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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화려한 부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일으킨 한옥 도래마을 옛집으로 ‘집들이’ 오세요 
[화려한 부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일으킨 한옥 도래마을 옛집으로 ‘집들이’ 오세요 
  • 최혜진 기자
  • 승인 2009.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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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부활한 시민유산 3호 나주 도라마을 옛집.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광주]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다 쓰러져가는 한옥집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민의 손으로 가꾼 문화유산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민유산 3호로 지정된 나주 도래마을 ‘옛집’을 한가로이 노닐었다.  

영국의 리버풀에는 ‘멘딥스’라는 별칭을 가진 집이 있다. 바로 비틀즈의 멤버 존 레넌이 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공간이다. 그는 유리창이 인상적인 2층 침실에서 ‘Please please me’ 등의 히트곡을 썼다. 마흔넷에 생을 마감한 뒤 이곳엔 다시 한 번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레넌의 아내 오노 요코가 그의 자취가 남은 ‘멘딥스’를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그후 ‘멘딥스’는 비틀즈의 음악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성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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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으로 복원된 도래마을 옛집의 별당채. 사진 / 최혜진 기자

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를 통해서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자산을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이다. 1800년대 후반 산업혁명으로 오래된 기념물이 파괴되고 자연이 훼손되자, 영국의 헌터가 내셔널트러스트법을 발족했다. 자연이나 문화자산이 개인의 힘으로 보존하기에 부족하여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기금을 조성하고, 보존된 자산을 다시 시민에게 돌려주는 운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발족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 해피콩이나 싸이월드 도토리로 기부하는 시민들도 크게 늘었을 만큼 내셔널트러스트에 대한 인식도 확대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시민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옥은 총 세 채인데, 그중 시민문화유산 2호인 나주 도래마을 옛집이 얼마 전 새 단장을 마쳤다. 마치 정겨운 친구의 초대로 ‘집들이’에 가는 양 옛집을 구경하러 나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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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마을의 옛 영화를 짐작케 하는 계은정. 사진 / 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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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옛집 지킴이들이 한옥 단장에 쉴틈이 없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도래마을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광주역에서 도래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번호는 180번인데, 방향이 다 제각각이다. 똑같은 번호를 달고도 도래, 중장터로 가는 것도 있고, 영산포, 봉황 가는 것도 있고, 또 산포, 박실 가는 것도 있어 영 헷갈린다. 게다가 1~2시간마다 다니는 버스 시간표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겨우 버스를 잡아탔더니 기사 아저씨 말씀이 “1시간에 한 대라도 고맙제. 15년 전만 해도 거기는 오지라 버스도 안 들어갔어” 하신다. 도착하기도 전에 마을 풍경이 눈에 훤하다. 

그렇게 50분이 걸려서 도착한 도래마을. 곳곳에 한옥이 지척이다. 어느 것이 옛집인지 알 수 없어서 오가는 주민에게 옛집을 물었다. 

“아, 거시기 내셔날인가 뭐시깅가 거그, 거그 얘기하는 거여?” 하시는데, 속사포같이 쏟아진 단어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몇 초 후 속으로 슬며시 웃음이 지어졌다. “네, 맞아요! 내셔널트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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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도라지며, 상추며 작물을 심어 가꾼 마을 한옥. 도래마을에서 집집마다 다른 한옥을 보는 재미가 그만이다.  사진 / 최혜진 기자

마을 입구에서 옛집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단다. 도래마을이라고 쓰인 돌비석이 있는 곳이 입구이고, 거기에서 쭉 가다가 영호정과 양벽정 사이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오른쪽이 옛집이다. 

나무 대문을 똑똑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갔더니 근사한 한옥이다. 한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옥이 곱고 멋스럽다. 연륜은 느껴지되 허름하지 않고, 기품을 갖추고 있으며 정갈하다. 

도래마을 옛집은 전통가옥이 모여 있는 도래마을의 가장 중심에 자리한 근대 한옥이다. 1963년에 지어졌고, 공간을 이용하는 용도에 따라 칸 살이를 자유롭게 배열하는 19세기 후반 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에 시민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크다고 판단해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지정하고 보존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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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호 권진규 아틀리에. 사진 / 최혜진 기자

옛집 지킴이 이연옥 씨가 본채 옆의 사무실에서 나와 나를 반가이 맞아준다. 햇볕을 충분히 쏘인 빨래를 방금 걷어 입은 듯한 하얀 개량한복이 한옥과 잘 어울린다. 그녀는 옛집의 교육, 문화, 관리를 담당하는 8명의 식구들과 함께 문간채, 별당채, 안채를 복원했다. 문살에 창호지를 붙이고, 바닥에 한지 장판을 발랐고, 습기가 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틀에 한 번 아궁이에 불도 때주었다. 오늘도 꽃 씨앗을 파종하고, 마당을 쓸어야 한다. 

