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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김준의 섬 여행 37] “우리 섬은 복 받았어라” 전남 신안군 영산도
[김준의 섬 여행 37] “우리 섬은 복 받았어라” 전남 신안군 영산도
  • 김준 작가
  • 승인 2013.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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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스케치=신안] 신안군 흑산도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영산도. 한때 생활고로 주민들이 빠져나가 폐촌이 된 마을까지 생겨났으나 이제는 국립공원에서 조성한 명품마을로 지정되어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심지어 지난여름엔 숙소 예약이 힘들 정도로 신명 나는 어촌으로 변신하고 있다.

섬, 위기를 맞다

“하하하. 나는 기릴 줄 몰라.”

얼굴을 가리고 연신 웃음을 쏟아내는 박금례 할머니. 얼마 만에 보는 해맑은 웃음일까.  누가 팔순을 앞둔 할머니의 웃음이라 할까. 낮에 말린 미역이 눈에 아른거린 것일까. 아니면 팔아서 손자들 용돈 줄 생각을 하니 즐거운 걸까. 도화지에 미역 두 가닥을 그렸다. 미역귀도 빠뜨리지 않고 그려 넣었다. 귀가 없는 미역은 제값을 받기 어렵다. 그림을 지도하던 선생님도, 부뚜막에 모인 열댓 명의 주민들도 할머니의 그림과 수줍어하는 모습에 웃음보따리가 빵 터졌다. 박 씨만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이 선택한 그림 소재는 톳, 미역, 호미, 바다, 빗창, 돌담집 등 자기 주변에 있는 흔하지만 소중한 것들이다. 40~50년 만에 크레파스를 처음 잡아본 분도 계셨다.

영산도에는 영산화가 많이 핀다는 ‘영산리’와 액운이 든 마을이니 외부 사람은 이주해오지 말라 했다는 ‘액기미’ 두 마을이 있었다. 액기미는 오래전에 폐촌이 되어 흔적만 남았다. 숲길은 탐방로로 개선 중이다.  

영산도는 흑산도와 뱃길로 10분 거리에 있지만 뭍으로 나간 주민조차 발길이 뜸한 섬이었다. 이 작은 섬마을이‘명품마을’로 지정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국립공원에 포함된 마을 중 공원지구 해제를 원하지 않고 자연과 문화가 잘 보전된 지역을 선정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영산도는 바다가 거칠고 의지할 곳이 없어 흑산도처럼 양식을 하기도 적당하지 않다. 한때 멸치잡이로 명성이 높았지만 연이은 태풍이 그물과 함께 희망까지 걷어가버렸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섬을 떠났다. 남은 이는 뭍에 나가 살기 힘든 나이 든 사람이나 누대에 걸쳐 살아온 고향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영산리는 20여 가구가 미역과 톳과 홍합을 채취하며 사는 작은 섬마을이다. 최근 국립공원에서 추진하는 명품마을로 선정되어 지속 가능한 섬마을로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남도 문화의 시작점

도대체 영산도가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이냐, 궁금해할 것 같다. 흑산도 동쪽에 있는 작은 섬이다. 흑산도에서 작은 도선으로 5분여 거리에 있다. 호남의 젖줄이라는 영산강이나 홍어거리로 유명한 영산포의 유래를 영산도에서 찾을 수 있다. 

