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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여름아 부탁해 ③ 산] 산행과 냉면, 여름엔 짝꿍처럼 하나로! 경남 사천 와룡산
[여름아 부탁해 ③ 산] 산행과 냉면, 여름엔 짝꿍처럼 하나로! 경남 사천 와룡산
  • 황소영 객원기자
  • 승인 2020.06.10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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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와룡산
먼 옛날 한 마리 새의 쉼터가 되어준 '새섬바위'
여름에 즐기기 제격인 사천과 진주냉면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천 와룡산은 아흔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구구연화봉'이라고도 불린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사천] 바다와 땅, 하늘길이 고루 열린 교통의 요충지 사천은 청정바다의 싱싱한 수산물과 유람선으로 돌아보는 한려수도의 비경, 연기조사가 창건한 다솔사,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린 비토섬, 항공우주과학관과 해상케이블카 등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이 풍부한 도시다. 

삼천포항 서쪽에 자리한 각산(408m), 산림욕하기 좋은 이구산(370m), 하동 이명산(570m)과 연계 산행이 가능한 봉명산(408m) 등 사천에도 여러 명산이 있지만 그 어느 산도 와룡산(801.4m)의 위세를 넘어서긴 힘들다. 와룡산은 아흔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구구연화봉’으로도 불리는데, 그 모양이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 산은 지금 초록초록
와룡산을 오르는 가장 무난한 길은 백천사 코스다. 의상 혹은 의선대사가 창건한 백천사는 그 옛날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고려 현종 등이 국태민안을 위해 기도했던 호국 도량이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돼 명맥이 끊어져 숱한 세월 방치돼 있던 것을 1990년대 초부터 현 주지가 복원해 지금에 이른다. 백천사에서 가장 유명한 건 길이 13m, 높이 4m의 목조 와불과 와불 몸속의 작은 법당이다. 많은 이들이 금빛 와불 앞에서 허리를 굽혀 소원을 빈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고려 현종 등이 국태민안을 위해 기도했던 호국 도량 백천사.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등산로 옆으로 흐르는 시원한 계곡.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민재봉을 지나 새섬바위에 닿기까진 곧고 넓은 길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백천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불이암선원을 지나 2km를 올라서면 용치마을과 석불암으로 길이 나뉘는 백천골 입구에 닿는다. 보통 한 시간에 4km쯤 걷는다지만 햇살이 쏟아지는 포장도로를 오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운동 삼아 산행에 나섰다 해도 이럴 땐 걷는 게 딱 질색이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등산로 초입엔 이미 몇 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다. 그늘 아래 누운 차들은 돌아올 주인을 기다리며 달콤한 잠에 빠져있었다. 이 앞에서 백천재 거쳐 민재봉은 2.7km, 백천사부터 걸었다면 4.7km가 되는 거리다.

산 만큼 계절의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 등산로로 들어선 순간부터 훅, 초록의 싱그러움이 예고도 없이 밀려왔다. 모공 속으로 들어온 초록 바람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미세하게 흔들고 있었다. 꼼꼼하게 볕을 막고 선 숲은 한낮에도 어두울 정도다. 길 우측으로 바짝 다가서니 저 아래로 계곡이 보인다. 물가로 내려서는 길도 있다.

산행은 조금 전 시작됐지만 열기는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급할 게 없으니 내려가 보기로 한다. 골짝의 수분이 합쳐진 물은 한껏 수량을 불린 채 산 아래로 흘러내렸다. 두 개의 저수지를 가득 채운 와룡의 물은 임무가 모두 끝나면 사천만에서 바다와 몸을 섞는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천 8경에는 와룡산 철쭉이 속하지만 철쭉이 없는 계절에도 예쁜 산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너덜지대를 지나 계속되던 오르막은 백천재에 닿으면서 편해진다. 민재봉 300m 전부턴 ‘사천 8경’에 속하는 철쭉 군락지다. 철쭉이 절정일 때 와도 좋지만 초록이 절정일 때 와도 아쉽진 않다. 간혹 붉은 꽃잎을 단 나무가 여태 남아 아쉬운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한다. 이제 민재봉을 지나 새섬바위에 닿기까진 곧고 넓은 길이다. 사방이 훤해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INFO 백천사
주소
경남 사천시 백천길 326-2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정표엔 갈림길이라고 적혔지만 실제 내려서는 길은 없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민재봉과 새섬바위
와룡산엔 ‘섣달그믐날 밤이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의 산맥 체계를 도표로 정리해 편찬한 ‘산경표’에 누락된 게 섭섭해서, 아흔아홉 골로 한 골짜기가 모자라 백 개가 못 된 게 아쉬워서, 혹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사천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민재봉을 깎아내린 게 분하고 억울해서……. 그러고 보니 민재봉은 800m에서 딱 1m가 모자란 799m다. 민재봉보다 2m쯤 더 높아 정상이 된 새섬바위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둥글납작한 민재봉과는 달리 새섬봉은 아찔한 바위 덩어리다. 누워있는 용의 등 비늘에 해당되는 모양이다. 바위에 절반쯤 가려진 사천 앞바다는 미세먼지에 싸여 연회색으로 보였다.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지금껏 걸어온 능선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산도 더위에 지쳤는지, 아니면 걸어온 이들이 흘린 땀방울이 흙 위에 버무려져서인지, 능선 위 공기는 끈적끈적 늘어졌다. 바다는 여름의 열기를 가득 싣고 내륙으로 밀려들었다. 바람은 산의 마음을 꿰뚫고 있나 보다. 이번엔 바다에서 골짜기에서 바람이 분다. 하늘도 숲도 그제야 상쾌하게 흔들린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온통 초록으로 덮여 한낮에도 어두울 정도인 와룡산의 숲.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민재봉과는 달리 암봉이 인상적인 새섬바위 부근.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암릉 끝에는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새섬봉은 ‘먼 옛날 와룡산이 바다에 잠겼을 때 이곳에 새 한 마리만 앉을 수 있었다’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저 바다가 산의 높이까지 넘실댔던 억겁의 과거에도 이 암봉은 한 마리 새의 쉼터가 되어 주었다. 문득 산이 바다였던 시절과 바다가 산이었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어쩌면 그때 이 산엔 계곡 곳곳을 누비고 다녔을 고래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능선 좌우로 두 개의 사찰이 보인다. 서쪽엔 오전에 지나온 백천사와 만덕전 불상이, 동쪽 기슭엔 봄이면 겹벚꽃으로 화사한 청룡사다. 초록 몸뚱이의 산과 짙푸른 바다, 너른 들녘과 사천 시내 풍경도 조그맣게 내려다보인다. 새섬봉 다음도 거대한 바위 봉우리다. 곳곳에 위험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지만 등산로만 따른다면 큰 위험은 없다.

