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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예술 산책] 자연의 품에서 예술의 울림을 듣다한솔뮤지엄
[예술 산책] 자연의 품에서 예술의 울림을 듣다한솔뮤지엄
  • 주성희 기자
  • 승인 2013.11.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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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여행스케치=원주] 키 작은 패랭이꽃 80만 그루가 일제히 까치발을 세워 반가운 환영 인사를 건넨다. ‘숲의 귀족’ 자작나무 180만 그루가 정중히 안내하는 숲길을 따르면 투명한 수면 위로 진귀한 예술품을 품은 또 하나의 작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한솔뮤지엄은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의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해발 275m, 서울 남산보다 조금 더 높을 뿐인데 풍경은 사뭇 다르다. 광활한 강원도의 품에 안긴 뮤지엄은 막힌 듯 탁 트이고, 숨은 듯 훤히 열리며 진면목을 드러낸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이채로운 조화. 이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으며 시작됐다. 

8년 전 겨울 오크밸리 산악자전거장 부지에 방문한 안도 다다오는 이듬해 봄 22만 평의 대지를 남김없이 활용한 한솔뮤지엄 스케치를 내놓았다. 그 후 무려 7만 명의 사람이 7년간 힘을 모아 자연과 어우러진 미술관, 그 모습 자체가 살아 있는 전시품인 한솔뮤지엄을 탄생시켰다. 전체 길이는 700m에 불과하지만 관람 거리가 2.3km에 이르는 짜임새 있는 동선은 2시간 정도를 꼬박 투자해야 모두 짚어볼 수 있다. 

하지만 딱 2시간 만에 자리를 뜨는 이는 없다. 빛과 물, 돌의 물성을 극대화한 안도 다다오식 건축의 묘미에 빠져, 세계 유일의 제임스 터렐 공공 전시관에서 만나는 빛의 예술에 중독돼,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에 취해 느긋이 머문다. 성질 급한 산속 어둠을 타박하며, 이곳에서의 시간만은 더디 흐르기를 희망하면서.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청조갤러리에 전시된 백남준의 '커뮤니케이션 타워'.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자연과 건축, 예술의 어울림 
한솔뮤지엄은 크게 3개의 정원과 본관, 제임스 터렐관으로 이뤄져 있다. 원형의 성곽을 연상시키는 뮤지엄의 관문 웰컴센터를 지나면 패랭이꽃이 만발한 첫 번째 정원 플라워가든이 펼쳐진다. 꽃밭 한가운데 우뚝 솟은 붉은 조형물은 미국 조각가 마크 디 수베로의 작품이다. 반가운 손님을 마중 나온 사람처럼 두 팔을 활짝 벌려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품 뒤로는 장쾌한 치악산 줄기가, 작품 아래로는 80만 개의 보랏빛 색채가 가득 차 장관을 이룬다. 이곳을 지날 때는 숨을 크게 들이마실 것. 패랭이꽃의 달콤한 향기와 더불어 자작나무 180만 그루가 내뿜는 풍부한 피톤치드가 폐포 깊숙이 파고든다.

자작나무 숲길은 노출 콘크리트와 파주석이 교차하는 십자게이트로 이어진다. 십자게이트는 안도 다다오가 한솔뮤지엄의 특징을 소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노출 콘크리트 건축의 대가로 꼽히는 그는 한솔뮤지엄에 경기도 파주에서 실어온 황톳빛 파주석을 우리네 전통 돌담처럼 쌓아 노출 콘크리트와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한국의 정서를 표현했다. 파주석은 미리 디자인된 모양에 따라 하나하나 다듬어져 꼭 맞는 퍼즐처럼 제자리에 붙여졌다.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잔잔히 흐르는 수면 위로 뮤지엄 본관 전경이 오롯이 떠오르는 워터가든.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십자게이트를 통과하면 산 정상에서 만나는 고요한 물의 정원 워터가든이다.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 아치는 알렉산더 리버만의 설치 미술 작품 ‘아치웨이(Archway)’다. 반복적인 형태를 통해 리듬감과 균형미를 구현한 이 작품은 본관에 이르는 대문 역할을 한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 위로 붉은 아치와 대조를 이룬 파란 하늘이, 초록 나무가, 그리고 자연에 차분히 몸을 맡긴 뮤지엄 본관이 오롯이 떠 있다. 

