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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이루리의 성곽여행] 산성 역사 속엔 사람 사는 냄새 가득, 세계유산 남한산성
[이루리의 성곽여행] 산성 역사 속엔 사람 사는 냄새 가득, 세계유산 남한산성
  • 이루리 여행작가
  • 승인 2020.05.1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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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계유산
가벼운 산행과 성곽길 산책을 두루 경험할 수 있어
돌무더기 나르며 산성 지키던 산성마을 사람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남한산 자락을 따라 이어진 남한산성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광주] 남한산 자락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남한산성. 신라시대에 처음 축조돼 천 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선 모습이 빠른 시대 속에 더 듬직하고 꿋꿋하다. 혼란한 시대에 백성과 나라를 지켰던 남한산성은 2014년엔 유네스코로부터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됐다. 7.7km 성곽을 옆에 끼고 걸으며 광활한 자연 속에서 문득 아늑함을 느낀다.

계절은 어느새 속도를 내 앞으로 달려 나간다.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이즈음에는 막 나온 초록 이파리들이 경쟁하듯 무성해진다. 어린이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청소년처럼,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뿌리에서부터 가지 저 끝 작은 잎사귀들에까지 영양분을 힘껏 밀어 올린다. 그렇게 나무는 키가 크고 풍성해진다. 꽃을 떨어뜨린 자리에 무성하게 잎을 피워 올리는 계절, 5월이다.

7.7km 산성길 따라 걸으며
남한산성은 남한산(522m) 위에 길게 이어져 있다. 서울의 동남쪽 끄트머리에서 성남, 광주, 하남을 아우르는 남한산성은 어느 쪽으로 올라도 가벼운 산행과 성곽길 산책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남한산 등산로 입구에서 시작해 산자락을 올라 성곽을 걷거나 혹은 차를 타고 남한산성 행궁까지 편히 오른 후 능선을 따라 성곽길로 가벼운 산책을 해도 된다. 성곽길 따라 걷다 보면 경기도 광주와 성남은 물론 서울 동부의 풍경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성곽길 돌 틈으로 바라본 봄날의 풍경.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산길을 따라 걷고 싶다면 성곽 바깥으로, 편한 도보길로 걷고 싶다면 성곽 안쪽으로 걸으면 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남한산성에는 성곽을 끼고 산책하기 좋은 코스가 8km가량 이어져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성벽을 따라 7.7km에 이르는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4시간쯤 걸린다. 짧지 않은 거리다. 시내에서 산성마을까지 들어오는 9, 9-1번 버스를 타고 행궁이 자리한 산성로터리에 내리면 성곽길 걷기가 시작된다. 남한산초교 옆길을 따라가다가 북문부터 시작해 한 바퀴 돌아 걸을 수 있다. 행궁 오른쪽으로도 길이 나 있다.

산성 따라 걷는 길은 오르내림이 없어 힘겹지 않고 성곽을 따라 소나무 밑을 유유자적하게 걸어보는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성곽길만 따라 걷는다면 등산복이나 등산화도 필요치 않다. 체력적으로 산행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코스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은 전체가 자연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수도권 최대의 소나무 보존지구이기도 하다. 서울 근교에서는 드물게 80~100년생의 소나무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자연발생적인 것만은 아니다.

1900년대 초 무분별한 벌목이 한창이었던 시절, 남한산성의 마을 사람들이 벌목을 금하는 금림조합을 만들어 소나무를 심고 보호했다. 덕분에 성곽 주위로 키 큰 노송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성곽길 걷기를 우아하게 만들어 주는 주인공들이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성곽 주위에는 키 큰 노송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누구나 걷기 편한 산책로로 이어진 산성길.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산책하는 이들을 굽어보고 있는 소나무는 자상한 어머니같이 누구에게나 그늘을 드리워 준다. 군집을 이룬 노송의 위엄 속에서도 부드러움이 공존한다. 몇백 년을 살아오며 적잖이 지켜봐 왔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나무에도 진득하게 묻어 있을까. 산성에 쌓인 돌들처럼 켜켜이 쌓인 역사가 소나무의 몸속에도 나이테가 되어 가만히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산성 주위에 밀집한 200여 개의 문화재와 수많은 설화 역시 남한산성의 역사를 가만히 들려주고 있다.

