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4월호
[탐방! 어촌체험마을] 트레킹 할까? 뱃놀이 나갈까?  굽이굽이 비경, 군산 장자도
[탐방! 어촌체험마을] 트레킹 할까? 뱃놀이 나갈까?  굽이굽이 비경, 군산 장자도
  • 최혜진 기자
  • 승인 2009.05.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군산 장자도 전경.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군산] 푸른 바다를 품에 안고 뛰노는 섬 아이와 마주하고 나서 도시 아이들의 생활이 얼마나 무미건조한지 새삼 깨달았다. 특히 굽이굽이 보석 같은 비경이 쏟아지는 군산의 장자도에서는 부모가 구구절절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트레킹을 하며, 뱃놀이를 하며 한가로이 섬의 구석구석을 즐기면 될 일이다.  

군산여객터미널을 출발한 장자페리호는 1시간 20분 만에 고군산군도의 평화로운 섬, 장자도에 객을 내려놓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섬의 비경에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것을 예고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방인의 방문이 그리 달갑지가 않은 것일까. 섬은 거친 파도를 일으키며 그 어여쁜 속살을 어떻게든 숨기려 애를 쓰는 듯하다. 하지만 뒤로 한걸음 물러서는 상대에게 더 호기심이 발동하듯 장자도에 더 바짝 다가가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평화로운 섬의 첫인상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긴 모양이다.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장자봉에 오르는 산책로.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걸으며 느끼자, 섬 트레킹 
한시라도 빨리 섬의 속살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다행히 배가 닿는 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길이 환하게 열렸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은 산책로로 이어졌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니 산책로 주변으로 숨겨진 섬의 비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방이 확 트인 쪽빛 바다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한데, 파도와 어우러진 기암괴석과 통통배 하나는 너끈히 삼킬 만한 시커먼 굴까지 풍경이 가히 장관이다. 

모두 자연의 손길로 빚어낸 기기묘묘한 작품이다. 무리를 지어 나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고요한 정적을 깬다. 한 폭의 동양화에 음향이 더해졌다. 

6~7년 전 쯤 군산시에서 조성한 산책로는 장자도 섬을 에두르는 길이다.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길을 평평하게 닦아놓아 쉬엄쉬엄 걷기에도 좋고, 하이킹을 하기에도 그만이다. 길을 따라 어촌인의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마을도 보이고, 거름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고사리밭도 나온다. 그렇게 20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섬을 모두 돌아보는 데에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굽이굽이 절경을 맛보는 섬 트레킹.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하지만 트레킹 거리가 짧다고 해서 아쉬워할 것은 없다. 산책로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장자대교를 따라가면 명사십리 해변으로 유명한 선유도와 연결되고, 왼쪽으로 난 현수교를 따라가면 장자봉이 솟은 대장도와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도, 선유도, 대장도를 포함하는 고군산군도는 이렇게 마치 하나의 섬인 듯 자유롭게 소통하고 있다. 따라서 트레킹 코스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산책로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대장도의 장자봉에 오르기로 했다. 섬 산행의 시작점에 나무 데크가 조성되어 있어 한결 오르기 편하다. 장자봉 산행은 왕복 40~50분의 가벼운 코스라 가족 산행으로도 무리가 없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잘게 부서진 자갈돌이 쌓인 곳이 더러 있어 그곳은 피해야 한다는 것. 너럭바위를 골라 오르는 편이 안전하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야생화 향기가 짙어진다. 향긋하고 달달한 꽃향기가 진하게 온몸을 휘감았다. 지천에 핀 야생화와 꽃나무를 관찰하며 15분쯤 오르면 봉우리 사이로 삐죽이 올라온 장자할매바위가 있다. 그 할매바위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언덕 위의 산책로에서 굽어본 마을 풍경.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가마우지의 배설물로 뒤덮힌 하얀 ‘똥섬’.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할아버지가 과거에 급제할 수 없는 운을 타고났기에 할머니는 수많은 세월 정성껏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간 할아버지는 어느 사대부집 외동딸의 글선생으로 들어갔고, 그 여자와 눈이 맞아 그 집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훗날 15년이 지나 과거에 급제한 할아버지는 소실 부인과 손을 맞잡고 장자도 본가로 내려왔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가 기가 막혀 술상을 든 채로 뒤를 돌아 그대로 돌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장자할매바위에서 5분만 더 오르면 섬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베스트 뷰 포인트’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바다 위에 떠 있는 장자도의 실루엣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어깨 위에 쌓여 있던 삶의 무게는 어느새 갯내 섞인 산바람에 날아간 듯 가벼워졌다.

