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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맛 따라가는 여행] 지하철 타고 떠나는 '세계 음식 기행' 안산 다문화 음식거리
[맛 따라가는 여행] 지하철 타고 떠나는 '세계 음식 기행' 안산 다문화 음식거리
  • 최혜진 기자
  • 승인 2010.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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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각국어로 쓰인 간판을 따라 다문화 음식거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불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사진 / 최혜진 기자

[여행스케치 = 안산] 웅장한 이슬람 사원보다 향긋한 카레가, 만리장성보다 두툼한 만두가 먼저 떠오르는 당신이라면 ‘다문화 음식거리’에 가볼 일이다. 세계 각국 현지인들이 고국에서 재료를 공수하고 직접 조리하는 전통 음식점들이 안산역 앞에 거리를 이루어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번은 친구가 갑자기 주말에 일본을 다녀왔다기에 뜬금없는 ‘도깨비 여행’에 의문을 표했더니 “일본 여행길에 맛보았던 우동이 못 견디게 생각나서 훌쩍 다녀왔다”는 것이다. 처음엔 우리나라 도처에 일본식 우동 전문점이 널렸는데 별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겉만 그럴싸하게 흉내를 낸 음식이 아닌,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온 전통적인 맛과 그 나라 고유의 분위기가 그리웠던 것이다. 

슈퍼에는 두리안과 같은 열대과일이 푸짐하게 진열되어 있다. 사진 / 최혜진 기자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미식가라 한들 매번 맛 기행으로 외국까지 훌쩍 날아갈 순없는 노릇. 때문에 인도,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 각 나라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다문화 음식거리’가 더욱 반갑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연유로 서울 인근에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직접 조리하는 전통 음식점들이 거리를 이룬 ‘세계음식백화점’이 생기게 된 것일까. 

다문화 음식거리 인근에 수도권 최대 국가 공단 중 하나인 시화·반월공단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비교적 생활비가 저렴한 안산 원곡동에 터를 잡았고, 자연스럽게 이들을 위한 식재료 판매점과 전통 음식점이 모여들어 지금의 ‘국경 없는 마을’을 이루게 된 것. 따라서 다문화 음식거리는 계획적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모여 사는 ‘삶의 현장’이자 고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친숙한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덕분에 우리나라 미식가들은 덤으로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9개국의 전통 음식을 맛보고 이국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 있다. 

중국 만두와 꽈배기 등을 맛볼 수 있는 복성원반점. 사진 / 최혜진 기자

오묘한 향신료 냄새, 상형문자 같은 간판…
안산역 앞 지하도를 건너 마주한 다문화 음식거리의 첫인상은 각국 문화가 비빔밥처럼 뒤섞인 복잡한 풍경이다. 중국어, 베트남어, 힌두어 등 각 나라 음식점 간판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거리에는 음식점에서 흘러나온 향신료의 오묘한 냄새가 뒤섞여 있다. 코를 킁킁거리며 마주 오는 외국인과 눈인사를 건네고 있자니 불과 5분 거리 사이에 시공간을 초월해 동남아의 어느 번화가로 날아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양고기 수프. 사진 / 최혜진 기자

아득하게 늘어선 간판은 간간이 중국어나 영어로도 쓰여 있지만 대부분 상형문자와 같은 알 수 없는 언어로 표기되어 그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된다. 큼지막하게 쓰인 자국어 옆에 작은 글씨로 영어나 한국어가 표기된 식이라 언뜻 봐서는 식료품 가게인지 음식점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간판과 더불어 가게 안의 면면을 살펴보아야 그제야 ‘아하!’ 하고 정체성을 파악하게 되는데, 이렇게 가게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World Food’라는 간판을 단 가게는 작은 글씨로 ‘중국식품’이라고 쓰여 있는데, 진열된 것들을 보니 각종 야채와 과일들을 판매하는 슈퍼인 듯하다. 토마토며 귤이며 흔히 먹는 과일들도 진열되어 있지만 뾰족한 가시를 세운 두리안과 같은 열대과일이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역시 분위기가 색다르다. 