TIP 남한산성 탐방코스
남한산성은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에서 먹거리촌을 지나 등산로로 향하거나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에서 9, 9-1, 52번 버스를 이용해 산성로터리에 하차하면 진입할 수 있다.
1코스 산성로터리~북문~서문~수어장대~영춘정~남문~산성로터리(3.8km, 1시간 30분)
2코스 산성로터리~영월정~숭렬전~서문~수어장대~산성로터리(2.9km, 1시간)
3코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현절사~벌봉~장경사~망월사~동문~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5.7km, 2시간)
4코스 산성로터리~남문~남장대터~동문~지수당~개원사~산성로터리(3.8km, 1시간 30분)
5코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동문~동장대터~북문~서문~수어장대~영춘정~남문~동문~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7.7km, 3시간 30분)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인근 풍경을 시원하게 굽어볼 수 있는 성곽길.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돌무더기 나르며 산성 지키던 산성마을 사람들
남한산성은 그 전체가 자연보존지구이자 도립공원이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지만, 내부에는 자연부락을 이루고 사는 산성마을이 있다. 남한산성과 산성마을의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12년에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해 축성됐다. 산성내부에 임금이 임시로 기거할 수 있는 별궁인 행궁을 비롯해 관아와 객사뿐 아니라 종묘와 종각까지 마련했다. 산성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그러한 내부 시설들을 유지하고 관리할 관리들이 대거 필요했고 그로 인해 많은 수의 관리들과 그 식솔들이 산성에 마을을 이루며 살게 됐다. 이것이 산성마을의 유래다.

분지형 지형에 포근히 들어앉은 산성마을은 울릉도의 나리분지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소란 없이 고요하기만 한 나리분지에 비해 산성마을은 외지인의 출입이 잦아 늘 번잡하긴 하지만 외부로부터 격리된 지형적 느낌만은 비슷하다. 산성마을의 옛 이름도 ‘너른 고을’이었다.

산성마을에는 손두부를 비롯해 백숙 등을 파는 식당이 모여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남한산성을 지키던 산성마을은 지금은 주말이면 시끌벅적해지는 유원지가 되어 있다. 한옥으로 지어진 집들은 백숙과 도토리묵, 파전 등 전형적인 등산 코스의 메뉴를 파는 식당이 됐다. 하지만 이 역시 산성마을 사람들이 보존지구인 이곳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방편이다. 밥벌이의 방식은 변했어도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뿌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 대째 산성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산성마을은 역사적 시설물들 사이로 초등학교와 파출소, 교회처럼 사람 사는 동네에 흔히 있을법한 시설들도 두루 갖추고 있다.

겉으로는, 그리고 낮에는 외지인에게 백숙을 파는 식당이었다가 밤이 되면 식당은 사람 사는 집이 된다. 집 안 깊숙이 들어가면 여느 마을의 집들과 다름없다. 누군가는 남한산성을 번잡한 유원지 정도로 느낄지도 모르지만 역사의 편린을 간직한 그 깊은 속내는 어쩌면 전혀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수어장대 등 군사요충지가 곳곳에 위치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영화 속 남한산성, 절박했던 시절의 설경을 그리며
마천역 쪽에서 산행부터 시작하면 서문(우익문)을 지나 수어장대(守禦將臺)를 만난다. 수어장대는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으로 적의 공격에 대비해 관측과 군사 지휘를 하던 시설이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대표적인 명소이자 성안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문득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과 이를 원작으로 한 이병헌, 류승룡 주연의 영화 <남한산성>이 떠오른다. 영화 <남한산성>의 설경을 상상하며 산성길을 걷는다. 스토리는 잊었어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설경에 압도됐던 기억이 선명하다. 설경 속에서 산성 주민들이 돌무더기를 치맛자락으로 나르며 성을 지켰던 장면,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왜구에 맨몸으로 맞서던 백성들의 절박함이 가슴에 남아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남한산성 서문 전망대. 송파구 일대 등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풍경을 감상하는 여행객들의 모습.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남한산성의 중심, 성곽을 둘러싸고 분지에 들어앉은 행궁은 임금이 서울의 궁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다.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에 임금이 한양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도 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인조 14년(1636년)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47일간 항전했으며, 영화도 이때의 이야기다.

임금에게는 최고의 요새이기도 했던 남한산성에는 서문(우익문), 북문(전승문), 동문(좌익문), 남문(지화문)의 4대문 외에도 10여 개가 넘는 암문이 있다. 암문은 말하자면 비밀통로다. 적에게는 드러나지 않고 이쪽 편만 아는 쪽문이다. 성곽길을 걸으며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암문을 찾아본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남한산성의 숱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을 비밀 문이다. 이 문에서 저 문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사람이 오고 갔을까. 얼마나 많은 비밀과 사랑과 밀담과 배신과 정치가 이루어졌을까. 얼마나 많은 삶과 죽음과 이생과 저 생이 오고 갔을까.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행궁 왼쪽 길을 따라 10~15분쯤 오르면 능선 위 성곽길에 닿는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건 간에 민초들이 목숨 바쳐 지켜냈던 남한산성의 오늘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함박눈 소담히 내린 어느 겨울날 다시 한번 찾아오리라 마음먹는다. 다시 찾을 남한산성의 한 편 돌무더기에 작은 돌멩이 하나 사뿐히 올려놓는 것으로 약속을 대신한다.

INFO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주소
경기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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