‘어기여차’ 뱃놀이 나가볼까? 
섬의 첫인상에 너무 강하게 매료된 탓일까. 이렇게 산책로를 따라, 등산로를 따라 섬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는데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엔 통통배를 타고 섬을 둘러보는 ‘보트 유람’에 나섰다.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걸으며 보지 못한 섬의 비경을 가슴에 담을 차례다. 배를 섬 가까이로 가져가 보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풍경에 취해도 본다. 그런데 섬 사이에 얌전히 들어앉은 ‘하얀’ 섬이 신기하다. 유독 석회를 바른 듯 하얀 빛깔을 띠는 저 섬의 정체는 무엇일까. 동행한 윤주형 사무장이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준다.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장자도는 알만한 ‘꾼’들은 다 아는 바다낚시터이다. 20분 만에 자연산 도다리가 낚여 올라왔다.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섬 풍경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인 보트 유람.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장자대교 주변의 풍경이 장관이다.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저짝 섬에 앉아 있는 시꺼먼 새가 가마우지지라. 가마우지 똥이 쌓이고 쌓여서 허연 섬이 돼야분 거지요. 어찌 가까이 한번 가볼랑가?” 

하얀 섬은 가마우지의 배설물이 쌓이고 쌓여 빗물에도 씻기지 않고 파도에도 꿋꿋할 만큼 단단하게 굳어진 ‘똥섬’이었다. 갈매기보다 홀쭉하고 몸이 검고 미끈한 가마우지를 이용해 중국에서는 색다른 낚시를 즐긴단다. 방법이 참 재미있다. 목에 긴 줄을 달아놓은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낚아채면 잽싸게 목줄을 끌어당긴다. 이때 목에는 줄이 꽁꽁 묶여 있어 목구멍으로 물고기를 넘기지 못한 가마우지는 꼼짝없이 눈앞에서 낚시꾼에게 먹이를 내줘야 한다. 기상천외한 낚시법에 절로 웃음이 났다. 

옆에 나란히 붙은 작은 섬에서는 새까만 야생 염소도 자란다. 유유히 섬을 노닐고 있는 염소는 산더덕을 주로 먹는다. 이 염소가 몸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한때 불법 포획꾼이 기승을 부렸는데, 결국 마을 주민의 감시망에 걸려 어마어마한 벌금만 물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단다. 어쨌거나 보기 드문 희귀 동물과의 만남이 내내 즐겁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을 보는 것보다 훨씬 신이 난다.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뻘 반 조개 반’ 바지락이 풍성한 장자도.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장자도의 밤을 밝히는 장자대교의 야경. 2009년 5월. 사진 / 최혜진 기자

뱃길로 섬 유람을 마쳤다면 바로 인근 해안가에 나가 낚시를 해도 좋고, 자연산 홍합을 채취해도 좋다. 특히 귀하디귀한 도다리가 잘 낚인다고 해서 그냥 돌아설 수가 없다. 미끼로 어린 새우를 끼워놓고 찌를 바닥에 댄 채 기다렸는데, 20분 만에 초보자의 낚싯대엔 놀래미, 베테랑의 낚싯대엔 도다리가 낚여 올라왔다. 직접 낚고 바로 먹는 싱싱한 자연산 회의 맛은 가히 말이 필요 없다. 

섬 주변으로 빼곡한 홍합을 채취하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하다. 조새질 몇 번이면 손아귀에 홍합이 수북하다. 이제껏 술안주로 맛보던 홍합탕의 크기를 상상했다면 기대치를 좀 더 높여도 좋다. 껍데기가 붉은빛을 띠는 자연산 홍합은 크기도 크기이지만 알이 꽉 차 있다. 장자도 홍합은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어느새 장자도를 굽어보던 해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면 아래로 숨겼다. 순식간에 마을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이고 정적만이 감돈다. 볼 것 많고, 할 것도 많은 장자도에서의 하루가 아쉽기만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