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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미식 기행] 말랑말랑한 겨울 바다가 입속으로! 1년을 기다린 맛, 굴
[미식 기행] 말랑말랑한 겨울 바다가 입속으로! 1년을 기다린 맛, 굴
  • 송수영 기자
  • 승인 2009.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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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굴 그림. 사진 / 송수영 기자 

[여행스케치 = 굴] 스키나 스노보드에 빠지면 연중 겨울을 기다린다고 한다. ‘굴’을 좋아하는 미식가 역시 제철인 한겨울이 오기를 내내 손꼽지 않았을까? 겨울철 최고의 별미, 영양까지 최고인 굴을 맛보러 충남 보령으로 떠났다.     

“퍼억, 타닥, 탁.”
빨갛게 올라오는 불 위에서 석화가 익어가면서 여기저기 테이블마다 불시에 굉음이 터진다. 말하자면 ‘굴 익는 소리’다. 

그제야 돌인 듯 단단해 보이던 석화가 이글거리는 불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입을 살짝 열었다. 이제나저제나 하며 진즉부터 애가 타던 미식가는 ‘옳다구나!’하며 긴 집게를 손에 들고 살짝 틈이 벌어진 사이를 무자비하게 헤집어 한쪽 껍질은 버리고 살이 있는 쪽은 다시 불 위로! 그는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이제 조금 있으면 느끼게 될 꿈의 식도락 세계에 빠져 있다. 

굴이 구워지고 있다. 사진 / 송수영 기자

이제 하얀 속살을 완전히 다 드러낸 굴은 포말 같은 거품을 토해내며 조금씩 색이 짙어진다. 원래 생으로도 먹는 음식이니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굴이 익는 정도에 따라 맛이 다 다르니까…”라고 코치하는 식당 주인장의 말마따나 조금씩 정도를 달리하여 여러 개를 다 먹어본다. 

어떻게 먹어도 굴은 입에서 슬그머니 잘도 녹는다. 고소한 육즙이 입 안 가득 퍼지며 고소함과 짠맛이 뒤섞인다. 고소함은 통통하게 오른 굴의 살맛일 게고, 짠맛은 그를 넉넉하게 키워준 바다의 맛일 게다.  

굴이 들어간 돌솥밥. 사진 / 송수영 기자

식당 창문 너머로 반짝이는 바다를 흘끔흘끔 쳐다본다.            

드디어 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본디 날것을 잘 먹지 않는 서양에서조차 오래전부터 유일하게 굴을 즐겨 먹어 ‘R’자가 들어가지 않는 달에는 굴을 먹지 말라는 통설이 전해진다. 우리는 늦가을부터 시작해서 한겨울에 가장 맛이 오르고, 보리가 피면 더 이상 먹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날씨가 추워지면 시내 술집이며 중국집 등엔 ‘굴짬뽕’ ‘굴튀김’ 등의 계절 메뉴가  선보여 입맛을 다시게 만들지만, 역시 제 맛은 산지에서 직접 먹는 것을 따라올 수가 없다. 

식당마다 산처럼 쌓여있는 석화. 사진 / 송수영 기자

전국에서 유일하게 ‘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는 충남 보령의 천북면 장은리 굴구이촌에도 이미 11월 중순부터 전국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11월엔 아직 천북 앞바다에서 난 굴 살이 여물지 않은 탓에 통영이나 여수 등에서 가져온 양식 굴이 주를 이룬다. 12월이 되어야 본격적인 자연산 천북 굴의 시즌이다. 

이곳이 굴로 유명해진 데는 바닷물과 민물이 알맞게 섞여 있는 자연조건도 그렇지만, 바로 굴구이의 원조인 탓도 있다. 굴구이가 생겨난 데는 이곳 바닷가에서 일하던 아낙네들이 추운 겨울 굴을 까다 모닥불에 구워 먹던 데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맛도 맛이지만, 불 위에서 직접 굴 껍데기를 까면서 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그에 못지않다.  

현재 이곳 천북 굴구이촌에는 90여 개의 식당이 성업 중이다.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모퉁이를 돌아도 계속 이어지는 굴식당의 행렬에 놀랄 것이고, 가득가득 쌓인 굴 더미에도 압도된다. 보통 식당 입구가 좁아 규모가 작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들어가 보면 내부가 깊숙이 넓고 테이블 수도 많다. 천북 굴구이촌이 생기기 전부터 굴 장사를 했다는 ‘선창굴수산’의 복순주 사장은 “글씨 테이블이 많은 것 같아두 주말이믄 한가득 차. 지난 주말엔 굴이 없어서 못 팔았슈” 한다. 

갓 들어온 굴을 씻고 있다. 사진 / 송수영 기자

아닌 게 아니라 신종플루가 유행하는  바람에 그러지 않아도 영양의 보고로 알려져 있는 굴이 한층 더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신체 면역력을 키우는 3대 식품으로 인삼, 버섯과 함께 굴이 꼽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독감 증상이 나타나고 24시간 안에 아연을 섭취하면 증상이 한층 완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어패류 중에 아연이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이 바로 굴(40mg%)이니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다. 

그 외에도 굴에는 칼슘 함량이 쇠고기의 약 8배, 비타민 A는 17배나 되며 간장 해독기능이 뛰어나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는 식품으로도 유명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굴을 완전식품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몸에 좋아도 맛이 없으면 자연 멀리하게 마련인데, 굴은 맛까지 좋다. 덕분에 굴의 인기는 꾸준하여 이곳 천북 굴구이촌이 생겨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이곳에서 깐 굴 껍데기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굴구이를 먹은 뒤 굴밥과 굴칼국수까지 함께 나누어 먹으면 환상의 굴 코스 요리가 완성된다. 

천복 굴구이촌 앞 소박한 포구. 사진 / 송수영 기자

천북 굴구이촌 외에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전라남도 진도군 임해면 죽림해수욕장 앞 도로변에도 겨울에 한시적으로 굴구이촌이 생긴다. 갯흙과 해초 등이 그대로 붙어 있는 자연산 굴을 커다란 드럼통 위에 올리고 아래서 불을 지펴서 익혀 먹는 방식이다. 얼기설기 엮어 만든 포장마차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굴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 맛이 꽤 괜찮다. 이곳에선 굴구이만이 아니라 ‘굴물회’가 또 별미인데, 마늘, 고추, 깨, 막걸리 식초 등으로 맛을 내어 새콤달콤하다.

물론 굴 이야기에 통영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 미국 FDA에서 맛과 안정성을 인정하였을 정도로 국제적 신뢰도도 높고, 우리나라 굴의 80%가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어 가히 굴의 메카라고 할 만하다. 때문에 통영엔 굴을 이용한 지역 음식이 많이 발달해왔다. 굴과 무, 두부 등을 넣어 맑게 끓인 굴국이나 쇠고기 육수 대신 굴을 넣은 굴 떡국, 고춧가루에 굴과 무를 넣어 삭힌 굴식혜 등. 그러나 의외로 통영엔 굴 요리 전문점이 많지 않다. 전문점은 아니지만 일반 횟집에서 굴 요리가 다양하고 중앙시장 등에서 횟감을 떠서 먹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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