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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여행 레시피] 여수~고흥, 섬과 섬을 잇다…사랑과 추억과 낭만을 잇는 브릿지투어
[여행 레시피] 여수~고흥, 섬과 섬을 잇다…사랑과 추억과 낭만을 잇는 브릿지투어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0.05.12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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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고흥 잇는 연륙ㆍ연도교 따라 브릿지투어
방풍나물로 인해 온통 초록으로 물든 둔병도
섬의 생김새가 여우를 닮아 이름 붙은 '낭도(狼島)'까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수~고흥간 네 개의 섬에 놓인 다리를 통해 여객선 대신 자동차로 오갈 수 있게 됐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여수, 고흥] 바다와 바다 사이, 공깃돌처럼 누웠던 네 개의 섬에 다리가 놓였다. 1시간 넘게 바닷길에 몸을 맡겼던 이들은 흔들흔들 여객선 대신 이젠 자동차로 휭, 그 섬들을 오갈 수 있게 됐다. 

“여수시 화정면 적금도와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팔영대교 개통을 시작으로 수년째 계속된 여수~고흥간 다리 공사가 지난 2월 하순 완공됐다. 네 개의 섬, 그러니까 적금도와 낭도를 잇는 적금대교, 낭도와 둔병도를 잇는 낭도대교, 둔병도와 조발도를 잇는 둔병대교, 조발도와 여수시 화양면을 잇는 조화대교(가칭) 덕분에 섬은 육지와 다를 바 없게 됐다.”

여수의 연도교 공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화양면과 백야도를 잇는 백야대교(2005년)와 화태도와 돌산도를 잇는 화태대교(2015년)가 진즉에 들어섰지만 백야도와 바다로 멀어진 제도~개도~월호도까지 가닿는 다리도 머잖아 들어설 계획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수시 적금도와 고흥군 영남면을 잇는 팔영대교. 여수시는 섬과 섬을 잇는 11개의 다리 공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방풍나물로 초록 동산을 이룬 둔병도 전경.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수와 고흥을 연결할 11개의 다리가 모두 개통되면 여수는 지금보다 훨씬 활기찬 해양관광도시로 거듭날 터! 바닷길을 이용해 섬을 오갔던 주민들도 숨통이 트이게 됐다. 2026년 여수세계섬박람회 개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어찌 되었든 2월 28일, 고흥과 여수를 잇는 다섯 개의 연륙ㆍ연도교가 개통되면서 코앞에 두고도 멀리 돌아가야 했던 두 지역 간 운행 거리는 약 80km에서 30여km로 줄었다. 다리만 놓고 보면 딱 15분 거리. 조만간 ‘섬섬여수 브릿지시티투어’도 운행할 예정이다.

방풍나물이 만든 둔병도​의 초록 동산
여수에서 고흥으로 갈 것이냐, 고흥에서 여수로 갈 것이냐, 잠시 고민을 하다 여수 출발로 방향을 잡는다. 낭도에서 점심을 먹고, 고흥군 과역면 커피마을에서 향긋한 커피로 여독을 푸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말끔히 정비된 도로는 ‘새것’의 냄새를 풍기며 의기양양하게 바다로 뻗어 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거대한 다리가 놓였다. 화양면과 조발도를 잇는 조화대교다. 다리 곁엔 버스 번호(26-1, 29)가 적혔다. 고흥 우두를 출발해 적금, 여산, 규포, 둔병, 조발, 나진 등을 왕복할 마을버스 운행 전까지, 임시로 오갈 노선버스 번호다.

마을 모양이 말 등처럼 생겨 평지도 없고 높은 산도 없어 이웃 주민들 사이에선 ‘삐뚤이’ 동네로 불리는 첫 번째 섬 조발도에 닿는다. 해가 뜨면 섬 전체를 일찍 밝힌다고 해서 ‘조발’이 된 이 섬은 관광지가 아니다. 다리가 놓이면서 마을도 이래저래 공사로 분주하다. 외지인을 반갑게 여길 시국도 아닌 터라 마을 입구를 서성이다 둔병대교를 건너 둔병도로 이동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향이 독특한 둔병도의 방풍나물.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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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마을 풍경이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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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섬은 여전히 고즈넉한 풍경으로 외지인을 맞는다. 주민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둔병도 이름엔 여러 뜻이 있다. 마을 앞 해안이 무한정 길어서 명주실 한끝이 다 들어가도 끝이 없는 ‘용굴’이란 뜻의 둔병,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산하 수군이 고흥 방면으로 이동하다 잠시 주둔한 곳이라 둔병(屯兵), 혹은 마을의 형세가 꼭 둔병(연못)처럼 생겨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는 설 등이다.

이름 유래는 중요하지 않다. 섬으로 들어선 순간 바다보다 빛나는 초록 동산에 마음을 온통 빼앗기니까. 허둥지둥 동산으로 올라 섬을 내려다본다. 가깝게 보이는 적금대교와 팔영대교의 실루엣도 좋았지만 시멘트 다리로 연결된 부속 섬 풍경에 심장이 요동친다. 섬은 온통 초록으로 물이 들었다.

