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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꼭 가봐야 할 가을 길] 오대산 446번 지방도 딱 10월까지만 아낌없이 보여드립니다
[특집 꼭 가봐야 할 가을 길] 오대산 446번 지방도 딱 10월까지만 아낌없이 보여드립니다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8.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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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오대산 446번 지방도.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홍천] 단풍이 고개를 드는 가을이다. 어느 산이나 울긋불긋한 단풍이 장관이지만 조금은 특별한 단풍놀이를 즐기고 싶다면 오대산으로 향해보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들 중에서는 드물게 산의 남북을 관통하는 길이 있다. 바로 446번 지방도의 한적한 비포장길이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바닥이 훤히 보이는 계곡물에 떠 있는 낙엽.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내린천 상류인 계곡물은 그냥 마셔도 될만큼 깨끗하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우선 말해두자면 이 길은 10월 31일까지만 다닐 수 있다. 446번 지방도 전체가 그런 게 아니라 홍천 내면 명개리의 오대산국립공원 내면 분소에서 시작해 상원사 안내소까지의 길만 그렇다. 이 길은 아직도 포장이 안 된 숲길로 일년 중 여름~가을에만 한시적으로 다닐 수 있는 길이다. 그것도 하루에 6시간 정도만 출입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길이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은 산을 보호하는 의미가 있겠고, 일부 구간에서 길이 험하다보니 겨울에 눈이 오면 차량 통행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해서 그런 것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 길은 아는 사람만 아는,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길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월정사 전나무 길을 걷는 관광객.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아침 9시. 어제까지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출입이 제한되었던 탓에 오늘은 어찌될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늘은 바람만 조금 불 뿐 비는 그쳐 출입이 허락된다. 관리소에서 이름과 주소 등을 적어 간단하게 출입신고를 하고 차를 몬다. 

앞서 들어간 차나 뒤에 대기하고 있는 차나 4륜구동이 대부분이다. 그런 와중에 경차를 몰고 저 비포장길을 가려는 기자가 걱정스러운지 관리원은 조심해서 차를 운행하라고 재차 주의를 준다. 그래도 이제까지 이 차로 못 간 곳이 없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느냐며 바리케이드를 넘는다.   

조심스레 들어선 숲길은 그야말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바닥까지 그대로 보일만큼 깨끗한 계곡물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는데, 이 물길은 나중에 내린천과 합쳐지는 계방천의 최상류이다. 얼마나 물이 깨끗하고 고운지 차에서 내려 발이라도 담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각이 굴뚝같건만 함부로 계곡에 들어가는 일 또한 이곳에서는 불법행위에 속하는지라 시키지 않는 짓은 그만두기로 한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누군가의 소원이 쌓아올려진 돌탑.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아직은 가을이 일러 불꽃같은 단풍이 펼쳐지진 않았으나 불과 며칠만 있으면 이글이글 불타는 단풍들이 숲을 뒤덮으리라. 숲에는 전나무를 비롯해 단풍나무, 참나무, 자작나무 등이 빽빽하게 들어서 낮이라도 하늘이 보이지 않고 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나무들이 이렇게 많고 차는 거의 다니지 않으니 그 상쾌함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차의 창문은 네 개 모두 활짝 열어놓은 지 오래다. 그저 숨쉬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마냥 정신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곳곳에서 길이 험해지기 때문이다. 작은 자갈들은 산사태에서 굴러 나온 것들이라 모서리에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이곳에서 웅덩이라 함은 정신을 홀딱 빼놓을 정도로 깊다. 자칫 잘못하면 핸들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만만치 않은 비탈에선 기어를 1단으로 내리고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기도 한다. 물론 4륜구동의 지프 정도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지만 승용차로는 아무래도 조바심이 난다. 