암릉 끝은 너덜지대다. 가파른 내리막길 가운데 누군가 쌓아올린 돌탑이 있다. 와룡산 주변에 유난히 사찰이 많아 깜짝 놀랐는데, 이 돌탑에도 산의 영험함에 기대고픈 누군가의 소망이 담겼을 테다. 조심 조심 발을 디뎌 돌길을 벗어난다. 이번엔 거대한 바위벽이다. 사면에 바짝 붙은 계단을 밟고 내려서면 공원처럼 넓은 도암재에 닿는다. 왕관바위와 상사바위가 근처지만 오늘은 패스! 죽림동 방향으로 길을 꺾어 내려서면 하산이 코앞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와룡산은 그 모양이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TIP 와룡산 산행
백천골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내비게이션의 경우 백천농원(백천길 456)을 입력한다. 백천재~민재봉~새섬바위~도암재~약불암까지는 총 6km로 넉넉히 5시간쯤 걸린다. 백천사에서 시작하면 2km가 늘어 8km가 된다. 약불암 하산 후엔 택시 등을 이용해 초입인 백천골로 돌아간다. 요금은 1만원 안팎이다.

여름에 제격, 사천과 진주냉면
사천의 대표적 먹거리 열 가지, 즉 ‘사천의 맛 10선’은 물메기탕, 복국, 해물정식, 해물탕, 물회, 생선회, 백합죽, 도다리쑥국, 붕장어 그리고 냉면이다. 무엇 하나 맛있지 않은 게 없지만 땀으로 범벅이 된 산중에서 가장 먹고 싶은 건 시원한 냉면일 수밖에 없다.

본래는 겨울철 땅 속에 묻어둔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먹은 것에서 유래했지만 냉장고의 보급으로 여름에도 먹기 시작했다는 냉면, 그중에서도 사천과 진주냉면은 먼 곳의 사람들도 부러 찾아와 먹는 요리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육전과 고명이 두둑하게 올라간 사천과 진주 일대의 냉면.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주로 한우에 달걀옷을 입혀 구워내는 육전.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이 일대 냉면은 각종 재료를 오랜 시간 고아 만든 깊고 진한 육수, 육전ㆍ지단 등 다양한 고명,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든 생면으로 인기가 높다. 달걀옷을 입혀 구워낸 육전은 타 지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두툼해 씹는 맛을 더한다. 살얼음 가득한 육수를 들이키고 쫄깃한 고동색 면발과 탑처럼 높게 쌓인 고명을 입안에 넣고 씹어본다. 더위로 축 쳐진 몸에 활기가 돈다.

사천에서 제일 유명한 냉면 전문점은 ‘재건냉면’이다. 보통 한우로 육전을 굽지만 이 집은 돼지고기로 만든다. 당연히 소고기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겐 반전의 맛이다. 잡내는 없애고 담백함은 더해 소고기 육전과는 다른 매력을 준다.

사천 옆 진주는 ‘하연옥’과 ‘황포냉면’이 유명하다. 대기표를 받고 줄을 서야 하지만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 맛이다. 황포냉면 벽면엔 겨자와 식초를 넣지 말라고 적혔다. 그래야만 육수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시중 냉면에 익숙해진 손님은 그 부탁을 어길 때가 많다. 주인도 그걸 아는지 식탁마다 식초와 겨자를 구비해뒀다. 한 번쯤 냉면 본연의 맛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슴슴한 국물로 입안을 헹구고 식당을 벗어난다. 올여름 내내 사천ㆍ진주의 냉면 맛에 빠져 허우적댈 것 같아 걱정 아닌 걱정이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두께가 두툼해 씹는 맛이 좋은 육전은 냉면과 함께 먹곤 한다.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INFO 육전
달걀옷을 입혀 구워낸 육전은 두께가 두툼해 씹는 맛이 좋은데, 주로 냉면과 함께 주문해 먹는다. 얇게 채 썰어 고명에 올리는 기본 재료이기도 하다. 사천 재건냉면, 진주 하연옥, 황포냉면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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