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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걷기 여행] 지리산 서북 능선 바라보며 걷는 옛길
[걷기 여행] 지리산 서북 능선 바라보며 걷는 옛길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3.11.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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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주천] 주천~운봉 구간은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하면서 운봉고원의 너른 들과 여섯 마을을 잇는 옛길이 지금도 잘 남아 있는 구간이다. 특히 10여 km의 옛길 중 구룡치와 솔정지를 잇는 소나무 숲 4.4km는 길의 너비가 넉넉하고 노면이 잘 정비되어 있어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다. (이 글은 곧 출간할 <지리산 둘레길 스토리텔링>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개미정지와 구룡치의 전설

주천면 소재지를 벗어나자 내송마을이 보인다. 마을 앞 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저 멀리 지리산 주능선에는 옅은 구름이 내려앉아 있다.

내송마을을 지나 막 산길에 접어들었는데 개미정지가 보인다. 조선시대 왜구가 자주 출몰할 때 이야기다. 구룡치를 지키던 의병장 조경남 장군이 갑옷과 투구와 신발을 벗어놓고 낮잠을 자는데 느닷없이 개미 한 마리가 발뒤꿈치를 물었다. 단잠을 자던 장군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깼고, 개미가 잠을 깨운 데는 필시 연유가 있을 거라 직감했다. 장군은 개미를 원망하는 대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갑옷과 투구를 쓰고 구룡치로 달려갔다. 그리고 막 고개를 넘으려는 왜구를 선제공격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그 후 장군은 모든 것이 개미 덕분이었다며 이곳에 정자를 지어 개미정지라 이름 지어 기념했다는 이야기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구룡치에 이르는 S자 숲길.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지금 그 정자는 없어졌고 사람도 없지만, 옛길을 걷는 재미 가운데 하나가 이런 옛이야기를 접하는 게 아니겠는가. 가을 산행은 총천연색 단풍 덕에 눈이 호강을 한다. 그러나 구룡치로 가는 동안에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계속 소나무 숲길이 이어질 뿐이다. 오르막길의 경사가 만만치 않다. 큰 산은 아니지만 오르막이 제법 길다. 20분 정도 걸린 듯하다. 구룡치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기다란 지리산 만복대가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지리산 둘레길이 이쪽으로 난 것은 멀찍이서 지리산을 감상하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구룡치에서 커다란 용이 누워 있는 듯한 미끈한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 죽은 나뭇가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먼 옛날 이 길로 산 너머 사람들이 봇짐을 짊어지고 남원장에 다녔다고 한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주천면 내송마을 입구에 있는 쉼터 음식점.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둘레꾼의 시장기를 달래주는 쉼터 국수.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길을 다니던 사람들은 힘들고, 지루하고, 따분했을 것이다. 산나물이나 곡식, 장작을 내다 팔고, 생활용품을 사서 짊어지고 다녔을 그들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구룡치를 넘어 내려가는데 오른쪽에 소나무 두 그루가 껴안고 있는 ‘사랑소나무’가 보인다. 족히 100년은 더 되었음직한 소나무다. 누군가 사랑에 굶주리다 소나무 두 그루를 서로 껴안게 해주고 대리 만족을 한 것은 아닐까? 조금 더 가자 큰 소나무 아래 돌무더기가 서너 개 쌓여 있다. ‘사무락다무락’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돌담을 쌓으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바람이 쌓이고 쌓여 뭇 세월을 넘기면서 돌무덤을 만들었고, 이제는 여행객에게 이정표가 되어준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수백 년째 노치마을을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대간 수정봉 아래 노치마을
소나무 숲길을 벗어나자 작은 도로가 나타난다. 도로변에 비닐하우스 쉼터가 있다. 막걸리, 파전, 국수, 도토리묵 등을 파는 간이 쉼터다. 옛날에도 있었을 것이다. 봇짐을 짊어진 사람들이 산길을 걷다 지치고 힘들면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며 시름을 씻어냈을 것이다. 여행객들을 따라 쉼터에 들러 국수와 막걸리로 시장기를 달랬다. 하우스 쉼터 주인 엄금댁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차도로 10여 분 걸어가자 왼쪽으로 노치마을이 보인다.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마을이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운봉읍 삼산리에는 소나무 숲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성삼재에서 만복대와 정령치를 거쳐 수정봉에 이르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고기리에서 수정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노치마을 입구에는 어른 두 사람이 팔을 뻗어야 껴안을 수 있는 수백 년 된 당산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초에 당제를 지낸다. 