뒷동산을 내려와 작은 섬 하과도로 간다. 언덕을 이룬 둥근 섬은 방풍나물 천지다. 채취시기를 놓친 너른 잎들이 바닷바람에 흔들렸다. 2월 하순부터 3월까지 수확을 끝내지만 꺾은 줄기에서 새잎이 계속 돋는 효자 나물이다. 끝물의 나물이 뭍에서 온 여행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냥 갈 수 없다. “어르신, 방풍나물 만 원어치만 주세요!” 굽은 등의 할머니는 거침없이 낫질한다. 베어진 줄기에서 특유의 향기가 난다. 자루 부대는 자꾸만 배가 불러왔다. 그만, 그만 주셔도…. 결국 사정하다시피 낫질을 말리지만 이미 자루는 무거워서 들 수도 없을 만큼 빵빵해졌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낭도는 다리가 놓인 섬 중 가장 크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낭만의 섬, 당신에게 낭도!
섬의 생김새가 꼭 여우를 닮아 ‘이리 낭(狼)’ 자를 써 낭도가 된 이 섬은 다리가 놓인 4개의 섬 중 가장 크고, 큰 만큼 볼거리도 많다. 하여 다리가 놓이기 전부터 여행 마니아들에겐 이미 소문난 명소였다. 차에서 내리기 전 ‘당신에게 낭도’, ‘사랑이 이루어지는 섬’ 등의 문구가 새겨진 예쁜 벽화마을 여산과 규포마을을 드라이브 삼아 돌아본다.

갓난아기도 없는 섬 도로변에 유모차 십여 대가 주차됐다. 뭐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물이 빠진 사이 섬 안의 아낙들은 갯벌로 내려섰다. 지금은 바지락 철이다. 낡은 유모차는 할머니들의 손수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의 모습.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산으로 돌아와 낭도주조장으로 향한다. 낭도에 왔다면 낭도 젖샘막걸리는 반드시 먹어, 아니 사가야 한다. 운전자가 따로 있다면 양껏 마셔도 그만이다. 화산섬이어서 예부터 물이 귀한 낭도엔 일곱 개의 샘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산모의 마른 젖을 솟게 했다는 젖샘이다. 낭도막걸리는 이 샘물로 만든다. 100년간 이어온 주조장 도가식당에 앉아 새콤달콤한 서대회무침과 모락모락 손두부로 허기를 달랜다. 맛있다, 숟가락이 입안에 들어갈 때마다 반사작용처럼 감탄이 쏟아진다.

낭도에서 가장 높아 임진왜란 당시 봉화를 올렸던 상산(280.2m) 산행도 좋지만, 바다를 곁에 둔 ‘낭만 낭도 섬둘레길’ 1구간만 걷기로 한다. 4km가 안 되지만 여기저기 구경하고 거닐 곳이 많아 1시간 30분은 잡아야 한다. 폐교가 돼 야영장으로 쓰이는 화양중학교 낭도분교 앞에서 바다 쪽으로 길을 잡는다. 이젠 여수보다 고흥이 훨씬 가깝다.

남열해수욕장 곁 나로도우주발사전망대가 등대처럼 솟아 길잡이가 된다. 공룡 발자국으로 유명한 사도는 말할 것도 없다. 백야도에서 출발한 배는 사도를 거쳐 낭도로 갔었는데, 정작 사도엔 다리 건설 계획이 없다. 수문장인 티라노사우루스 두 마리가 낭도에서도 보인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낭도의 젖샘에서 난 샘물로 만드는 낭도막걸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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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낭도 섬둘레길 1구간은 4km가 안 되지만 구경하며 거닐 곳이 많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계절을 따라 초록으로 물이 든 숲길을 걷다가 신선대 바다로 내려선다. ‘신선이 살만한 곳’이라 하여 신선대가 되었다지만 그 옛날 공룡이 살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여수시 화정면 사도와 낭도 일대는 우리나라 최대의 공룡 발자국 화석지다. 천선대의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다. 쉬엄쉬엄 암반 위를 거닐다 산타바 오거리에서 차를 세워둔 분교로 돌아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깨끗하고 푸른 낭도의 바다를 조망하며 걸음을 옮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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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반 위를 쉬엄쉬엄 거니는 재미도 빠트리기 아쉽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제 적금대교 너머, 1940년대까지 금광을 캤다는 적금도를 지나 가장 길고(1340m) 멋있는 팔영대교를 건너면 고흥 땅이다. 과학기술로 지어진 다리는 거대하고 우람하지만 교각 사이의 섬들은 여전히 바다에 소속된 땅, 그 자체로 낭만이 된다. 매디슨 카운티의 빨간 지붕다리 만큼은 아니겠지만 섬과 섬을 잇는 브릿지투어는 봄과 여름을 잇는 계절의 연결고리에서 짭조름한 낭만여행이 되어준다.

원데이 여수~고흥 여행 레시피
①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에서 조화대교를 건너 조발도에 닿는다. 마을을 잠시 둘러보고 둔병대교를 건너 둔병도로 이동한다. 둔병도는 섬을 둘러싼 방풍나물이 초원을 이뤄 예쁜 섬이다. 마을주민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1시간쯤 둘러본 후 낭도대교를 건너 낭도로 진입한다.
② 낭도는 네 개의 섬 중 가장 큰 곳이므로 먼저 차를 타고 돌아본다. 이후 낭도주조장에서 운영하는 도가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섬둘레길 1구간을 걷는다. 약 4km에 쉬엄쉬엄 1시간 30분쯤 걸린다. 상산 산행이나 둘레길 2구간 등을 걸어도 좋다.
③ 낭도에서 적금대교를 건너 적금도로 간다. 중간에 휴게소 2개가 있다. 적금도를 지나 팔영대교를 건너면 고흥군이다. 다리 입구에 매점과 수산물판매점이 있다. 다리만 놓고 보면 15분 거리지만 각 섬과 마지막 기착지 고흥군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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