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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③ 맛 기행] 벚꽃 나들이도 식후경! 청정 섬진강의 맛
[③ 맛 기행] 벚꽃 나들이도 식후경! 청정 섬진강의 맛
  • 손수원 기자
  • 승인 2010.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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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섬진강에서 벗굴을 캐는 모습.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 = 섬진강] 아무리 좋은 경치도 일단 배가 부르고 봐야 제대로 감상이 된다. 일단 푸른 섬진강 강물 따라 지금 가장 맛이 오른 제철 식도락을 즐겨보자. 청정 섬진강은 과연 어떤 맛일까? 

섬진강 속에 핀 벚꽃, 벗굴   
지금 한창 섬진강 속에 피어 있는 벗굴과의 만남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우선 백이면 백 그 크기에 놀란다. 보통의 굴이 작은 아기 손 크기라면 벗굴은 천하장사 강호동의 손바닥이다. 벗굴을 직접 채취하는 하동 ‘물방골식당’의 박종윤 사장이 족히 20cm는 되어 보이는 큰 벗굴 하나를 까 보여주면서 ‘밥 한 공기다’라며 웃는다. 입이 어지간히 큰 사람이라면 큰 상추쌈을 먹듯 한입에 넣겠지만 보통의 여성이라면 두세 번에 나눠 먹어야 할 정도다. 

그야말로 ‘우유 빛깔’ 벗굴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벗굴은 워낙 생산되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고 그 양도 많지 않은 터라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알고 먹는다는 섬진강의 숨은 보물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부분에서만 자생하는데 예로부터 벚꽃이 필 동안 가장 맛이 있다는 말이 있어 그 이름도 애초에 벚굴로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붙인 이름이라 이곳 사람들이 고쳐서‘벗굴’ 또는 ‘강굴’로 부른단다.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가 일시에 꽃잎을 떨구는 벚꽃처럼 잠시 반짝 등장하였다가 바로 사라지기 때문에 일 년 중 지금을 기다려서 먹어야 하는 귀한 몸이다. 

한창 전국에서 들어오는 택배 주문에 손길이 바쁘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게다가 일반 굴이 양식으로 키워지거나 갯벌에서 캐는 것에 비해 벗굴은 30kg의 납을 안고 잠수복을 입은 채 10여m 아래로 캐러가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채취해야 하니 알면 알수록 그 생태도 경이롭다.

마지막 놀라움은 그 맛이다. 보통의 굴은 갓 잡으면 바닷물 때문에 염도가 매우 높아 많이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벗굴은 염분 농도가 10~25% 내외의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곳에서 자란 탓에 갓 캐낸 것도 먹기에 딱 알맞다. 살이 많으니 오물오물 입 안에서 씹히는 육질이 풍부하고, 아스라이 민물 향이 입 안에 퍼진다.  

직접 잠수하여 섬진강 아래까지 가서 벗굴을 채취한다는 ‘물방골식당’ 박종윤 사장. 사진 / 손수원 기자

벗굴은 이렇게 날로 해서 회로 먹기도 하지만 워낙 크기가 큰 탓에 보통은 구워서 먹는다. 공룡 화석 같은 벗굴이 가지런히 불 위에 올라 있으면 무슨 자연의 조각품을 보는 느낌이다. 거뭇해 보이기만 했던 벗굴이 열을 받아 물기가 서서히 걷히면 숨겨 있던 무지갯빛 광채와 옥색의 강물 색깔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러곤 조금씩 입을 열어 우윳빛깔 속살을 내보이는데 그 선명한 색깔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그러나 감탄도 잠시, 그 고소한 냄새는 식욕을 한껏 자극하여 더 이상 조용히 기다릴 수 없게 만든다. 서둘러 큼지막한 놈을 젓가락에 집어 한입에 쏙 넣으면 쫄깃한 살이 입 안 가득 찬다. 그 고소함은 단연 압권. 이제 구워지기가 바쁘게 젓가락이 쉴새 없이 춤을 춘다. 

굴이 남자들의 기력을 회복시키고, 여성들은 피부를 좋게 만든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속설에 이 섬진강 하동 포구 80리를 남녀 연인들이 걸으면 결혼에 성공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무래도 하늘에 날리는 벚꽃과 섬진강 아래 숨어 있는 벚꽃, 벗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말간 국물의 재첩국. 자극이 전혀 없는 순박한 맛이다. 사진 / 손수원 기자

섬진강의 대표 메뉴 재첩국  
섬진강 일대가 봄철 명소로 전국에 소문이 나면서 덩달아 유명해진 것이 바로 재첩이다. 과거 부산 일대에서 새벽마다 “재칫국 사이소~” 하고 소리치고 다니던 명물 장사꾼들이 낙동강 오염으로 자취를 감추자 이제 재첩은 섬진강을 대표하는 먹을거리가 되었다. 특히 섬진강 하구 일대는 지리산과 백운산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합수해서 다른 곳보다 수량이 많고 깨끗하다. 그래서인지 그 물을 먹고 자란 재첩은 담백하고 순하다. 

봄 날씨가 풀리면 얕은 섬진강 어귀에는 함지를 띄워놓고 재첩잡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금빛으로 물결 치는 강물 속에 어우러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밀레의 농부 그림처럼 숭고하고 성스럽다. 보통 재첩잡이는 3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가능하지만 물이 워낙 차서 주로 펄 쪽에서 간간이 잡는 정도다. 
    