내면에서 상원사까지는 약 18km 정도의 거리다. 국립공원측에서는 이 거리를 2시간 이내에 통과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굳이 숲에 차를 세워놓고 소풍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면 조금의 시간 초과는 눈감아주는 듯하다. 아무리 숲길이라고 해도 엄연히 ‘지방도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너무 오랫동안 길에 차를 대놓는 것은 실례가 되는 행동일 게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두로령에서 바라본 오대산의 능선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진다. 같은 길이라도 그 풍광의 차이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어느새 계방천 물길의 방향은 다른 곳으로 틀었고, 이제 물길 대신 오대산의 산허리들이 눈밑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푸름에서 붉은 파스텔톤 옷을 바꿔 입기 시작한 오대산의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마침 구름이 비켜나고 파랗게 드러나는 가을 하늘은 눈을 황송하게 할 정도다.  

하지만 높은 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쨍한 하늘을 우러러보며 잠시 감탄에 젖어 있자니 이내 먹구름이 빠르게 몰려와 한껏 소나기를 뿌리기 시작한다. ‘후드득’ 빗물이 차 천장을 때리는가 싶더니 이내 숲속의 나무들에게도 ‘투두두둑’ 비를 내린다. 그 소리가 어찌나 듣기 좋은지 비가 오는데도 창문을 열어놓고 벙실벙실 웃으며 앉아 있었다. 

느닷없는 가을비에 몸을 적신 명산의 속살은 한층 더 때깔이 고와진다. 마치 신혼 첫날밤 목욕을 하고 이내 신랑에게 몸을 맡기는 새색시의 새빨간 볼처럼 붉어진다. 

이내 소나기가 멈추고 숲은 다시 청명한 공기를 내뿜는다. 굽이굽이 돌아 나올 때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는 오대산의 능선은 눈이 지루해지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손과 발이 바쁜 만큼 눈과 귀도 구경하느라 바쁘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단풍이 물든 오솔길.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길을 계속 오르면 이내 한껏 가파라지는 길을 오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두로령’이다. 두로령을 경계로 홍천에서 평창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두로령은 해발 1310m로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보다 250m 정도밖에 낮지 않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차량통행이 가능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비포장도로이기도 하다. 가까운 곳에 ‘두로봉’이 있어 곳곳에 차를 세워놓고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 차도 좀 쉬게 해줄 겸 잠시 산세를 둘러보며 여유를 부린다. 

사실 이 길은 내년을 기약할 수 없다. 이제까지는 하절기에 한해 개방이 되었지만 내년에 이 근방의 소유처가 바뀌게 되면 차량 출입뿐만 아니라 등산로도 완전히 폐쇄될 수도 있단다. 그렇게 되면 오대산을 종단하는 숲길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자연보호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환영할 일이지만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천년의 숲길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더욱 깊게 숨을 내쉬게 된다.  

다시 차를 몰아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곳이 많은 길이지만 왠지 이제는 반환점을 돌았다는 사실에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당도한 북대 미륵암. 인근의 큰 절에서 수행을 하던 스님들이 올라와 있는 곳이라는데, 참선 수행을 하고 있으니 출입을 금해달란 표지판과 “미륵암은 들어가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라고 당부하던 관리소 직원의 말을 떠올리며 발길을 돌린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아직도 야생동물이 곳곳에서 출현하니 절대 주의!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곳곳에서 발견하는 이름 모를 작은 폭포들. 2008년 9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드디어 이 길의 끝인 상원사관리소에 당도하니 사람들의 시선이 차로 향한다. ‘험한 산길을 뭔 놈의 저런 작은 차가 내려왔냐’는 눈길이다. 혹자는 “이 길 위에 무엇이 있더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무어라 딱히 대답할 것이 없어 “두로봉 가는 길이에요”라고 둘러댔지만, 속으로는 “안 가봤으면 말을 마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상원사 주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2시간여의 한적함에서 다시 왁자지껄함으로 돌아온 기분은 참으로 오묘하다. 일상으로 돌아와버렸다는 섭섭함과 분주함에 대한 반가움이 교차한다. 

이 어색한 기분은 남은 길을 달리면서 달랜다. 상원사부터 월정사까지 길은 곧고 반듯한 시멘트 길이지만 오대천의 물길과 나무들의 속삭임은 명산을 관통하는 숲길의 깊은 여운을 이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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