섬마을에 왜구 침입이 잦았던 고려시대로 올라간다. 왜구 때문에 나라에서는 골머리를 앓았다.<동국여지승람> 전라도 나주목조에 “본래 흑산도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 남포에 옮겨 살았으므로 영산현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영산도 주민들은 왜구를 피해 영산강 하류에 위치한 ‘남포(오늘날 영산포)’에 정착했다. 그리고 강변의 갈대에 불을 놓아 농사를 짓고 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았다. 영산포가 중요한 뱃길과 포구로 발전하면서 강도 영산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결국 남도의 젖줄이자 남도 문화의 큰 줄기인 영산강은 작은 섬 영산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톳과 미역은 영산리 주민들에게 1년 농사나 다름없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명품마을’로 새로운 기회를 맞다
마을 이장 최성광 씨는 국립공원의 도움을 받아 마을을 변화시킬 방법을 고민했다. 외지 자본이 들어와 개발된 곳은 대개 주민들이 청소나 식당 일을 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견뎌내지 못하면 섬을 떠났다. 영산도를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주민과 함께 영산도가 간직한 생태자원과 문화 자원을 활용해 섬 관광지를 꾸며볼 생각이었다. 기회가 왔다. 국립공원에서 명품마을을 선정해 지원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가 명품마을로 조성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것도 그의 결심을 부추겼다. 국립공원의 문을 두드리고 공원지구에서 해제하지 말아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모두들 재산권 침해 때문에 규제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역발상을 한 것이다. 국립공원에서도 영산도가 보유한 자원과 주민들의 열정을 높게 평가해 명품마을로 선정했다. 그리고 마을펜션, 공동 식당, 탐방로, 벽화 사업 등을 추진했다. 문을 열고 첫 번째 맞는 여름휴가철에 대박이 났다. 펜션과 옛 보건소를 리모델링한 숙소는 예약이 밀려들었다. 한번 찾아온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아 입소문이 금세 퍼졌다. 관광객만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입소문은 섬을 떠난 주민들에게도 퍼졌다. 40여 년 만에 서울을 비롯해 각지로 떠난 주민들이 고향을 방문했다. 그리고 서로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고향이 이렇게 좋아질 줄 몰랐다는 것이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이상 기온으로 수온이 차가워 다른 섬은 자연산 해초를 구경하기가 힘든데 영산도에선 꽤 많은 미역과 톳을 채취했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마을 앞길엔 어제 뜯은 미역이 가득했다. 어머니 한 분이 그 옆에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는 톳을 널고 있었다. 아침에 마을 주민들이 채취한 톳이다. 점심 무렵이 되자 보름사리에 태풍까지 북상하고 있어 파도가 높았다. 주민들이 허겁지겁 뛰어나와 미역을 걷고 톳은 물이 넘치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빈집 마당에 미역을 널어놓은 한순금 할머니는 느긋했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홍합을 채취할 때나 가까운 곳을 이동할 때는 작은 떼배를 이용해 이동하기도 한다. 명품마을로 지정된 후 체험용으로 개발하고 있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영산도는 복 받았어라.” 기프미(심리)에서 영산도로 시집와 40여 년 동안 미역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우리는 작년보다 많이 했어라. 본섬은 한 가닥도 못했다고 하요.” 작년에 ‘서 뭇’을 했지만 금년에는 자그마치 ‘열다섯 뭇’이다. 한 뭇은 미역 스무 가닥을 말한다. 조도 일대의 작은 섬과 신안의 먼 섬 주민들은 미역이 흉년이라 울상이다. 그런데 영산도는 사정이 다르다. 그 덕에 금년에 미역값이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다. 작년에 한 뭇에 20만원 했으니까 올해 한 씨는 400만원을 거뜬히 넘길 것 같다. 게다가 금년에 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지정되어 관광객이 줄을 잇고, 심심찮게 높은 양반들도 들락거린다. 한 씨가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니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작은 섬에 클래식 선율이 흐르다
영산도 어머니들의 여름은 특별하다. 미역을 뜯고 톳을 말리며 1년 농사를 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섬을 찾는 사람들의 식사도 어머니들의 몫이었다. “노래고 뭐고 끝나면 자야제”라고 하시더니 어머니들은 그림 그리기가 끝나자 ‘부뚜막’ 앞 공연장으로 모여들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그림을 그리지 않은 주민과 일부 관광객도 ‘부뚜막’ 앞으로 모였다. 그래 봤자, 40여 명이나 될까.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전남문화예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신안문화원이 주관한 ‘그림 이야기’와 ‘작은 음악회’는 섬사람들에게 신선한 활력소가 되었다. 2013년 10월 사진 / 김준 작가

“섬 놈은 클래식 들으면 귀가 부르튼다요?” 작은 섬에서 ‘클래식 공연’을 기획한다는 말을 듣고 내심 고개를 갸우뚱했다. 뽕짝이라면 모를까. 성악가, 바이올린, 신시사이저로 구성된 공연이라니. 그런데 의외의 반전이었다. 특별히 무대라고 할 것도 없다. 나무 평상을 무대로 삼고, 의자 몇 개가 객석이 되었다. 광고는 이장의 두 차례 방송이 전부였다. 그래도 객석이 꽉 찼다. 그림 그리기와 함께 음악회는 전남문화예술재단의 지원으로 신안문화원이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파도 소리를 잠재웠다.‘여인의 향기’, ‘나 가거든’, 브람스의 ‘헝가리댄스’가 연주되었다. 평소 접하지 않았던지라 쑥스러워하던 어머니들도 금방 바이올린 선율에 젖어들었다. 이어서 바리톤 유환삼의 노래가 이어졌다. ‘동백아가씨’와 ‘섬집아이’ 그리고 ‘목포의 눈물’에 이르자 합창으로 바뀌었다. 공연은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다. 공연은 끝났지만 음악회는 끝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주민들이 정자에 앉아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주체하지 못했다. 한 주민의 선창으로 어머니들의 뽕짝 메들리가 이어졌다. ‘흑산도 아가씨’가 빠질 수 없었다. 오래도록 막걸리와 안주가 이어졌다. 처서를 앞둔 명품마을, 영산도 뒷산의 달도 휘영청 밝게 떠올랐다.

INFO.
목포 연안터미널에서 흑산도까지 7:50, 8:10, 13:00, 16:00 하루 4차례 배가 있다. 
요금 3만4300원, 흑산도(뒷대목)에서 영산도까지 10:20, 15:30 2차례 도선이 운항한다. 
비용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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