재첩에는 비타민 B와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간장병과 황달 등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덕분에 웰빙 여파를 타고 인기가 날로 상승하고 있다. 

하동에서는 현재 재첩을 지역 특산물로 하여 특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그러나 수요가 늘면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하여 찍어낼 수 있는 공산품과 달리 자연의 산물은 하늘에서 허락한 만큼만 채취가 가능한 법. 결국 사람들의 욕심에 중국에서 대량 수입을 해와 오랜 섬진강 재첩의 명성에 금이 가고 말았다. 작년 유독 가물어 물이 짜진 탓에 재첩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어, 중국 수입산 재첩이 30kg에 8000~1만원 정도인 데 반해 섬진강 것이 10만~15만원까지 오르는 등 가격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진 탓이다. 

재첩따기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물방골식당’의 박종윤 사장은 “중국산이 맛도 떨어지지만 무엇보다 민물 생물을 공수해올 때 오래 살라고 약을 치잖아요. 그리고 그걸 산 식당에서는 그 약 냄새를 없애기 위해 또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첨가하고 그러니까 더 안 좋은 거죠. 그런데 중국산 재첩 문제가 커지니까 국내산 재첩만 쓰는 곳은 억울하기만 해요”라며 아쉬운 속내를 전한다.  

맑은 섬진강이 굽이 돌아나가는 하동 포구. 사진 / 손수원 기자

이에 대해 하동군청 환경수산과에서는 TV 고발 프로그램이 나간 후 불시에 대대적인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하동의 재첩을 특화시키는 방안을 다각도에서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현승 생산계장은 “작년 가을에 재첩이 꽤 많이 생산돼서 올봄까지는 물량이 충분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과거 가공, 보관 시설이 미비해서 공급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수입산이 들어오는 등의 폐해가 있었는데 현재 냉장, 냉동시설을 계속 보급하고 있어 그런 문제점도 이제는 크게 개선되었습니다”고 말한다. 

재첩국은 국물이 맑다(중국산을 쓴 재첩국은 사골국물처럼 불투명하고 진하다). 투박한 뚝배기에 뽀얀 국물과 초록 부추가 전부인 모양새. 휘휘 저으면 그 아래 낮게 깔린 자잘한 재첩이 그제야 드러난다. 외관으로 보자면 이보다 더 소박할 수 없는 모양새다. 맛 역시 특별한 양념이 없이 재첩을 잘 우려내어 소금으로만 간을 한 재료 본연의 맛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재첩을 ‘섬진강 강바닥의 맛’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상하게도 순박한 맛은 의외로 두고두고 혀끝에 기억된다. 

선미옥의 토장탕. 한 뚝배기가 뚝딱 비워진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그래, 이 맛이야! 다슬기탕  
같은 섬진강 줄기라도 모래가 많은 하동에서는 재첩이 주로 나지만 돌바닥인 구례 쪽에서는 다슬기가 많다. 다슬기는 섬진강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강이나 내의 돌에 붙어사는데, 물고둥, 올갱이 등으로도 불린다. 소라처럼 삶은 뒤 안의 살을 빼서 먹는데, 식당에서는 이를 일일이 바늘로 빼서 저장해 두었다가 사용한다. 동네 할머니 말씀대로라면 이 작업이 ‘엥간 외로븐 게(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렇게 쏙쏙 빼낸 다슬기는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어 넣어 수제비로 만들어 먹거나 심심하게 된장을 푼 토장탕으로, 혹은 전라도 특유의 푸짐한 양념으로 무친 다슬기회로도 먹는다.
다슬기는 작은 고깔 봉지에 담아 사 먹었던 소라를 닮아서인지 입 안에 오물거리고 있으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회고적이고 그리운 맛이다. 

맑고 깨끗한 섬진강 물길 따라 봄이 피어난다. 사진 / 손수원 기자

구례군 토지면의 다슬기 전문점‘선미옥’은 집된장에 아욱을 함께 넣어 끓인 다슬기탕이 특히 유명하다. 얼큰한 청량고추를 살짝 곁들여 시원한 국물을 떠먹으면 거칠 게 없이 속이 확 뚫린다. 섬진강 벚꽃에 들떠 지난밤 한잔이 거했다면 속풀이 해장국으로 더할 나위 없겠다. 실제로 <본초>에서는 다슬기가 술 마신 사람이 먹으면 간을 보한다고 하였으며, 더불어 눈을 밝게 하고 신장에 좋아 소변이 잘 나가게 된다고 적고 있다.

이곳은 다슬기탕 이외에도 자체 개발한 특제 다슬기장을 고소한 김과 함께 내놓는데 이것도 은근히 밥도둑이다. 특이하게도‘선미옥’ 식당 앞은 소박한 점방으로 되어 있다. 다슬기 요리로 소문이 널리 나 외부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들자 동네 주민들이 식당 앞에 직접 만든 지역 특산품들을 하나둘 가져다놓은 것들이다. 

토지우리식당의 다슬기 칼국수. 푸짐한 수제비에 밥이 함께 딸려나온다. 사진 / 손수원 기자

‘토지우리식당’의 정금자 할머니는 쫄깃한 수제비가 자랑이다. 파란 다슬기 국물에 차지게 반죽한 수제비를 넣고 호박과 마늘 등 기본양념을 넣는데 한 그릇 후르륵 잘 넘어간다. 
할머니가 직접 쑨다는 도토리묵도 함께 곁들여 먹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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