예수나 부처가 이 땅에 오기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했다. 나무 아래서 당산할미에게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때 70여 가구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백두대간을 타는 등산객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한 노치샘이 있다. 요즘에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샘물을 마시기에 적합하다는 행정 당국의 표시가 있지만 선뜻 물맛을 보기에는 망설여진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운봉읍에 있는 지리산 토종 흑돼지 전문 식당의 모둠구이. 축산 기술의 권위자 박화춘 박사가 육종 개발한 흑돼지고기이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가끔 우물 청소를 해주면 좋으련만. 샘물은 두 갈래로 흘러간다. 왼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진주 남강으로, 오른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남강이나 섬진강의 발원지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노치샘을 뒤로하고 다시 운봉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노치마을을 벗어나면 운봉 땅이다. 산길로 접어드는데 오른쪽으로 저수지가 보인다. 덕산저수지다. 한때 겨울 철새가 많이 찾아왔다는데 근래 3년 남짓 철새가 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덕산저수지를 끼고 숲길을 걷는데 소나무들이 참 예쁘게 자라고 있다. 동복 오씨 문중 산이라는데 후손들이 산을 정성 들여 잘 가꾸는 모양이다. 그런데 산 한쪽이 깎이다 말았다. 누군가 이곳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공사를 시작했다는 소문이다. 수도권에 있는 골프장도 손님이 줄어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구룡치 숲길을 내려오면 회덕마을에 이른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부자와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한 행정·삼산마을
가장마을은 너른 농토를 가진 마을이다.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우람한 정자나무로 보아 유서 깊은 마을인 듯싶다. 가장(佳庄)마을. 예전에는 화장을 뜻하는 장(粧) 자를 썼다. 먼 옛날 선녀가 내려와서 화장을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선녀가 내려와서 화장을 했을까! 세걸산, 고리봉, 수정봉에 둘러싸여 있으니 아늑하기 그지없다.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개울을 따라 걷는데 들판에 벼가 없다. 조금 전 주천에서는 황금물결을 이루던 들판이 황량하고 쓸쓸하다. 운봉 일대의 해발고도가 주천보다 500m나 높아서 기온이 3˚C 차이가 난다. 따라서 모내기를 다른 지역보다 먼저, 전국에서 가장 빨리 할 거라고 한다. 밭작물은 고랭지 채소 대우를 받는다.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가자 행정마을과 삼산마을이 나온다. 행정마을에는 서어나무 숲이 있고, 삼산마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 공원이 있다. 서어나무 숲은 300여 년 전 마을에 재난이 자주 발생하던 차에 지관이 와서 마을의 나쁜 기운이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가운데 숲을 조성하라는 조언을 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서어나무를 심었고, 그 후로는 마을에 흉사가 없었단다. 서어나무 숲이 보호림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가장마을 뒤쪽에 있는 덕산저수지. 2013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행정마을 정계임 이장은 “근래에도 이 마을 출신 중 서울 명문대에 합격한 사람이 여럿 있고, 예로부터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다리 건너 삼산마을에는 한때 천석꾼이 살았다. 지리산 일대는 한국전쟁 때 경찰과 빨치산 대원들이 밤낮으로 전투를 벌이던 마을이 많이 있다. 그 시절 가장 안타까운 일은 전쟁 직전까지 얼굴을 맞대고 살던 이웃 사람들이 좌우로 갈려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인 일이다. 그 싸움은 대개 빈부의 차, 학식의 차, 신분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삼산마을에서는 천석꾼이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싸움을 벌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서로 베풀고 도우면서 살았던 것이다. 삼산마을에서 하천을 따라 걸어가면 운봉(雲峰)읍에 이른다.    

참으로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여행객을 반긴다. 마치 오래 전에 떠나온 고향을 다시 찾은 느낌이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이웃집 누님이 양팔을 벌리며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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