14코스 망운산노을길은 쉬엄쉬엄 3시간 30분쯤 걸린다. 그늘이 적은 단점도 있지만 몽돌 바닷가를 옆에 둔 데다 공룡이 거닐었을 법한 암반, 상남마을과 남상마을 사이의 숲길, 또 망운산(786m)과 하동 금오산(850m) 등을 보며 걷는 재미가 제법 그럴싸한 길이다.

남파랑길과 겹쳐진 바래길
지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당시 서상항과 박람회장을 연결했던 여객선터미널은 문이 잠겼다. 뱃길이 끊겨 버려졌던 건물은 현재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인데,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지 숙소조차도 문이 잠겨 주변 공기를 한층 더 차분하게 한다. 서상항을 왼쪽에 두고 마을길로 들어선다. 담벼락에도 빨랫줄에도 검푸른 미역이 걸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예계마을에서 바라본 풍경. 남해를 넘어 전남 여수가 가깝게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남해바래길과 길이 겹치는 남파랑길 45코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바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물때에 맞춰 바다에 나가 파래나 미역, 고동 등 해산물을 손수 채취하던 남해 여인들의 고단한 삶을 이르는 말이다. 바람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저 미역이 걷는 내내, 스치는 마을마다, 바래길의 표식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남해스포츠파크가 보이는 마을로 올라서자 남파랑길 45코스 이정표가 보인다. ‘남해안 쪽빛 일주’남파랑길은 경남의 남해ㆍ통영ㆍ거제ㆍ하동, 전남의 여수ㆍ순천ㆍ광양ㆍ고흥을 잇는 여행 코스를 말한다. 망운산노을길은 바래길 다른 구간과 연결되지 않은 외로운 길이지만 그 빈틈을 남파랑길 44~45코스가 잇고 있다. 바래길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면 남파랑길 파란색 이정표를 따라도 된다.

보랏빛 들꽃 너머로 여수의 바다와 산들이 보인다. 꽃은 파도에 흔들렸고 거대한 화물선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남쪽 바다를 오가고 있다. 길은 대부분 바다와 함께한다. 하얗게 닦인 포장도로 우측엔 새로 짓거나 이미 지어져 손님을 맞이하는 펜션이 즐비하다. 그만큼 경치가 좋다는 방증인 셈이다. 시멘트 도로 끝엔 풀밭이 있다. 계절이 조금 더 더워지면 발목까지 올라온 이 풀들이 무릎까지 웃자라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상큼한 흙에선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묻어난다. 풀밭 너머는 다시 바다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여수를 훑고 온 파도가 발밑까지 밀려온다. 바다에선 미역 냄새가 난다. 청록색 미역 줄기가 해변 여기저기 흩어져 등산화에 밟힌다.

TIP 남해바래길
남해바래길은 2020년 4월 기준 제1코스 다랭이지겟길(16km), 제2코스 앵강다숲길(14.6km), 제4코스 섬노래길(9.5km), 제5코스 화전별곡길(14.7km), 제6코스 말발굽길(14.6km), 제7코스 고사리밭길(14.3km), 제13코스 이순신호국길(7.2km), 제14코스 망운산노을길(10.4km)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걷기 여행의 시작점인 서상여객선터미널 외부 전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서상여객선터미널
터미널 앞 무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걷기 여행을 시작한다. 구간 종점인 노구마을에선 택시(055-864-2222)를 이용해 서상항으로 돌아온다. 요금은 2만원.
주소 경남 남해군 서면 남서대로1687번길 28-12

어촌 산촌, 길이 지나는 마을들
바위에 빨간딱지가 붙었다. 가까이 가보니 ‘만조 시 위험’하다는 경고 문구다. 바위를 넘어 몽돌해변으로 내려선다. 동그란 자갈을 밟을 때마다 삐끗삐끗 풍선인형처럼 흔들린다. 바람과 파도에 휩쓸려 드문드문 색깔이 벗겨진 두 개의 화살표가 어긋난 방향을 가리키며 바위 한쪽에 누웠다.

서상항에서 출발해 노구마을로 간다면 노란색, 역방향은 초록색이다. 몇 발자국 못 걸어 만난 두 번째 화살표 앞에선 잠시 막막해진다. 노란색은 곧장 가라고 말을 하지만 길, 아니 해변은 이미 물에 잠겼다. 그제야 건성으로 흘려본 빨간 딱지가 떠올랐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서상항에서 노구마을로 간다면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야 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망운산노을길은 대체로 바다를 왼쪽에 낀 채 이어진다. 만조 땐 해변이 물에 잠길 수 있으므로 안전에 유의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지금은 만조다. 방수 기능이 있는 등산화라도 섣불리 건널 수가 없다. 바다에 잠긴 바위는 이끼가 낀 것처럼 어둡게 보였다. 파도라도 친다면 큰일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축대를 쌓은 언덕으로 올라간다. 밭일하던 어르신이 경계 혹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래꾼을 쳐다본다. 멋쩍게 웃는 걸로 인사를 대신한다. 바짓단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본래의 길로 돌아온다. 이번엔 시멘트 포장도로다. 바다는 어김없이 왼쪽에 있다.