빵속의 고기. 사진 / 최혜진 기자

여기에서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면 중국 만두 가게에서 지글지글 도넛이 튀겨지고 만두가 쪄진다. 몇 년 전 중국의 왕부정 거리에서 맡았던 진한 기름 냄새가 느껴지는 듯하다. 그때는 북적이는 중국인들 틈을 비집고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튀김을 사 먹을 마음이 없었지만, 여기에선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1000원을 건네고 만두 두 개를 받는다. 뜨끈뜨끈한 만두를 쥐고 가운데를 갈라보니 몰랑몰랑한 빵 속에 다진 고기가 가득하다. 호호 불며 한입 베어 무는데 역시나 고기 탓인지 고기를 볶은 기름 탓인지 느끼한 맛이 강하다. 영 못 먹을 맛은 아니지만, 두 개까지는 내키지 않는다. 

나머지 한 개를 봉투에 넣고 다시 거리를 활보하는데, 건너편에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가게 밖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익숙한 놀림으로 손질하고 있다. 정육점인 것 같은데 우리에겐 다소 익숙하지 않은 양고기를 팔고 있다는 팻말이 큼지막하다. 

빵과 요구르트. 사진 / 최혜진 기자

이렇게 가게를 구경하며 걷다보니 큰 거리, 작은 골목 속속들이 구미가 당기는 전통 음식점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섣불리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낯선 타국 땅에서 한번쯤은 겪어보았던 낭패감 때문이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내키는 음식점에 들어갔던 용감함이 곧 실패로 이어졌던 경험…. 이런 뼈아픈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본격적인 ‘세계 음식 기행’에 앞서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에서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음식점을 추천 받기로 했다.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는 안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국내 활동을 돕고 문화축제 등을 주최하는 기관으로 다문화 음식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자리한다. 이곳에서 외국인들과 살을 맞대고 지내온 만큼 다양한 음식 맛을 보았을 테니 직원들이 손꼽은 음식점은 분명 우리 입맛에도 잘 맞을 것이다. 이정민 계장은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사마리칸트’를, 황유경 주사는 인도·네팔 음식점 ‘칸티풀 레스토랑’을 깨끗하고 맛 좋은 음식점으로 추천했다.

사마리칸트의 쉐리줘드 사장. 사진 / 최혜진 기자

우즈베키스탄 음식 먹어보셨어요? 
큰길가에서 비켜난 작은 골목에 자리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사마리칸트’는 눈에 띄는 장식보다는 단출하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 반듯한 탁자에 앉으면 곧바로 메뉴판이 나오는데, 한국어와 영어를 크게 표기하고 자국어는 작은 글씨로 써놓아 알아보기에 편리하다. 각종 빵과 샐러드, 수프와 메인 요리로 메뉴를 구분했고, 가격은 2000~50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특색 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슬며시 메뉴판에 양고기 수프를 가리키며 사장님께 의문의 눈빛을 쏘아 보냈더니 “양고기 냄새 나지 않아요. 한국인도 다 맛있다고 해요” 하신다. 주문에 앞서 예상을 뛰어넘는 사장님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흠칫 놀랐다. 한국에서 음식점을 운영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고 하니 이젠 유창한 한국어과 더불어 한국 사람에게 메뉴를 권해주는 일도 능숙하다. 

쇠고기 꼬치구이. 사진 / 최혜진 기자

사장님의 도움으로 코스별로 음식을 주문하고 이국적인 가게 소품들을 구경하며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홀로 들어와 메뉴판을 보며 이것저것 가리킨다. 꽤 많은 양을 주문하는 것을 보니 포장해 갈 모양이다. 기다리는 사이에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2007년 우즈베키스탄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고향의 맛이 그립다는 아내를 위해 종종 음식을 사 간다고 한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인근 공단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인 호스닛딘과 아크람이 빵을 요구르트에 찍어 먹고 있는 중이다. 