도래마을은 옛집 이외에도 국가지정 문화재, 전라남도지정 문화재 등 웅장한 한옥들이 많다. 그중 전라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홍기응 가옥은 옛집의 바로 옆이다. “어허험” 기침소리부터 예사롭지 않은 할아버지가 홍기응 가옥의 문을 열고 나온다. 시종일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면서 사진은 절대 찍지 말라며 엄포를 놓으신다.   

“이 가옥 지킬라고 늘그막에 여기 내려와서 사는 거제. 이거 내비둬불면 결국에 못 쓰게 돼분다고….”

사진 / 최혜진 기자
홍기창 가옥은 정원이 참 예쁘다. 전라남도 민속자료 9호로 지정되었다. 사진 / 최혜진 기자

그 연세에도 서울에서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할아버지는 의무감인지 자부심인지 모를 어떤 것에 이끌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여기에서 가옥을 지키고 있다. 고치고 덧댄 삶의 흔적이 가옥 구석구석에 배어 있지만, 그 덕분에 이 집은 아직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옛날 풍산 홍씨 하면 알아줬제. 남평 땅이 다 홍가들 땅이라는 말이 날 정도였당게. 1년에 만석지기 쌀을 쌓아놓을 만큼 부자였어. 장서에 고서들도 넘쳤지. 지금은 다 도둑 맞아가꼬 보여줄 것도 없지만…. 당시엔 아마 속없는 양반 행세에 주위 주민들이 고달팠을 것이여.” 

하지만 그 영화는 어디 가고 덩그러니 한옥만 남았을까. 돈이고, 명예고, 세월 앞에 이리도 덧없는 것이거늘. 

수첩에 한자로 또박또박 이름을 써주신 홍갑석 할아버지는 홍기창 가옥을 가리키며 집이 예쁘다고 가보라신다. 홍기창 가옥으로 가는 길도 멀지 않다. 몇 집 지나지 않아 ‘울긋불긋 꽃 대궐’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원도 크고, 꽃도 많고, 가옥도 예쁘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집이라 들었는데 누가 이렇게 가꿔놨을까? 점점 가옥 근처로 갈수록 실마리가 풀린다. 숨바꼭질하듯 정원 사이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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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응 가옥을 지키고 있는 홍갑석 할아버지가 수첩에 또박또박 이름을 써주신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이렇게 매일매일 집 단장하세요?”
“그람, 별일 없으면 만날 허는 거여.”
“꽃도 이렇게 다 심으신 거예요? 할미꽃 너무 예쁘네요.”
“아니 이건 내가 심은 건 아닌데, 광주서 딸네들이 주말에 놀러 오니께, 할미꽃은 거서 심었는갑네.”

놀라운 것은 가옥이 비워진 것이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광주에서 주말마다 들른다는 딸들도 그렇지만, 주민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이 집 양반 돌아가신 지 한 20년도 넘었제. 그때부터 비워놨는디, 그래도 참 보존이 잘된 거여. 오는 사람들 다들 예쁘다고 헝게. 기자 처자가 봐도 참말로 그렇게 이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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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마을 옛집의 대표지기 이연옥 씨. 사진 / 최혜진 기자

하루 종일 도래마을의 한옥이란 한옥은 모두 휘젓고 다녔다. 그렇게 마을을 돌고 나니 전통을 지키며 생활하느라 답답할 것만 같았던 한옥이 참 자유로운 구조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손님 맞기를 좋아해 별당채를 몇 칸 더 늘린 한옥도 있고, 작물을 좋아해서 마당에 상추며 도라지를 심은 한옥도 있다. 담 위에 넝쿨을 감아둔 한옥도 있고, 가옥 앞에 못을 파놓은 한옥도 있다. 주인의 취향에 따라 공간을 내고 줄일 수도 있고, 담의 높낮이도 조정할 수 있으니 이렇게 현명한 집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에 반해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똑같은 평수에 똑같은 구조를 가진 공간이 몇 백 개, 몇 천 개씩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 속에서 쳇바퀴 돌듯 비슷한 생활을 하며 한옥이 불편하고 갑갑하다 말한다.  

이런 연유에서 자유로운 가옥구조를 가진 도래마을 옛집이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시민의 손으로 일으킨 옛집은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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