뮤지엄 본관에서는 현재 개관 기념으로 <진실의 순간>전이 열리고 있다. 본관은 종이박물관 페이퍼갤러리와 국내 근현대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  청조갤러리로 나뉜다. 페이퍼갤러리에서는 종이의 역사와 의미를 담은 작품과 국보,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이곳에 전시된 국보 277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은 방금 막 찍어낸 것처럼 글자가 선명해 한지의 우수성을 증명한다.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뮤지엄을 둘러싼 자연이 한눈에 들어오는 워터가든 카페 테라스. 차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청조갤러리에서는 김환기·박수근·이쾌대·이중섭·도상봉 등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회화·드로잉 100여 점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처럼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이나 월북작가 이쾌대의 ‘군상Ⅱ’와 같이 그동안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과 직접 대면하는 즐거움이 특별한 추억을 남긴다. 탈과 TV 모니터가 탑에 결합한 백남준의 작품 ‘커뮤니케이션 타워’는 하늘이 보이는 원형의 공간에 별도로 설치돼 있다.   

미술관을 나서면 신라 고분에서 영감을 얻어 조성한 스톤가든이 펼쳐진다. 뮤지엄 부지에서 나온 돌을 쌓아 올린 9개의 돌무덤은 한반도 8도와 제주도를 상징한다. 돌무덤 사이사이 조지 시걸의 ‘두 벤치 위의 커플’, 헨리 무어의 ‘누워 있는 인체’ 등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이 어우러져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감각을 일깨운다.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빛의 마술이 선사하는 생경한 전율
스톤가든 아래에는 한솔뮤지엄의 마지막 전시관이자 하이라이트인 제임스 터렐관이 있다. 제임스 터렐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로 빛과 공간의 마술사이자 라이트아트의 선구자로 통한다. 제임스 터렐관은 그의 작품 4개를 한곳에 전시한 세계 최초의 공공 전시관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애초 ‘웨지워크(Wedgework)’ 한 작품만 전시할 예정이었는데 작가가 한솔뮤지엄의 취지와 자연환경에 반해 최신작 3점을 더 전시하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고 한다. 이렇게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호라이즌(Horizon)’, ‘간츠펠트(Ganzfeld)’까지 함께 선보이는 특별전시관으로 계획을 변경하면서 1년이 넘는 개관 연기도 감수했다고. 그 덕에 관람객은 제임스 터렐이 직접 설계한 최적의 전시 공간에서 그의 다양한 작품을 경험하는 행운을 얻었다.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종이의 역사와 의미를 담은 페이퍼갤러리. 2013년 12월 사진 / 주성희 기자

전시관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스카이 스페이스’. 돔 형태의 공간으로 내부를 빙 두른 의자에 앉으면 시선은 자연스레 위로 향한다. 열린 천장이 캔버스. 천장을 통해 실제 하늘과 내부에 설치된 인공의 빛이 만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늘색이 녹색, 주황색, 보라색으로 변하는 마술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맞은편 ‘호라이즌’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된다. 피라미드 모양의 계단 위에 뚫린 정사각 형태의 문으로 하늘과 빛이 쏟아진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며 문밖 풍경을 상상하는데, 무엇을 떠올리든 상상 그 이상이다. 기대 이상의 경이로운 풍경과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전율이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힘들다. 

‘간츠펠트’는 동공의 착시 효과를 이용한 작품이다. 거대한 색종이를 붙인 듯한 벽이 실은 뚫려 있는 공간이라는 것부터 놀라움의 연속. 공간 내부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다. 미세하게 설정된 제어시스템을 통해 서로 다른 2개의 광원에서 투영된 빛의 산란으로 경계가 무너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안갯속에 빠진 듯 아슴아슴 몽환적이다. 

암실에 둘러싸인 ‘웨지워크’는 한없이 뻗어나간 듯한 미지의 공간이다. 빛을 이용해 공간에 선과 면을 나눈 이 작품은 공간에 대한 끝없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본 나오시마 섬의 지추미술관이 ‘웨지워크’ 작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20년 전 버전이어서 한솔뮤지엄의 작품이 훨씬 업그레이드된 것으로 평가된다.

해 질 무렵 뮤지엄을 빠져나오며 12월부터 운영될 예정이라는 제임스 터렐관의 일몰 프로그램을 머릿속에 꼭꼭 담아둔다. 일몰의 다양한 빛깔을 담은 ‘스카이스페이스’를 올려다봤을 때 새하얀 눈꽃송이까지 머리 위로 쏟아진다면 생애 다시 없을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INFO.
관람 시간
뮤지엄 10:30~18:00, 제임스 터렐관 11:00~17:30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뮤지엄 1만2000원, 뮤지엄+제임스 터렐관 통합 2만5000원(성인 기준) 
전시 설명 평일 11:00, 13:00, 14:00 주말 10:30, 11:00, 13:00, 14:00, 15:00 
주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 오크밸리 2길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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