그러는 사이 주문한 요리가 완성되어 테이블에 하나씩 오른다. 먼저 양고기 수프. 수저에 국물을 듬뿍 담아보니 특유의 향신료 맛이 코끝을 자극한다. 후루룩 한 모금 맛을 보니 매콤한 고깃국과 비슷한 맛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거부감이 없다. 냄새에 조금 익숙해지자 오히려 독특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양고기를 푹 삶아 연한 고깃살도 기름기 없이 담백하다. 

다음으로 나온 빵 속의 고기. 약간 퍽퍽한 질감의 페이스트리와 비슷한 빵을 뚝 잘라내면 메뉴 이름처럼 ‘빵 속에 고기’가 가득하다. 어찌 보면 중국식 만두와 비슷한 모양이라 좀 망설여졌는데 토마토 소스를 얹어서 한입 먹어보니 화덕에 구운 덕분에 빵은 담백하고 고기는 고소하다. 이어서 나온 양배추 고기말이와 쇠고기 꼬치구이도 모두 나무랄 데 없이 담박한 맛이다. 

하나같이 처음 맛본 요리들인데 거부감 없이 잘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의아스러울 정도다. 사장님께 우리나라 사람들에 맞게 요리를 변형한 것인지 물었더니 “우리 어머니도, 할머니도 이렇게 만들었어요. 집에서 해 먹는 맛 그대로 했어요” 하며 전통적인 우즈베키스탄 요리임을 강조한다. 하기야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향의 맛’으로 통하는 음식점이니 전통 재료나 조리법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겠다. 

사마리칸트를 나와 칸티풀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인도·네팔 음식점이라고 하니 처음부터 별 거부감이 없다. 요사이 우리나라에도 인도 음식점이 곳곳에 생겨나면서 전통 인도풍 카레나 화덕에 구운 쫄깃한 난은 이미 맛본 사람이 많을 터이다. 

갈릭 난과 치킨 티카 마셀라 커리. 사진 / 최혜진 기자

칸티풀 레스토랑 내부는 인도풍의 장식으로 곳곳이 화려하고 인도 노래가 분위기를 돋우는 전통 인도 식당이다. 메뉴판을 살펴보니 커리도 향신료나 재료에 따라 각양각색이고, 난도 마늘이나 고추 등 첨가된 재료에 따라 종류가 꽤 다양하다. 사장님의 추천에 따라 양고기와 허브로 맛을 낸 ‘나마스테 램 커리’와 바비큐한 닭고기, 토마토, 양파를 넣어 만든 ‘치킨 티카 마셀라’, 버터 난과 갈릭 난, 그리고 수제 요구르트로 만든 바나나 요구르트 음료를 주문했다. 

금세 테이블은 음식으로 채워졌다. 난을 먹기 좋은 크기로 쭉 찢어 커리를 듬뿍 올려 오물오물 맛을 보니 난은 쫄깃한 식감이 그만이고, 치킨 티카 마셀라 커리도 고소함이 진하다. 다만 나마스테 램 커리는 향신료의 오묘한 맛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바나나 요구르트 음료를 쪽쪽 빨아 먹으면서 갈릭 난에 치킨 커리를 찍어 먹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 

칸티풀 레스토랑의 리잘 사장. 사진 / 최혜진 기자

이렇게 배불리 먹어도 1인 1만원이면 푸짐하겠다. 치킨과 같은 재료를 제외하고 향신료나 기타 재료들을 모두 현지에서 공수해야 하는데도, 리잘 사장은 특유의 낙천적인 웃음을 보이며 “여기 있는 음식점들 모두 비싸지 않아요. 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 많이 돈 쓸 수 없으니까 가격 올릴 수 없어요” 한다. 

이런 연유로 다문화 음식거리의 요리 가격은 타지역에 낸 분점에 비해서도 저렴한 편이다. 덕분에 ‘세계 맛 기행’을 온 내국인들은 저렴한 가격에 8개국 80여 개 음식점의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는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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