작장리는 예부터 뒤새미, 말새미, 참새미 등으로 불렸다. 물이 풍부한 마을이란 얘기다. 서상항에서 예계마을과 상남~작장~남상마을에 이르기까지 방파제 낚시꾼들도 곧잘 만날 수 있다. 솜씨 좋은 이들은 감성돔, 도다리, 볼락, 문어, 갑오징어 등을 잡아 올린다. 해변을 따르던 길이 우측 산길로 이어진다. 산행인가 싶지만 길은 곧장 바다로 내려섰다 재차 산으로 들어선다. 상남마을을 지나왔고 남상마을로 가고 있단 안내판이 소나무 둥치에 걸렸다.

바다와 마주한 마을을 지난다. 마을마다 미역이 빨래처럼 널렸다. 톳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조류도 따스한 햇볕 아래 말라가고 있다. 전형적인 어촌이다. 차곡히 쌓아둔 어망과 부두에 나란히 줄 맞춰 정박한 배, 하지만 오고 가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마을을 지난다. 남파랑길과 바래길임을 알리는 안내판만이 올바로 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예쁜 그림이 그려진 벽 앞에 하얀 벤치가 놓여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망운산이 가깝게 보일수록 바다는 점점 멀어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벽엔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 앞엔 하얀색 벤치도 있다. 언덕을 올라 내려서자 이번엔 대단위 마늘밭이 보인다. 남해의 마늘은 해풍을 맞고 무럭무럭 자랐다. 바다 끝엔 하얀 탑이 줄줄이 선 산업단지가 보인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다른 세상이 공존한다.

길은 바다와 거리를 두고 벌어진다. 망운산이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멀어진다. 이제 유포마을을 지나 구간 종점 노구마을까진 지척. 다랭이논이 계단을 만들며 아래에서부터 산 중턱까지 층층이 이어진다. 이렇게만 보면 이쯤이 바닷가마을이란 걸 실감하기 힘들다.

노구마을에서 바래길은 끝난다. 하지만 담장 왼쪽으로 어김없이 남파랑길 이정표가 표시돼 있다. 길은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가보지 못한 길과 가야 할 길, 걸음을 멈춰야 할 길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하다 택시를 타고 서상으로 돌아온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해안가의 해 질 무렵 풍경은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노을처럼 붉은 철쭉이 예쁜 망운산
제14코스의 이름이 된 망운산은 화방사와 망운사, 또 정상부 철쭉군락지가 바다 풍경과 맞물려 봄의 한가운데 절정을 자아내는 산이다.

‘망운산 기슭에 천연기념물 산닥나무가 자라고 있다. (…) 산닥나무는 고급 한지의 원료로, 망운산에서는 그 고급 원료를 대량으로 구할 수 있다. 대장경판을 새긴다면 고급 한지를 대량으로 필요로 한다. 둘이 절구와 절굿공이처럼 만날 수 있다. 화방사 산닥나무가 대사리 고려대장경판 판각지설을 멀리서 지원해주는 듯하다.’

박진욱이 쓴 책 <남해유배지답사기>에는 망운산 산닥나무와 대장경판 이야기가 나온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망운산 정상석 뒤편에 새겨져 있는 문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 붉은 철쭉으로 물이 들 망운산. 하단부 황토색으로 보이는 곳이 모두 철쭉나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관음포 이락사로 가는 길에서 만난 남해 사람도 비슷한 얘길 했다.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을 만든 곳은 “강화도가 아니라 남해”였다고. 지리산의 나무를 섬진강에 띄우면 물줄기를 따라 저절로 남해로 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지리산에서 온 나무에 글씨를 새기고, 망운산 닥나무로 만든 한지에 정성스레 찍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망운산노을길에서 강과 바다의 흐름,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흐름을 되짚어본다.

바래길을 걷고 망운산까지 산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차를 갖고 왔다면 ‘망운사’를 검색해 구불구불 임도를 따라 일정 고도까지 올라서는 게 좋다. 망운사 갈림길에서 정상까진 0.7km. 꾸준한 오르막이 결코 쉬운 건 아니지만 정상을 찍고 주차한 찻길로 내려서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바래길과 묶어 꼭 한 번 올라가는 게 좋다. 정상에 서면 남해 일대의 바다와 섬들은 물론 멀리 내륙의 지리산(1915m)까지 보인다. 차가 갈 수 있는 KBS 중계탑 너머 활공장에서 일몰을 봐도 좋고,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 철쭉이 만개할 때 쉬엄쉬엄 소풍처럼 다녀와도 좋을 산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짱구식당에서는 남해의 특산물인 멸치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짱구식당
남해읍 상설시장 안에 있다. 생갈치조림, 매운탕, 해물탕 등이 주요 메뉴다. 봄에는 도다리쑥국, 멸치회, 멸치쌈밥이 맛있다. 멸치쌈밥의 경우 1인분 1만5000원이다. 월요일 휴무.
주소 경남 남해군 남해읍 화전로96번가길 3-6

INFO 망운산
주소
경남 남해군 남해읍 남서대로2240번길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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